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10_0526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4층 제2특별관 Tel. +82.2.736.1020 www.insaartcenter.com
한 겹 한 겹 쌓인 어두운 심연 속에서 따스한 형상이 시작되고 있다. 박기훈은 이전의 판화 작업과는 시각적으로 변모된 모습으로 작가의 본질에 다가선다. 안료를 쌓아가는 회화와 이를 다시 깎아 완성시키는 조각의 방식을 통해, 빛을 근본적 요소로 삼아 생명의 근원적인 힘을 드러내고 있다.
박기훈 작가는 디지털 매체가 범람하는 현대 미술에서 다시금 미술작품이 갖는 예술적 창조성의 의미를 숙고한다. 이번 작품에서는, 이전의 엑스레이로 투과한 뒤 컴퓨터 기술로 변형시킨 인체 내부를 현대인의 정체성으로 풀어내거나, 인간이 쓰는 사회적 가면을 인형에 비유하여 인체의 뼈 형상과의 대조를 통해 인간성과 비인간성을 드러냈던 디지털적인 판화 작품들과는 달라진 면모를 보여준다. 직접 돌 성분을 첨가하여 만들어낸 물감을 사용하여 겹겹이 안료를 칠하고 말리며 층위를 쌓아가는 손맛이 담겨있으며, 이를 정성스레 깎아나가는 작가의 신체적 자취가 남겨지는 것이다. 그러나 작품세계의 급작스러운 단절이 아닌, 오히려 그동안 작가가 추구했던 맥락에서 나온 자연스러운 소산이다. 여기에는 판화를 해왔던 작가적 특징이 묻어나오는데, 예를 들어 명암을 다루었던 경험을 통해 빛의 느낌을 섬세하게 찾는 데에 몰두하였고, 메조틴트나 소멸판 등 판화의 기법에 착안하여 어둠에서부터 점점 깎아내며 형태를 만들어 나갔다. 내용면에 있어서도 인체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하여 인형 그리고 동물과 식물의 소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해보이나, 결국 이들은 모두 인간적 특성으로 은유되어 작가의 인본주의적 태도를 확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작품 속 대상들이 빛을 받은 형상으로 나타나듯이, 빛은 박기훈 작가에게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의 빛은 시각적인 효과 외에도 정신성을 담고 있다. 빛은 그 자체의 발생으로서의 의미를 지닐 뿐 아니라, 다른 사물을 비춤으로써 생명 에너지의 원천이 되어 그 존재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번 작품에서의 빛도 눈에 의해 보여진 것 이상의 우리 마음속으로 공유된 빛의 체험, 즉 따스함을 품고 있다. 나아가 색감 또한 포근함을 불러일으키는데, 작품에 깊이 새겨진 선과 면 혹은 캔버스의 측면을 통해 그가 사용한 색감의 층을 하나씩 확인해보는 재미도 있다. 여기서 쓰인 색들은 단순히 우리가 대상을 시각적으로 바라봤을 때 보이는 색들이 아니라, 작가가 평소에 대상을 마음속에서 느끼고 견지했던 색감이 표출된 것이다. 주로 따뜻한 계열의 색들이 사용된 것으로 보아 대상들에 대한 작가의 긍정을 알 수 있다. 일반적인 회화에서처럼 흰 바탕이 점점 어두워지는 것과는 반대로, 이 작품들에서는 표면이 어둡고 깊숙이 파 들어갈수록 점진적으로 밝은 색감의 존재가 드러난다. 그리고 색감의 면적은 대상의 질감표현에 따라 광협장단이 신중히 조절된다. 대상들이 놓인 배경의 공간 또한 작가가 한 층 한 층 물감을 칠하고 말려서 단계를 쌓아가는 시간의 흐름과 결합되어, 공간과 시간의 동시성을 느끼게 해준다.
이렇듯, 박기훈 작가는 회화와 조각 매체의 복합적인 사용으로 빛을 통해 인간 주체를 발현하고 있다. 미술사의 흐름 속 포스트모더니즘의 회화의 복귀라는 큰 화두가 박기훈이라는 한 작가의 역사 속에서 구현되듯이, 작가는 이번 작품을 통해 새로운 국면으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 임성민
Vol.20100526d | 박기훈展 / PARKKIHOON / 朴己勳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