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wing 20. 박우혁의드로잉

박우혁展 / PARKWOOHYUK / 朴遇赫 / painting.graphic   2010_0519 ▶ 2010_0630 / 월요일 휴관

박우혁_어두운구덩이_종이에 연필_40×40cm_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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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10_0526_수요일_08:00pm

관람시간 / 11:00am~11:00pm / 월요일 휴관

테이크아웃드로잉_TAKEOUT DRAWING 서울 성북구 성북동 97-31번지 Tel. +82.2.745.9731 www.takeoutdrawing.com

"왜 어떤 것은 꼭 어떤 형태여야 할까?" - 디자이너 박우혁과의인터뷰 / 현(정현, 테이크아웃드로잉 아트 디렉터) 혁(박우혁, 카페 레지던시 20번째 체류자, 디자이너) ● '왜 어떤 것은 꼭 어떤 형태여야 할까?' 라는 질문은 디자이너 박우혁으로서의 자의식을 대변하고 있다. 그의 테이크아웃드로잉의 레지던시 체류는 본질적인 디자인의 의미를 파고 들어가기 위한 일종의 도피기간이다. 디자인과 아름다움, 디자인과 경쟁, 디자인과 경제가치와 같은 일련의 디자인 자본주의는 지나치게 시각문화와 권력 간의 비례관계를 과장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표피적인 디자인 정책은 되레 진정한 디자인의 부재로 도시를 상품으로 변질시키고 말았다. 공교롭게 전세계가 비극적 사건과 자연 대재앙이 터지는 현실에서 그럴싸한 표피만으로 포장되는 디자인 자본주의는 너무나 노골적이어서 가끔은 외설적으로 보일 정도다. 박우혁의 고민은 이런 동시대의 사건과 갈등에서 벗어난채 허상만을 만들고있는 디자이너라는 정체성의 한계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고민은 무엇이라 지칭하기 어려운 도형을 통해 외면화되는 중이다. 이것은 이름을 가질 수 없는 비정형적이고 비상식적인 도형으로 그가 파고들 질문의 형태이자 질문 그 자체를 시각화하는 것이다. 박우혁은 아름다운디자인, 아름다운 글씨는 어디에나 있으며, 누구나 그만의 고유한 형태와 글씨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에게 형태란, 균질화된 아름다움과는 다른, 자신을 닮거나 자신을 대신하는 '존재의 가치'를 지닌 유일한 '꼴'이기 때문이다.

박우혁_물음_종이에 연필_29.7×21cm_2010

레지던시를 꾸미면서 박우혁은 바스테이션 오른편에 작은테이블 하나를 놓고 그 옆에 대형복사기 한 대를 놓았다. 소음이 많은 카페 구석에서 그는 형태는 가졌으되 이름이 없는 어떤 것을 반복적으로 그리고 있다. 그에 따르면, 원형도 다각형도 아닌 이 모호한 도형은 일종의 '구멍', 또는 '구덩이'라고 한다. 5월 6일, 오후 7시부터 80분 가량 우리는 구덩이들 사이에서 인터뷰를 진행했으며, 나는 구덩이를 파듯 그를 파헤쳤다. 나의 성격 상, 집요함은 부족한 인터뷰였다. 하지만 사건의 진실은 언제나 사건 이후에 밝혀지듯이 며칠이 지나고 우리의 인터뷰는 전화로 이어지면서 전보다 박우혁을 가깝게 이해할 수 있었다. ● 현: 먼저 대학에서 받았던 디자인 교육에 대해서 말해 볼까요? 혁: 사실, 특별히 디자인을 공부하고 싶었다기 보다는 미술을 하고 싶었어요. 집안의 반대도 있고 해서 순수미술이 아닌 안전한 디자인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입대 전까지는 학교 생활에 적극적이지 않았어요. 제대 후, 우연히 한글디자인 소모임인 '한글 꼴 연구회'가입하게 되면서 타이포그라피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적성에도 잘 맞았습니다. 가입동기는 다양하지만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었던 것 같아요. 홍대의 정서 상, 공모전에 참여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어쩌다 참가한 공모전에 당선이 되면서 타이포그라피와는 더 가까워졌습니다. 제가 미술 전공자치곤 그림을 잘 그리지도 못하고, 건축적인 구성력이 치밀하거나 영상에도 그다지 소질이 없던 편이었어요. 대신 평면 위에서 그래픽적으로 편집을 하는 쪽에는 재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가 편집 디자인의 붐이기도 했고요.현: 타이포그래피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 있나요? 혁: 한글 꼴 연구회가 창립할 당시가 아마도 한국적인 타이포그라피에 대한 고민들이 등장하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안상수선생의영향도적지않게작용했을겁니다. 제겐 한글이 가장 익숙한데요. 저는 이미 존재하는 글자꼴 그대로를 사용하길 선호합니다. 텍스트 역시 글자꼴을 변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사용하죠. 물론, 저도 새로운 서체 디자인을 만들기도 합니다만, 워낙 많은 작업을 요하는 섬세한 노동이죠. 제게 타이포그래피 디자인은 상식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상식적 판단 하에 원래 글씨를 타이포로 사용할 뿐입니다.현: 이제 이번 레지던시에 대해 얘기해 볼까요? 혁: 원래 시작 전에는 기초도형인 점, 선, 면 만을 사용해 디자인적인 드로잉이 무엇인지 실험해보려 했어요. 그래서 어떤 다각형이 떠올랐죠. 그러다가 그 동안 형태에 대해 내렸던 많은 정의들이 너무 화석화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습적으로 일이 진행되고, 이런 경험이 쌓이면서 디자인에 대한 한계를 느끼게 되었죠. 디자인은 절대 작가주의적으로만 흐를 수가 없잖아요. 늘 다른 사람들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 그리고 보편적으로 사람들이 좋아하는 디자인과 세련된 디자인 사이의 간극에 대한 물음이 생겼어요. 그래서 이번엔 해 보지 않은 그런 디자인을 탐구해 보자고 생각했죠. 저의 고민은 모든 디자이너의 고민일 겁니다. 디자인은 늘 답을 찾아야 하니까요. 그런데 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거죠. 아무 것도 아닌 그런 형태를 찾아보자. 지금까지의 교육과 직업적 경험을 버리고 '영도 상태'에서 새 것을 찾는 게 과연 가능할까? 이게 저의 레지던시를 하게 된 동기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현: 그렇다면 레지던시 체류기는 "형태를 찾아가는 과정"이군요. 혁: 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어떤 것은 꼭 어떤 모양일까?" 디자인은 결정과 선택이 매우 중요하죠. 즉 형태의 정체성은 명확하고 결정적인 것이어야만 하니까요. 그런데 갑자기 왜 그래야만 하는지 의구심이 드는 거에요. 어떤 것도 어떤 형태로 규정되거나 구속되지 않는 비 정형적 디자인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아보는 게 제 목표라면 목표일 겁니다. 비정형적 디자인을 찾아가는 과정은 단지 디자인의 기본을 되찾기 위한 반추의 시간만은 아니다. 그가 찾는 것은 형태로부터의 자유나 새로운 형태의 발견을 위한 모색의 과정 또한 아니다. 그는 되뇌었다. " 저 구덩이를 바라보세요". 구덩이라 이름 붙여진 이 불분명한 도형은 현실과 분리되어있는 디자인의 현실을 지시하고 있다. 이익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겠지만, 이런 사회구조가 만들어낸 올바른 형태, 팔리는 형태라는 틀을 통한 차이는 간접적 차별로 연장되는 게 현실이다. 들뢰즈는 이 사회가 집단 무의식이 반영된 맹목적인 표피로 구성되어있다고 비판하면서, 이런 상황에서 개인이란 매우 불확실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토로했다. 그렇다면 불확정적 도형에서 나와 당신이 보아야 할 것은 그것의 다중적 의미로서의 사회적 가치보다는 '존재의 이유'일 것이다. 정현

박우혁_어두운구덩이_털실_250×250cm_2010

1. 어두운 구덩이    검은 벽 앞에 남자가 서있었다. 검은 벽은 완전히 검은색이 아니어서 오히려 회색에 가까웠으나 얼룩져있어서 딱히 어떤 색이라고 말하기 힘들었다. 얼룩진 벽에는 남자의 두배반쯤되는 지름을 가진 원도 아니고 다각형도 아닌 형상이 그려져 있었다. 남자는 그 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원도 아니고 다각형도 아닌 형상의 안은 매우 어두웠다. 그곳은 깊이를 알수 없는 구덩이처럼 보였다. 나는 그 형상앞에 선 남자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 2. 뚜껑    원도 아니고 다각형도 아닌 형상이 낯익었다. 어디선가 본 원의 형상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것은 뚜껑으로 닫혀있는 원이었다. 분명히 다른 모양이었으나 어딘지 모르게 닮았다. ● 3. 검은 안개    형상의 안은 검은 안개 같은 것으로 자욱한 것 같았다. ● 4. 도시   구덩이 안에 검은 안개로 가득찬 도시가 있었다.

박우혁_P1_종이에 인쇄_29.7×22cm_2010
박우혁_P1_종이에 인쇄_각 29.7×22cm_2010

5. 광장   도시는 넓고 평평한 광장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었다. 광장은 구덩이의 입구처럼 원도 아니고 다각형도 아닌 모양이었다. ● 6. 보석  광장엔 사람들이 가득차 있었다. 낮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밤이었다. 밤이었으나 낮처럼 밝았고 소란스러웠다. 광장의 가운데에 빛나는 것이 있었다. 처음보는 모양의 보석이었다. 보석에서 빛이 났다. 나는 몇 개의 보석을 가지고 있으나 그 보석에선 빛이 나지 않았었다. ● 7. 강   도시의 한켠에 강이 있었다. 강은 어둡고 끈적했다. ● 8. 영상   광장 밖에 영상이 쏘아지고 있었다. 어두운 허공으로 영상이 흩어졌다. 광장 밖의 사람들은 허공의 영상을 향해 절했다.

박우혁_지도_종이에 연필_29.7×21cm_2010

9. 생물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생물이 흐느적거렸다. 눈이 빨간 생물은 광장 밖을 흐느적거리며 사람들을 핥아대고 있었다. ● 10. 남자   검은 벽 앞에 있던 남자가 광장에 있었다. 남자는 보석을 보고 있었다. 남자는 보석에 매혹됐다. ● 11. 사기꾼   광장 안의 사람들 중에 사기꾼이 있었다. 그는 광장의 가장자리에서 광장 밖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남자가 사기꾼에게 다가갔다. ● 12. 열쇠   사기꾼이 말했다. "내가 너에게 보석에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열쇠를 주겠다." 남자가 말했다. "하지만 보석에 가장 가까이 가면 검은 안개가 날 가만두지 않을텐데?" 사기꾼이 말했다. "그건 내 알바가 아니지, 난 단지 너에게 열쇠를 줄 수 있을 뿐이야." 남자가 말했다. "열쇠의 댓가는 무엇인가?" 사기꾼이 말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없다. 열쇠가 너에게 바랄 것이다." ● 13. 두려움   남자는 사기꾼으로부터 열쇠를 받았다. 남자는 이제 보석에 가장 가까이 다가갈수 있었으나 검은 안개가 두려웠다. 남자는 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안개와 끈적이는 강과 눈이 빨간 생물이 자신의 뇌 속으로 스며드는 상상을 했다. 열쇠를 가졌으나 보석에 다가갈 수 없었다. 남자는 말했다. "열쇠가 원하는 것은 나의 두려움인가…" ● 14. 꼭지점   남자는 보석의 상공에 떠도는 검은 안개를 경계하며 보석을 바라보았다. 남자는 열쇠구멍을 찾고 있었다. 남자는 열쇠구멍이 보석의 꼭지점에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남자는 꼭지점을 찾을 수 없었다. 보석은 곡선도 아니고 각도 아닌 모양이었다. ● 15. 준비   열쇠가 말했다. "너는 보석의 꼭지점을 볼 수 없다. 너도 이미 알았겠지만, 너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남자는 열쇠의 작동방법과 꼭지점의 위치를 물어보지 않았다.

박우혁_검은안개_종이에 연필_29.7×21cm_2010

16. 물음   나는 원도 아니고 다각형도 아닌 형상의 앞에 서있는 남자에게 물었다. "왜 보석을 가져오지 않았지?" 남자가 말했다. "그것은 보석이 아니다. 아무 것도 아니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아닌 그대로 놔두는 것이 좋다." ● 17. 기억   나는 남자가 서있던 원도 아니고 다각형도 아닌 아무것도 아닌 형상이 내가 예전에 본 뚜껑이 닫힌 원과 같은 것임을 깨달았다. 그것은 달라보였지만 같은 것이었다. 나는 남자가 이미 사라져 없는, 아무것도 아닌 형상의 구멍을 들여다 보았다. 보석은 검은 안개 저편에서 흐릿하게 빛나고 있었다. ■ 박우혁

Vol.20100524f | 박우혁展 / PARKWOOHYUK / 朴遇赫 / painting.graph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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