작업장

이상윤展 / LEESANGYUN / 李相潤 / sculpture   2010_0714 ▶ 2010_0720 / 화요일 오후 휴관

이상윤_작업장_나무_가변설치_2010

초대일시_2010_0714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30am~06:30pm / 화요일 오후 휴관

갤러리 라메르_GALLERY LAMER 서울 종로구 인사동 194번지 홍익빌딩 Tel. +82.2.730.5454 www.gallerylamer.com

이번 전시의 테마는 작업장이다. 작품이라는 결과물보다 작업하는 행위에서 의미를 찾는 자에게 작업장이란 얼마나 중요한 공간인가. 거기에 있는 작업대와 바이스, 방망이며 끌들은 나무 작업을 하는 나에게 너무나 소중한 존재들이다. 필요가 만들어낸 그들의 군더더기 없는 구조와 생김새는 언제나 조각적 영감을 나에게 선사한다. 신뢰 있게 두터운 다리는 오랜 시간 나의 두드림을 감당해주었으며, 끌질이 손쉽게 되도록 잡아주었던 그들 위에 남은 상처 자국들로부터 숭고미를 느낀다. 나는 작업하는데 필요한 이러한 존재들로부터 나의 것을 새로이 하나하나 만들어 작업장 풍경을 연출하였다. 그것들은 또한 실제로 작동되어 작업하는데 쓰여 진다. 나에게 조각이란 단지 감상하는 대상에서 멈추어 있지 않은 것이다.

이상윤_Standing&Lying_나무_140×90×110cm_2010
이상윤_Holding_나무_120×90×60cm_2010

내 앞에 나무토막이 있다. 주변 공사장에서 쓰고 남은 구조재이거나 산언저리에 간벌을 하고 쌓아둔 통나무, 아니면 미대 주변에선 흔히 볼 수 있는, 오랫동안 묵혀있던 말 그대로 폐목들. 그 토막들이 그냥 버려지고 썪는 게 아깝게 느껴져 틈틈이 모아 왔다. 이것들로 무엇인가를 만들어야지, 우선은 어디 올려두고 일을 하기위한 작업대가 필요하다. 그 대를 만들고자 나무를 썰어야 하는데 톱이 필요하다. 톱을 만들려면 톱자루를 깎아야 하기에 두 손으로 깎는 동안 자루를 잡아줄 장치가 필요하다. 그 장치를 만들려니 나무를 쪼개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쐐기와 방망이가 필요하다. 그 쐐기와 방망이를 깎다 보니 도끼와 끌의 날이 무디다. 날을 세우려면 날을 가는 도구가 필요하다. 그 도구를 만들려니 바퀴가 필요하다. 바퀴를 깎기 위해선 나무를 회전시키는 장치가 필요하고... 작업을 하면서 바닥에는 대팻밥이며 나무 조각들이 수북히 쌓인다. 이걸 긁어모으려니 빗자루가 필요하다. 그리고 무거운 나무토막들을 옮기려니 수레가 필요하다. 빗자루를 만들어 쓸고 수레로 대팻밥과 나무 조각들을 모아놓고 보니 그냥 버리기 아깝다. 불을 붙이면 훌륭한 연료가 되기에 차를 끓이기 위한 풍로를 만들었다. 그렇게 끓인 차를 한잔하며 지친 몸을 잠시 기댈 의자가 필요하다. 그 의자에 앉아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사람들은 내게 도대체 작품은 언제 만들거냐고 묻는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바로 내 작품이 아닐까?

이상윤_Gathering_나무_130×60×40cm_2010

무엇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만들기를 하다 보니 처음에 무엇을 만들려고 시작했는지 이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도달할 목표로부터 한 걸음, 반 걸음, 반의 반 걸음 점점 뒤로 물러나고 있지만 그러는 사이에 하나씩 하나씩 무엇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 목표점은 언제쯤에나 다가가질 것인가? 아니, 목표란 것은 애초에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 나의 작품들은 각자 역할을 맡고 나를 둘러싸고 있다. 그 역할들은 나의 행위를 암시한다. 모아둔 나무토막들 안에서 손잡이나 다리, 바퀴의 형상들이 보인다. 구상이란 없다. 손으로 나무를 깎는 일이 고되기에 주어진 형태를 그대로 따를 뿐이다. 무엇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계획도 없다. 단지 그때 그때 필요한 것을 만들 뿐이다. 작업장. 그 공간은 각자 임무를 맡은 작품들로 둘러 쌓여 있고, 지금도 그것들은 자신을 작동시켜 달라고 나에게 재촉을 하고 있다.

이상윤_Moving_나무_90×60×70cm_2010
이상윤_Resting_나무_100×60×90cm, 80×60×50cm_2010

작업을 진행하면서 드는 의문이 있다. 필요에 의해 만들어 놓은 작품들이 실제로 쓸 수가 없으며 단지 감상의 대상에 지나지 않게 된다면? ● 나는 이번 작업에서 간벌을 하고 야적되어 있던 원목들을 사용하였다. 나무결과 모양을 그대로 추적하기 위해 몇 가지 설정을 하였었다. 우선 각도기나 자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직 손도구에 의지하였다. 그리고 형태를 미리 계획하고 그에 맞게 나무를 가공하지 않고 내 앞에 주어진 나무를 쪼개고 그 쪼개진 모양대로 형태를 만들어 나갔다. 이에 따라 내가 만들어낸 작품들은 자연의 형태를 닮게 된 것이다. 나무란 본래 구불구불한 형태이기에 이것들을 가지고 작업을 하기 위해 만든 나의 작품들도 역시 구불구불한 것이 어울림이 틀림없었다. ● 여기서 여러 가지 문제에 봉착한다. 우선은 작품의 조형에 집중하다 보니 기능성이나 내구성에 대한 안배에 소홀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들어놓은 빗자루나 손수레를 일상 작업에서 사용하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이미 직선의 세계에 익숙하게 살아왔으며 자연의 곡선 형태만으로는 나의 모든 작업행위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상윤_Workbench_나무_90×200×80cm_2009

이번 작업들을 위해 작년에 Workbench를 만들었었다. 자연적이라기 보다는 지극히 인문적 형태와 기능에 충실한 것이었다. 각도기와 계산기 그리고 기계대패에 철저히 의존했던 작업들이다. 이번 작업을 하면서 통나무들을 그 Workbench위에 얹고 고정해보려고 했지만 잘 고정이 되지 않았다. 직선과 곡선은 서로 궁합이 맞지 않는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나는 Standing&Lying, Holding을 만들었다. 한편, Resting은 작업을 하면서 앉아야 할 때 필요한 의자들을 만든 것이다. 사람의 몸이 닿는 작품들이기에 몸의 형태와 작품의 형태를 매치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작업들이다. 그러나 작업을 하는 와중에 그 의자형태에 맞추어 앉기란 여간 번거로운 것이 아니다. 평평하고 안정적인 네모난 의자들이 작업하는 데는 오히려 제격인 것이다. ● 나는 처음에 '작업을 하는데 쓰이기 위해 만들어진 작업'이라는 모토를 설정하였었지만 결국은 전시장에서 보여 지기 위한 것이 최종 목적이었음을 깨달았다. 또한 작업을 하면서 체험한 직선과 곡선의 문제는 자연과 인간의 지난한 관계에 대하여 내 나름의 시선을 가져보는 기회가 되었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시행착오의 표본들을 발표하는 자리가 아닌가 한다. ■ 이상윤

Vol.20100713b | 이상윤展 / LEESANGYUN / 李相潤 / sculpture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