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된 시간' & Open Studio

방인희展 / BANGINHEE / 方寅姬 / painting.drawing   2010_0518 ▶ 2010_0622

방인희_존재-모음들 Self portrait_아카이벌 잉크젯 프린트, 종이에 색연필_186×112cm_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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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10_0612_토요일_03:00pm_설미재미술관

후원_경기문화재단

2010_0518 ▶ 2010_0602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이마주_GALLERY IMAZOO 서울 강남구 역삼동 735-33번지 AAn tower Tel. +82.2.557.1950 www.imazoo.com

2010_0608 ▶ 2010_0622 관람시간 / 02:00pm~06:00pm / 주말_10:00am~06:00pm / 목요일 휴관

설미재미술관_SEOLMIIAE ART MUSEAM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신천리 721-15번지 오픈 스튜디오 Tel. +82.31.585.6276 www.artsm.kr

즐거운 방에서 ● 옷을 벗으면 남는 게 있으니 가벼운 흔적이었다. 전에는 옷의 무개가 종이 위 떠 있었다면 옷이 옷을 벗어 어디로든 번져가서 그곳에 안착을 한다는 거란다. 누군가 입고 간 옷이 주인을 기억하였는데, 지금은 자유가 되어 관념의 세계를 벗어났다. 그곳은 자신에게 있어서 돌아가야 할 곳을 상기시켜준 중요한 근원이었고 또한 우리에게 헤어날 수 없는 망각의 저편이었다. 모두가 옷을 벗으면 그가 부자인지 권력자인지 거지인지 월급쟁이인지, 그런 구분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방인희_Mom's dress_메디움 캐스팅 종이에 연필드로잉_140×183cm_2010
방인희_존재-모음들 10-Ⅱ_아카이벌 잉크젯 프린트, 종이에 색연필_186×112cm_2010

여기 종이 위로 오를 때 그저 옷이었다는 기억과 흔적밖에 더 무엇이 있겠는가. 그 기억은 다시 한 번 자유를 입고 내가 그린 옷으로, 자유로운 상상을 하는 것으로 행복한 고민을 하는 것이다. 그러한 방향은 적절한 것이다. 이제 옷은 지극히 가벼운 틀이다. 몸을 덮은 무게가 있는 물질도 관념의 이미지도 아니다. 언제든지 떠날 수 있고 경쾌하게 사유할 수 있는 자유로운 영혼이 되었다. 미끄러지는 드로잉과 손끝에서 번지는 색은 시간이 흘러가는 데로 얼룩져 간다. 당장의 시각을 자극하는 건 왠지 자연스럽지 못하고 여물어가는 세월의 나이에도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조금 허술하거나 덜 완벽하여도 그것이 더 인간적인 냄새를 풍긴다. 언젠가 눈에 거들떠 보이지 않던 바닥이 보였다. 여지없이 밟고 털며 지나치는 무관심한 장소였던 그곳이 눈에 들어 왔다. 어떤 미장이의 취향이 드러난 매우 평범하기 그지없는 타일이 먼지에 긁혀 오래되었다. 시선이 꽂히고 생각이 머물렀다.

방인희_S#.09-Ⅲ_아카이벌 잉크젯 프린트, 종이에 색연필_186×112cm_2009~10
방인희_Black dress10_아카이벌 잉크젯 프린트, 종이에 색연필_186×112cm_2010

이와 같이 문을 열고 왕래하는 사람들은 신발에 묻은 흙을 털지 않는다. 언제든 그 신발을 싣고 밖으로 나갈 수 있다. 잘 갖춰지고 잘 빠져 나온 옷에 이런 먼지와 같은 드로잉이 요구되기란 참 갑갑한 조건이었었다. 무거운 프레스기계를 멀리하고 내 무게를 실어 종이를 밟는다. 초봄 보리 싹이 나오게 하기 위하여 땅을 밟았던 시절을 기억한다. 그때의 흙은 참으로 폭신하였다. 손이 하는 일을 다루었던 게 이제는 발이 하는 일을 다루게 되었다. 바로 여기서 살고 있고 바로 여기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 더 현장감 있게 다가온다. 원래 옷의 본성은 그런 것 같다. 어제는 옷의 정면성이 사각형 안에서 표본으로 드러나 있었다. 그래서 앞면과 뒷면이 동시에 연출되었었다. 옷이 가지고 있는 메타포를 명확하게 재현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었다.

방인희_나의 배넷저고리_메디움 캐스팅 종이에 연필드로잉_70×100cm_2010
방인희_Her memory_ 메디움 캐스팅 종이에 연필드로잉_165×100cm_2010

아직도 이러한 시각에 큰 변함은 없으나, 지금에 와서 옷을 넘어서는 많은 것들이 의식되었다. 삶의 구석을 연결해 주는 것 또한 그 구석에 개인적인 부끄러움과 흔적이 바닥으로 베어 있다는 것이다. 테이프로 찢어서 막 붙인 듯 우리의 기억이나 일상은 정리되어 있지 않다. 그런 상태로 떼가 묻어 그 자리가 곧 사연이 되었다. 언제든 테이프만 뜯으면 떠날 수 있다. 삶의 터전이 가볍고 약한 접착물에 의지하고 있다는 게 아니라 오늘 옷을 벗고 내일 다른 옷을 입는 기분과 같은 환기다. 어제 입었던 옷을 오늘 다시 입을 수도 있고 다른 옷을 입을 수 있다. 어떤 인과관계도 아니고 삶의 무거운 철학도 아니다. 기분이 가는 데로 아침 햇살이 비춰오는 양만큼 마음이 동(動)하는 것이다. 직접 만든 옷에 마음이 더 가고 오랫동안 입었던 옷에 정이 더 가듯, 연필을 든 손으로 옷의 드로잉에 참여하는 행위가 그렇게도 즐거웠다. 또한 그 옷이 나와 알고 지내는 사람에게 헌납된 것이어서 더욱 뿌듯하고 만족스럽지 아니한가. 어려운 미술사를 뒤로하고 새로움이란 고상한 단어 쓰기를 잠시 멈추고 자연의 시간이 만들어낸 틈 사이로 신선한 기운을 교감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언제부턴가 창문 너머로 들어온 빛살을 잡고 옷을 그리는 일을 시작했다. ■ 김용민

Vol.20100524e | 방인희展 / BANGINHEE / 方寅姬 / painting.draw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