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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10_0616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30am~06: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Tel. +82.2.736.1020 www.insaartcenter.com
'사물'에서 '사물들'로, 관찰적 지각에서 통찰적 인식으로 ● 구은영의 모티브는 자연이다. 그중에서도 나무고, 가지와 이파리와 꽃잎들이며, 그것들의 숱한 교차와 중첩이다. 가지들 위로 이파리들이, 이파리들 위로 다시 가지가 중첩되기가 반복된다. 그 위로는 다시 꽃잎이, 때론 반쯤 투명한 구름이 얹혀진다. 끊임없는 비정형적 변주가 그 결과로 생성된다. 그럼에도 회화는 여전히 가볍고, 놀라울 정도로 평면성을 간직한다. 나무와 가지, 이파리와 꽃은 모두 윤곽으로만 존재한다.
사물 대상의 사실적인 묘사가 전적으로 누락된다는 점은 구은영의 회화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구은영이 사실의 목전에서 서구의 사실주의자들이 취했던 것과 반대쪽의 방향을 취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귀스타브 쿠르베에서 듀안 핸슨에 이르기까지, 사실에 대한 서구사실주의자들의 대체적인 입장은 사물의 곁으로 성큼 다가서서는 그 표면에 시선을 고정시키는 것이었다. 반면, 구은영의 형식은 사실의 뒤로 몇 걸음-또는 한참- 물러서는 것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이 물러섬-후퇴(後退)가 아닌-은 대체적으로 사물을 대하는 아시아적 감수성과 긴밀하게 연관된 것이다. 사물의 구체성은 기꺼이 누락된다. 어느 것도 2차원의 밋밋한 운명에서 일탈을 꿈꾸지 않는다. 배경은 사물 내부까지 침투하고, 이내 사물과 배경의 구분은 해체된다. 그 관계는 '상호적'을 넘어 '삼투적'이다. 부정되어야 할 것은 경계요 구분이다.
구은영의 회화에서 모티브들 간의 구분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깊이의 문제다. 하지만, 구은영의 지극히 '평면적인' 회화에서 깊이를 논하는 것은 넌센스가 아닐까? 깊이를 원근법적인 묘사가 이끄는 착시 현상이나 두터운 물감 층으로 가능한 마티에르 정도로만 한정한다면 그것이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구은영의 회화가 관여하는 깊이는 착시나 마티에르에 의한 것들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구은영의 회화적 중첩은 어떤 물성적인 차원의 깊이감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매우 얇은 물감의 층은 깊이를 형성되기보다는 오히려 취소하는 것처럼 보인다. 밑의 층은 그 위로 덮여지는 얇은 물감 층을 뚫고 표면으로 올라오고, 이러한 투과는 다음 층이 구현될 때도 마찬가지로 반복된다. 때문에 지속적인 중첩에도 불구하고, 구은영의 회화는 여전히 그 심도에 어떤 변화도 없는 종래의 평면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구은영의 회화는 은유적 심도를 취하면서도, 동시에 평면성이라는 회화의 근대적 본성을 견인한다. 자연의 무성한 생명력에 낭만적으로 반응하는 대신, 그것에 내재하는 복잡성과 연대의 신비를 담담하게 스케치해낸다. 이 균형감은 그의 회화가 생태적 정서와 안정감을 배양하는 토양이 되는 데 있어 핵심이다. 감관을 교란하는 과도한 '자극'의 탐닉이나 오락적 교양의 자취는 찾아볼 수 없다. 색조는 온화하고 따듯하며 그 변주는 시종 부드럽고 완만하다. 어떤 것도 다른 것에 돌출적이거나 극단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지 않다. ■ 심상용
Vol.20100614d | 구은영展 / KOOEUNYUNG / 具殷英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