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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10_0706_화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5:3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두_GALLERY DOO 서울 강남구 청담동 7-18번지 진주실크 지하 1층 Tel. +82.2.3444.3208
여성의 광기가 분출되는 초상 ● 『Portraiture Suite』라는 부제로 열린 임선희의 전시는 초상화의 형식을 갖춘 20여점의 작품이 걸려 있다. 예술작품이라는 것이 결국은 자신으로부터 출발하여 자신으로 다시 회귀한다는 점에서, 그려진 형상과 무관하게 일종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임선희의 경우, 동서양의 고풍스러운 초상화의 형식을 두루 갖추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현대미술 전시에서는 거의 사라진 황금 빛 액자 안에 한명 씩 호출된 인간들은, 조선시대나 중세,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을 떠오르게 하는 세밀한 화풍으로 구현된다. 임선희는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하였지만, 그 흔적은 일부에서만 발견될 뿐이다. 한 때 관심 있었던 서양미술사 또한 부분적으로 차용된다. 그녀의 초상화는 강렬한 인상을 주지만 표현주의나 초현실주의, 추상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과격한 변형이나 왜곡 없이 현실에 있음직한 인간들에 가깝다. 초상화 속 인물들은 자신과 주변 친구, 또는 자신을 투사할 수 있는 여성들(작가, 배우 등)에 집중되어 있다. 그림 속 여성들은 강한 자의식을 보여주기도 하며, 크고 작은 상처를 감추고 있다. 여성 작가의 작품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 자기애적이고 소녀취향으로 읽힐 수도 있지만, 작가는 굳이 자신의 여성성을 감추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2008년에 열린 개인전의 전시 부제는 아예『She...』였다.
사회를 지배하는 상징적 질서, 그 아래의 타자화 된 존재 중의 하나인 임선희의 작품 속 여성들은 다소간 우울한 인상이다. 여성의 우울은 반항적이면서도 몽환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보이는/보이지 않는 억압적 질서에 의해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태에서, 환상은 그녀들의 유일한 탈출구가 된다. 작품에 가미된 영롱한 빛은 이러한 환상을 고무시킨다. 작품 속 그녀들은 대부분 인도 여인들의 장식인 빈디를 이마에 붙이고 있다. 그것은 결혼한 여자를 상징하는 것이며 우주적 합일이 이루어지는 점으로, 현실적이면서 상징적인 질서를 모두 함축한다. 그러나 그것은 차이와 차별을 동시에 의미하는 것으로, 차이는 신성시되곤 하지만 차별은 현실에 엄존하는 불평등한 질서를 내포한다. 아름다움이나 다산(多産)과 관련되는 여성적인 가치로서의 빈디는 귀걸이 등과 어우러져 화면을 장식한다. 고풍스러운 금색 액자는 비잔틴 성상화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온 것이며, 액자 안의 존재를 아름답고 신성한 모습으로 고양시킨다. 금분을 바른 나무 패널은 금색 액자와 어우러져 장식과 상징이라는 이중적 역할을 한다. 그러나 임선희의 작품 속 인물을 둘러싼 휘황찬란함은 그것이 기원한 중세의 성상처럼, 단단한 형이상학적 지반 위에 군림하는 종교적 빛남이나 영원성과는 거리가 있다. ● 번쩍거리는 표면은 곧 벗겨져 나갈 것 같으며, 장식적 오브제들은 쉽게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취약함이 느껴진다. 화면 속 여성들은 대부분 화면 밖을 응시하면서 관객과 눈을 맞춘다. 영혼의 창이라고 할 수 있는 눈망울은 말 없는 회화를 거슬러서 소통을 시도한다. 침묵 속의 대화는 말로 하는 대화와는 비교 할 수 없는 어떤 절실함을 담고 있다. 그것은 이성을 초월하는 또는 이성 아래에 포진해 있는 사랑, 고통, 죽음, 광기, 일탈 같은 기호들과 관련된다. 배경은 황금빛이거나 심리적인 상황과 관련된 애매한 도상들이 잠식한다. 작품 「Love is green」처럼, 사랑 같은 강렬한 감정의 상태를 나타내는 경우, 뭉개진 물감 덩어리로 표현되기도 한다. 현실에서 호출된 그녀들은 전통 동양화의 방식으로 자세하게 표현되어 있지만, 어떤 행동을 하는 중이거나, 일상적인 배경 속에 자리 잡고 있지 않다. 현실 속 인물과 심리적 상황이라는 허구 사이에 설정된 미묘한 관계는, 관객(현실)과 초상화들(허구) 사이의 관계에 상응하는 것이다. 한 화면에 공존하는 이질적인 차원은 동양화 물감과 수채화 물감, 먹을 혼용하는 기법에서도 찾아진다. ● 광목천에 사실주의적 기법으로 그려 황금색 패널에 붙여진 여성들은 섬세함부터 강인함에 이르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다. 아크릴로 그린 작품들은 거친 붓터치가 남으며 확 풀어지는 느낌을 준다. 이러한 회화적인 초상은 꼼꼼하게 그려진 선적인 초상과는 차이를 보인다. 아크릴로 그린 작품「She wears a rosy fragrance」는 세련된 이국적 여인이 죽죽 흘러내리는 배경 속에서 점차 녹아들거나 장미 향기로 기화한다. 자화상의 경우, 작가의 실제 모습이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거칠고 반항적인 모습도 보인다. 작품「Woman in golden rain」에서 머리를 흘러내린 채 밖을 응시하거나, 까칠한 얼굴로 붉은 색 스카프를 매고 관객을 쏘아보는 작품「Starry night」은 현실 속에서는 가능할 법하지 않는 또 다른 자아의 야성적인 면모이다.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바를 위해서 중세적 양식의 차용도 마다하지 않는 임선희는, 감성과 서사를 배제하고 형식을 중성화시키는 방향으로 '진보'했던 모더니즘의 강박관념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녀의 작품에는 영화나 문학의 서사와 이미지, 음악이 고무하는 원초적 충동이 존재한다. 작품「BB according to Jean Luc Godard」는 인상깊이 보았던 고다르의 영화의 주인공이자 나중에 동물애호가이자 동물보호 운동가로 변신한 여배우가 등장한다.
작품「She grows black hellebores」에서도 작가에게 강한 카타르시스를 안겨주었던 컬트영화의 여배우가 등장한다. 자연적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상한 꽃들, 불길한 느낌을 주는 이국적 새인 까마귀, 마녀와 어울릴법한 어스름한 달빛 등은 낭만주의나 상징주의적인 분위기가 강하며, 아름답지만 불안함을 숨길 수 없는 여배우 얼굴 뒤의 후광은 성상화 양식과 관련된다. 임선희가 좋아한다는 작가의 초상을 그린「Annette」는 옆을 응시하는 모습이 강한 자의식과 존재감을 가진다. 그녀가 그리고 싶은 사람의 초상이 대부분 여자라는 점은, 작품에서 자기 동일시의 투사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투사를 지배하는 정서는 몇몇 작품을 빼고는 대부분 우울함에 젖어있다. 작품「Apple of sodom 2」는 사실적으로 표현된 얼굴과 팔다리가 없는 흉상이 붙어 있으며, 배경화면과 같은 황금색 눈물을 흘린다. 제목이 아예 멜랑콜리인 작품들도 있다. 2008년 대안 공간 팀 프리뷰에서 열린 개인전 작가 노트에는 작품에 녹아든 우울한 정서를 잘 표현하고 있다. 임선희는 '모순된 현실과 거짓 논리의 곡예 안에서 우리의 정신은 기이한 경험'을 하기 시작하며, '이것들은 때론 내가 없는 내 인생이 되어 영혼을 파괴하며, 모든 것을 먹어치워 버리는 늪이 되어 버린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녀들은 피할 수 없는 절망이 파도처럼 밀려드는 시간 안'에 존재하게 된다. ● 임선희의 작품에 내재하는 멜랑콜리는 예술과 관계가 깊은 광기이다. 육체와 무의식에서 분출하는 광기는 자연과 깊이 관련된 듯하지만, 정작 광기를 낳는 것은 자연이 아니라 문명이다. 첩첩이 매개된 인공적 환경은 그 속에 기거하는 많은 이들을 잠재적인 광인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성의 꼼꼼한 감시에도 불구하고,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경계는 명확하지 않다. 미셀 푸코는「광기의 역사」에서 인간의 주위에서 인간에 의해 구성된 환경이 더 두껍고 불투명하게 됨에 따라 광기의 위험은 증가한다고 말한다. 문명은 매개현상을 증가시키면서 인간에게 소외당할 새로운 기회를 끊임없이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는 '살아있는 존재를 둘러싸는 모든 것은 살아있는 존재를 파괴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 18세기 프랑스 의사의 말을 인용한다. 광기는 고전주의 시대에 세계 저편에서 사회 한가운데로 옮겨왔다.「광기의 역사」는 광인들을 배에 실어서 바다 저편으로 보내버리는 관습이 고전주의 시대에 와서 보호와 수감으로 바뀐 역사적 사실의 의미를 탐구한다. 음침한 수용의 요새들은 감옥에 한정되지 않고, 곧 근대의 모든 사회조직의 원형이 된다. 이성이 지배하는 공적 영역으로부터 배제된 채 감시와 조절의 영향 하에 놓인 사적(私的) 영역들이 전형적이다. 근대에 와서 대표적인 사적 영역이 된 것은 가정이다. 그리고 예술 또한 사회적 힘을 잃고 사적 영역화 하고 있다. 여성, 더구나 예술 작업을 하는 여성은 보이지 않는 이중의 감옥 속에서 기거하게 된다. 부정이자 배제인 이 영역들은 도구적 이성으로부터 벗어난 지고한 영역으로 추앙받기도 하지만, 그럴수록 사적 영역의 부차적인 지위는 점차 공고해 진다. 이 부차적이고 주변화 된 영역은, 이 영역의 주인공들에 의해 억압된 충동과 불안 그리고 환상의 무대로 변모한다. ● 이성의 눈으로 보면 부정적이고 무의미하며 텅 빈 형태를 가지는 것들이 기이한 형태와 색채를 입고 무언극처럼 펼쳐진다. 침묵을 강요당한 광기는 동물성, 질병, 죽음의 전조를 보이는 또 다른 언어로 발언하기 시작하며,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갇혀 있는 상태에서 환상은 출구가 없어 보이는 악무한의 미로에서 탈주를 꿈꾸게 한다. 아름다운 여인들이 그려져 있는 임선희의 화려한 초상화에서 이러한 어두운 면만을 강조하는 것은 부당할지 모른다. 그러나 액자, 바탕, 부속 장식 등이 번쩍번쩍 빛날수록, 역설적으로 그 안의 인간들은 더욱 궁지에 몰려있는 듯하다. 그것은 화려한 틀 안에 여성을 가두어 놓는 보이지 않는 질서, 그리고 이 질서에 질식할 것 같은 여성의 광기를 예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멜랑콜리라는 제목의 작품을 비롯하여, 임선희의 작품을 지배하는 것은 우울의 정서이다. 푸코는 우울증을 신체 안에서 무겁고 탁한 수분의 점도로 생긴 결과라고 본다. 우울함에 내재된 축축한 정서의 기원에 대해, 푸코는 물과 광기가 오랫동안 서로 연결되어 왔다고 설명한다. 그는 견고한 도시들이 있는 견고한 땅에서 온 사람이 아니라, 끊임없이 동요하는 바다, 그토록 많은 기이한 지식을 감추고 있는 미지의 길들, 환상적 평원, 요컨대 세계의 이면에서 온 사람이라는 것이다. ● 광기는 모호한 수성(水性)의 요소, 이를테면 음침한 무질서, 불안정한 혼돈, 모든 사물의 배아 겸 죽음 같은 것이 사람에게 나타나는 현상이며, 이 요소는 명석하고 성숙한 정신의 안정성과 대립된다는 것이다. 필자는 어떤 건물에 걸린 임선희의 그림을 우연한 기회에 보게 되었는데, 거기에는 바다에서 떠밀려 왔는지 떠밀려 갈 건지 알 수 없는 해변의 여인이 그려져 있었다. 그 작품은 멜랑콜리와 물, 그리고 여성의 관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근 몇 년간 초상화에만 매달리는 모습 자체가 한 가지에 고집스럽게 매몰되어 있는 멜랑콜리의 특징이다. 멜랑콜리는 고대부터 '몽상적 슬픔에 잠겨있는 예술가의 이미지'(아리스토텔레스)로 간주되었으며, 창조의 동력과 일치되곤 하였다.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 속에 두드러지는 정서, 즉 낯설고 불안하게 경험되는 세계, 소외의 느낌자체가 멜랑콜리한 것이다. 푸코에 의하면 우울증은 무력의 한계에 이른 광기이다. 우울증은 온통 젖어있고 거의 대홍수가 난 세계, 극단적으로 단순화되고 단 하나의 세부 사항만이 지나치게 커진 세계에 빠져 있다. 우울증은 자신에게만 어처구니없이 커다란 중요성을 띠는 하나의 대상에 고정되며, 슬픔과 두려움을 수반한다. 우울증에 빠진 사람은 신경 섬유가 느슨해져 있거나 너무 커다란 긴장으로 인해 작동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외부세계와 공명할 수 없게 되고 몇몇 신경 섬유만이 활성화되어 있다.
이 상태에서 상상력의 활동인 예술작품은 정지된 듯 고요하다. 임선희의 작품에서 모든 움직임이 배제된 채 상상과 응시에만 집중하는 상태는 행동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팔다리가 생략되어 있다는 점에서 두드러진다. 그것은 얼굴을 중심으로 하는 초상화의 표현방식에 기인한 것일 수도 있지만, 몸이 많이 드러난 반신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부동의 상태로 자신만의 열락과 공포를 오가는 환상 속에 푹 젖어있거나 가라 앉아 있다. 그들에게 내재된 어둠이 깊어질수록 그들을 둘러싼 환경과 표면은 더욱 빛나는 듯하다. 멜랑콜리와 더불어 임선희의 작품에 출몰하는 광기는 히스테리(hysteria)이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히스테리의 기원은 무의식의 환상이다. 히스테리에 빠진 사람은 구체적인 현실을 환상화 된 현실로 변형시킨다. 다시 말해 그는 세계를 히스테리화 한다. 히스테리는 신경증환자가 자신의 환상에 근거해서 옭아맨 타자와의 관계를 일컫는다. 히스테리는 자궁을 뜻하는 희랍어 'hysteros'에서 파생되었는데, 이 말은 '이리저리 헤매는 것'이란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그 말의 기원처럼, 히스테리는 여성의 광기로 분류되곤 하였다. 그러나 히스테리를 부리는 여성은 여성적인 것이 아니라, 고정된 성역할을 거부할 때 그 딱지가 붙여진다. 특히 아크릴로 그려진 임선희의 초상에는 거칠고 과감한 변신이 눈에 띈다. 단정치 못한 어수선한 복장으로 화면 밖을 응시하는 그녀는 매우 불안정해 보이며 반항적이다. ● 여성의 자리라고 사회가 규정한 바에 순응하지 않는 여자는 비정상으로 간주된다. 프로이트는 히스테리 환자가 여성과 남성 사이에서 동요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히스테리는 성적 동일시의 동요, 즉 성 정체성과 연결되는 증후이다. 더 나아가 라캉은 문화적으로 강요된 양성의 구분이 남자와 여자 모두를 불완전하게 만드는 주체의 근본적인 분열을 가져온 원인이라고 본다. 라캉적인 시각에서 보면 히스테리 환자는 자신의 성적 육체에 의미화의 근거가 결핍된 것이다. 즉 히스테리에 걸린 여자는 여성성이 없어지는 것이다. 광기는 한 성으로 규정된 육체를 외면하고, 육체를 영혼과 곧바로 만나게 하는 열정에 휘둘리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열정은 문명과 사회가 규정한 금지와 금기를 위반하게 한다. 라캉은 히스테리를 부리는 여성에서 인간 주체의 진수가 구현된다고 본다. 그는 어느 시대이건 지식의 현 상태에 대한 불만을 말하는 구조로서 히스테리의 진실을 찬양한다. 히스테리를 부리는 여성은, 지식과 언어와 존재의 결핍과 간극으로부터 말하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정상(이성)과 비정상(광기)이 동전의 양면임을 예시한다. 비정상으로 간주된 상태가 알려주는 진실은, 사회가 상징적 지배질서를 통하여 동일시의 이상을 강요하지만, 인간 주체는 그러한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 여성의 광기는 사회의 상징적 질서를 관통하는 가부장제에 대한 반란이며, '조직화 될 수 없는 하나의 여성적 구조물로서, 문화의 주변에서 작용하는 하나의 신성한 영혼'(엘렌 식수)이다. 임선희의 작품은 자신의 본능을 따라 솔직하게 나아가면서, 언어와 문화의 가장자리에서 작용하는 대안의 모델을 무의식중에 제시한다. 나무랄데 없이 잘 그려진 초상에는 언뜻 상징적 질서에 잘 어울리는 주체의 통일성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도처에서 균열이 감지되는 것이다. 임선희의 작품 속 여성들은 불안정한 경계에서 살고 있다. 그녀들은 바로 '과정중의 주체'(크리스테바)이다. 켈리 올리는 크리스테바에 대한 해설서에서 이러한 주체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계속 자기 동일성을 상실하고, 그 관계의 변동으로 불안정한 주체를 의미한다고 말한다. 임선희는 정체성에 대한 가장 뛰어나고 안정적인 표현인 초상화의 형식을 빌어서, 초월적 자아와 통일된 주체라는 가정, 즉 의미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가 단지 순간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준다. 거기에는 판단을 내리는 초월적 자아 그 이상의 무엇이 주체에게 있다. 견고한 초상형식 속에 안치된 불안정한 그녀들은 공인된 언어 너머에 존재하는 이질적인 요소들, 의미에 선행하는 이 다른 요소들의 존재를 예시한다. 기호적 충동으로 가득한 임선희의 초상화에서는 보이지 않은 균열 속에서 존재의 야성적 소리가 새어나오고 있다. ■ 이선영
Vol.20100706e | 임선희展 / LIMSONNIE / 任宣熹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