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선을 넘어서

CROSS OVER THE YELLOW LINE展   2010_0526 ▶ 2010_0607

임영선_노무현! 2-1_캔버스에 유채_115.5×90cm_2010

초대일시_2010_0526_수요일_05:00pm

참여작가 강성원_강요배_권순철_권여현_김기라_김봉준_김성연_김억_김은곤_김정헌_노순택 노원희_뮌_박불똥_박영균_박재동_박종갑_방정아_서용선_손장섭_신장식_신학철 양아치_오원배_윤동천_윤석남_이반_이종구_임영선_임옥상_조습_주재환_최병수_황재형

기획_윤범모_정영목 주최_노란선을 넘어서 전시추진위원회 후원_경향신문_노무현 재단

관람시간 / 10:00am~06:00pm

경향갤러리_KYUNGHYANG GALLERY 서울 중구 정동 22번지 경향신문사 2층 Tel. +82.2.6731.6751 gallery.khan.co.kr

노무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맞아 경향갤러리에서 2주간 열리는 『노란선을 넘어서』展는 윤범모 교수(미술평론가, 경원대 회화과)와 정영목 교수(미술평론가, 서울대 서양화과)의 기획으로 김정헌, 노순택, 오원배, 이반, 임옥상, 조습, 황재형 등 한국 화단을 대표하는 작가 34인이 모여 만든 전시이다. 넘어서는 안 되는 차도의 중앙선인'노란선'을 화두로 한 본 전시는 민주주의가 실종된 이 시대에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경계와 금기'에 대해 질문한다. 이를 통해'경계와 금기'의 실체와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를 밝혀내며, 궁극적으로는'경계와 금기'를 뛰어넘어 통합과 화합을 꾀하자는데 본 전시의 의의가 있다. ■

김정헌_육이오에도 살아남은...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2×90.9cm_2010
노순택_배후설, 메가바이트산성의 비밀-04_피그먼트 프린트_100×135cm_2009
이종구_봉화산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5×130cm_2010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맞아, 그를 기리고자 하는 미술인들이 모여 여기 작은 전시회를 갖는다. 이념과 정치적 성향을 떠난 전시회다. 그렇다고 다 떠날 수는 없다. 그의 갑작스런 죽음은 지금 이 순간에도 믿기지 않는, 무언가 허공을 대하는 느낌이다. 한 인간으로서, 한 국가의 통치자로서 무엇이 실체이고 무엇이 허상인지, 정치는 무엇이고, 이념은 무엇이고, 우리의 삶은 또한 무엇인지, 그의 죽음과 관련하여 갑자기 이러한 생각들이 허공으로 달아나는데 나는 아무 생각과 대책 없이 바라만 보고 있는 그런 느낌의 한 해를 보낸 것 같다. 나는 나의 생각이 어떠한 형식으로 판단되는 것이 싫다. 형식은 분류를 낳고, 분류된 사회성의 형식은 대부분 나의 생각을 모두 반영하지 않은 채 나를 대변하는 듯 떠돌기 마련이다.『노란 선을 넘어서』라는 타이틀을 건 이번 기획전도 이럴 공산이 크다. 기획자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이 전시가 노 전 대통령의 추모의 형식으로만 받아들여지지 않기를 희망한다. 『노란 선을 넘어서』라는 전시 타이틀은 이 기획전을 위해 모인 여러 작가와 평론가들 사이의 열띤 토론 가운데에서 도출되었다. 좁게는, 판문점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을 방문한 정치적 사건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넓게는, 모든 경계와 금기의 터부를 넘어 보다 나은 미래를 지향한다는 일종의 상징으로, 열린 마음을 갖자는 우리 모두의 자성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우리 국민은 '경계'에 대한 민감한 사회적 정서를 갖고 있다. 북한은 우리보다 더하다. 거의 무의식에 가까운 이러한 사회적 심리의 1급 원인으로 나는 일제의 36년을 먼저 꼽는다. 식민지 하에서의 일본인과 한국인 사이의 경계, 지배와 피지배 사이의 단호한 경계들, 또는 미묘한 경계의 파장들, 그로 인한 공포와 불신, 배반과 체념 등,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단골 메뉴처럼 등장하는 '친일'과'독도'시비도 이 소산이다. 여기에다가 남북한의 '분단'은 결정적인 불을 지폈다. 이념과 전쟁에 의한 강대국들 간의 경계와, 그 영향을 고스란히 우리 내부에서 실행한 민족 간의 분쟁과 갈등은 '경계'에 대한 우리의 모든 인식을 더욱 확고하게 심어주었다. 우리는 지금 이 영향을 받으며 살고 있다. 특히, '분단'에 따른'경계'의 모든 부산물들이 우리를 제한하고 있다. 기실, 곰곰이 따져보면, 우리의 모든 영역의 사고와 판단, 그에 따른 행동이 거기에 묶여있음을 알고는 나 자신도 섬뜩해질 때가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변화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타인과의 관계 또한 사회심리학적'경계'의 한 파장일진대, 자신의 내면 보다 타인을 향한 자신의 사회적'체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변화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항상 남의 눈치를 보고, 빨리 쉽게 변화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포스트모던'의 물길과 함께 이렇게 빨리 변화하는데 유독 변하지 않는 게 하나 있다. 그렇게 변화를 외쳐대면서 남북한의 문제만은 아직도 요지부동이다.'경계'에 대한 유연함이 왜 이 대목에서는 적용되지 않는 것일까? 거기에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분단'과 '통일'에 대한 저마다의 목소리가 다르다. 정책의 지속성과 일관성이 없다. 이 지구상에 유일하게 '통일부'를 행정기관으로 가지고 있음에도 그것에 대한 개념과 정책이 수시로 왔다 갔다 하며 정권의 눈치만 본다. 이제, '통일'은 각 정권의 정책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더 이상 '통일'이 정권의 통치수단으로 쓰여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하나의 일관된 흐름으로 정권의 교체와 무관한 초국가적 차원의 사업이어야 한다. 이제,'통일'은 우리의 일상이어야 한다. 더 이상 우리의 소원이나 꿈이 아닌 일상이어야 한다. 통일이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리는 시공간의 거리감을 줄여야 한다. 이제,'통일'이라는 말도 어울리지 않는다. '통일(reunification)'의 어감이 이제는 왠지 구시대의 산물 같다. 이념, 권력, 제국주의, 민족주의 등과 같은 획일성의 과거 같은 느낌이다. 이제는, '통일'도'융합(fusion)'이다. "남북한 통일"이 아니라 "남북한 융합"이 이 시대의 변화와 더욱 어울린다. '융합'이야말로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새로운 창조일 수 있다. 세계화의 요구가 심해질수록 먼저 풀어야할 것이 남북한 간의 유연한 접촉이다. 이 땅에 더 이상의 전쟁은 없다. 우리끼리의 전쟁은 더더욱 있을 수 없다. 모든 지식과 권력을 동원하여 '경계'에 대한 유연함을 심어 나가는 것만이 우리의 살길이다. ('통일, 다시 생각하자. - 그의 노란선을 넘어 -') ■ 정영목

주재환_부엉 부엉 울지 마라 民心天心 바보 무지개 웃고 있네_ (중앙일보 2009.5.30자 신문) '2009.5.29. 노 전 대통령 국민장'전단 양면사진 복사 확대, 파스텔_94×118cm_2010
컨테이너 시리즈 - 우정_디지털 라이트 젯 프린트_2010

시대정신의 구현과 거리가 먼 미술은 참된 미술일 수 없다. 시대정신 부재의 미술, 절름발이가 아닌가. 시대정신의 총아는 민주주의, 이 대목으로 들어가면 더 이상 고개를 들지 못하게 한다.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미술, 과연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한국은 지정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우여곡절을 감내하면서 존재한 나라이다. 한국은 이른바 선진국이라는 나라들과 존재 방식 자체부터 달랐다. 특히 간과할 수 없는 것은 분단국이라는 사실이다. 이 엄연한 사실을 외면하고 어떻게 민족과 국가의 장래를 꿈 꿀 수 있을까. 여타의 다른 나라와 다를 수밖에 없는 구조적 조건임을 인식해야 한다. 한국은 식민지, 분단, 전쟁, 군사독재, 시민혁명 등을 거친 나라이다. 지구상의 그 어떤 나라에서도 보기 어려운 굴곡 많은 역사를 지닌 나라이다. 바로 시대정신의 비중을 더욱 소중하게 다루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미술계 현실은 어떠한가. 파리, 뉴욕의 패션에 덩달아 따라 가기에 바쁜 것 아닌가. 순수라는 미명 아래 두 얼굴을 가진 미술가는 없는지, 헤아리게 하는 작금의 미술계 상황이 아닌가, 염려된다. 민주주의의 위기, 경제 위기, 남북관계의 위기, 이같은 3대 위기는 작금의 국내 정세로 볼 때 주요한 사항이지 않을 수 없다. 위기는 지도자의 역할을 기대하게 한다. 청와대를 걸어 나와 고향으로 간 최초의 대통령, 노무현 가치는 우리 시대의 새로운 담론으로 부상되고 있었다. 봉하마을에서 '시민 노무현'은 생태 환경문제 등'조용한 운동'을 전개하며 새로운 지도자상을 이룩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데, 상상불허의 사태를 만나게 되었다. 검찰의 부당한 조사는 끝내 전직 대통령을 부엉이바위에서 뛰어 내리게 했다. 이런 사태를 목도한 국민은 가슴이 아플 수밖에 없었다. 미술가들 역시 이 사태를 외면할 수 없었다. 평소 노무현 정권에 대하여 지지를 하건, 그렇지 않건, 가슴 아픈 일로 받아 들릴 수밖에 없었으리라. 일군의 미술가들은 사회, 역사, 민족, 통일 그리고 시대정신 등을 새롭게 각성하기에 이르렀다. 우리 시대의 역사적 사건을 미술가로서 대응하기, 바로 이번 전시의 취지와 맞물리기도 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시대정신은 훌륭한 덕목으로 부상되었다. 노란선을 넘어서, 이는 고정관념을 타파하는 혁신적 사고방식을 의미한다. 경계선을 넘는다는 것은 새로운 세계로의 진입이라는 말과 동의어이다. 보수적 입장이 아닌 진보적 입장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과거회귀의 태도가 아닌 미래에의 탐험이기도 하다. 경계선을 넘어서, 우리는 통일의 마당을 지나 세계의 무대로 달려 가야할 때이다. 그같은 계기의 하나로 노무현 정신이 있다. 이를 어떻게 소화하고 또 미술작품으로 반영할 것인가. 민족과 역사 그리고 사회, 이는 어떻게 작품에 투영되는가. 이번 『노란선을 넘어서』 출품작들은 이런 면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했다고 믿어진다. 시대정신이 부재하는 미술계에서, 한 시대를 이끌고 간 지도자를 평가하며, 미술의 길을 생각해 본다. 미술은 무엇을 위하여 존재해야 하는가. 그것은 바로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닌가. 사람 사는 세상! 이를 위해 우리는 노란선을 넘어야 한다. 경계선을 넘어 저 광활한 세계로 전진해야 한다. 바로 사람 사는 세상을 향하여! (시대정신의 미술 혹은 노란선을 넘어서) ■ 윤범모

Vol.20100525c | 노란선을 넘어서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