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_캐논코리아 비즈니스 솔루션(주)
관람시간 / 10:30am~06:30pm
갤러리 라메르_GALLERY LAMER 서울 종로구 인사동 194번지 홍익빌딩 Tel. +82.2.730.5454 www.gallerylamer.com
사진작가 안경희의 개인전이 인사동 갤러리 라메르에서 6월 9일부터 15일까지 열린다. 작가는 자신의 경험에서 얻어진 기억의 단편들로 책을 바라보는 시선을 사진에 담았다.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책이라는 친근한 소재를 통해 따뜻한 감성을 표현한 작품들은 기억에 대한 잔잔한 감흥과 여운을 남기는 전시가 될 것이다. ■ 갤러리 라메르
책과 보이지 않는 기억의 흔적 ● 인간이 문자를 발명하고 난 후부터 오늘날까지 수많은 현학자들은 각자 자신의 생각을 책에 담아 삶과 죽음의 근본적인 문제를 제시하고 궁극적으로 유한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려 했다. 책은 인간의 지적 활동에서 문자의 조합이 만드는 사유의 그릇이며 자신의 생각을 타인과 공유하는 소통의 창구이기도 하다. 결국 책은 물리적 형태로 드러나는 사유의 장소임과 동시에 그 이면에서 인간의 이상과 욕구를 은닉한 보이지 않는 공간이다. 이러한 문맥에서 우리가 흔히 문학이라고 하는 장르는 인간의 사유를 드러내는 일종의 책의 예술인 셈이다. ● 그림의 역사에서 화가에 의해 그려진 책 이미지 다시 말해 책에 담긴 형이상학적인 실체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예술적 행위는 사실상 르네상스 시대 일부 종교화를 제외하고는 아주 드물게 나타난다. 그러나 19세기 사진 발명이후 책 이미지는 오히려 윌리엄 탈보트, 아돌프 으젠 디스데리, 만 레이, 어빙 펜, 랄프 깁슨 등 다소 많은 선구자들의 사진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그러나 그들이 재현한 책 이미지들은 각기 다른 예술적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다. ● 19세기 탈보트가 그의 시골 농장에서 책 형식으로 제작한 최초의 사진집 『자연의 연필』은 대부분 평범한 시골 장면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 중 엉뚱하게도 책 서가를 보여주는 특별한 사진이 있는데, 이 사진은 지극히 개인적인 의도로 촬영되어 오랫동안 해석 불가능한 이미지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비평가 로잘린 클라우스는 인덱스(index) 규칙에 의거하여 이 장면은 사진의 활용 가능성 즉 책을 지식을 담는 그릇으로 이해하듯이 사진 역시 인간 사유를 저장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으로 촬영되었다고 한다.
명함판 사진으로 유명한 디스데리 사진에도 책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때의 책은 모델의 액세서리로서 인물의 현학적인 신분을 보장하는 사회적 지표(sociogram)로 이해된다. 이를 경우 촬영된 책 이미지는 순수예술로서 촬영자의 주관적인 표현이라기보다 오히려 대중예술의 영역에서 당시 공통된 대중취향을 말하는 집단적 에토스로 이해된다. 또한 오늘날 현대 사진작가들 예컨대 어빙 펜과 랄프 깁슨의 사진에서도 책 이미지가 나타나는데, 공통적으로 큰 구도로 나타나는 책은 오래 전에 사라진 귀족성과 현학성을 암시한다. 왜냐하면 책은 인간이 가진 지적욕구와 지배계급의 우월성을 암시하는 정신적 지표이기 때문이다. ● 그러나 책을 보여주는 모든 사진들이 지적 사유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취향이나 사회적 코드로만 이해되지 않는다. 특히 주체-촬영자(sujet-operator)의 입장에서 책은 오히려 과거 경험적인 상황을 환기시키는 가장 분명한 기억-오브제(objet-memory)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러한 오브제는 오브제 공간을 우리가 살고 있는 주거 공간으로 비유해 볼 때 창고나 다락방과 같이 평소에 거주하지 않는 특별한 장소에 위치하게 된다. 왜냐하면 거실이나 침실에서 볼 수 있는 오브제들을 상용 오브제라고 할 때, 지하 창고나 다락방에 방치된 오브제들은 필요에 따라 그리고 무시간적으로 과거 기억을 환기시키는 비상용 오브제이기 때문이다. ● 여기 작가 안경희가 보여주는 책 사진들은 바로 이러한 기억-오브제로서 자신의 경험적인 상황을 은밀히 누설하고 있다. 다시 말해 장면은 인간의 지적 사유의 상징이나 책에 대한 보편적 해석이 아니라 촬영자로 하여금 이 장면을 만들게 한 어떤 형이상학적인 충동에 관계한다. 이때 작가의 책 이미지는 책과 인간과의 관계에서 혹은 책과 집단 이데올로기에서 더 이상 사유의 저장도 현학적인 상징도 아닌 창고에서 우연히 발견한 소품처럼 촬영자 자신의 기억을 직접 호출하는 지표 즉 사진-인덱스(photo-index)로 이해된다. ● 그런데 이와 같이 촬영자에 의해 호출된 기억은 오랫동안 문화적 산물로서 책에 관한 단순한 진술을 이탈한다. 기억은 오히려 논리적인 영역 밖에서 있음직하지 않는 환영이나 희미한 레미니센스와 같이 지극히 존재론인적 인상(impression)이나 감성적인 음색(tonalité)을 동반하는데 이럴 경우 촬영된 책 이미지는 책 자체의 물리적 확인을 넘어 과거 자신이 경험한 인상의 전이(轉移)로 이해된다. 그래서 작가의 사진에는 구체적인 형태도 분명한 설명도 없이 오로지 "여기 책이 있다"라는 단순한 출현만 있다.
이러한 감각의 전이에 관해 작가는 "사진 속의 책들은 대부분 10대 학창시절에 보았던 사전과 우연히 발견된 아버지의 책들이다. 내가 책을 보며 그러했듯이 책과 관계된 개인적 경험들 예컨대 책을 보는 버릇이나 기록하는 행위, 페이지 넘김, 보관하는 방식 등과 같은 물리적 요인들과 시간의 축적과 함께 내재된 기억의 단편들은 책 자체가 가지는 변이와 의미에 대한 시간의 사유를 가지게 한다"라고 말한다. 결국 작가의 사진 행위를 통한 재현 의도는 책이 은닉한 삶과 기억의 침전물 말하자면 삶의 뒤안길에서 책과 함께 슬며시 사라진 것에 대한 알 수 없는 아쉬움과 미련이다. ● 책과 함께 사라진 기억의 흔적은 또한 장면의 구성에서 분명히 나타나는데, 누렇게 변한 종이와 손때 묻은 책 페이지, 금방이라도 겉장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낡은 책은 마치 모든 것을 사라지게 하는 시간의 흐름과 부패에 거슬러 싸우는 전사와 같이 책의 위대한 영속성과 지속성을 잘 말해준다. 왜냐하면 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책의 시각적 확인이 아니라 책이 가지는 시간의 거역과 그 이면에 은닉된 기억의 존재론적인 흔적이기 때문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에 관련된 모든 기억은 곧 응시자 각자의 책으로 전염되고 확장되는 특별한 전이 과정 즉 예견치 못한 장면의 환유적 확장을 가진다. 다시 말해 작가의 책과 아버지의 오래된 책은 곧 우리 모두의 경험적인 "아무" 책으로 전이된다. 이를 위해 작가는 의도적으로 큰 구도로 책의 특징적인 한 부분과 단편을 강조하는데, 확대된 단편 이미지는 응시자 각자의 열린 공간으로 나아가 갑자기 소통을 위한 모든 정보를 중단시키면서 또한 이루지 못한 미련과 회한을 들추어내면서 우리를 감동시키는 또 다른 나(Moi)의 분신으로 나타난다. 바로 여기에 사진예술의 위대한 힘이 드러난다. ■ 이경률
사진 속의 책들은 대부분 10대 보았던 사전과 우연히 발견된 아버지의 책들이다. 지금까지 나의 책장 어느 한 켠엔가 있어 준 것이 신기할 따름의 책들인 것이다. 오랜만의 조우에서 그들을 조용히 관찰하고 사색하며 보여 지는 것들을 사진 속에 담았다. 그런 사진들에 애써 그 어떤 의도나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다. 다만 내가 책을 보며 그러했듯이 책과 관계된 개인적 경험들 예컨대 책을 보는 버릇이나 기록하는 행위, 페이지 넘김, 보관하는 방식 등과 같은 물리적 요인들과 시간의 축적과 함께 내재된 기억의 단편들로 책 자체가 가지는 변이와 의미에 대하여 사유의 시간을 가져보길 바랄 뿐이다. 사실은 이마저도 필요치 않을 수 있다. ■ 안경희
Vol.20100611d | 안경희展 / AHNKYUNGHEE/ 安庚喜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