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10_0519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01:00pm~07:00pm
대안공간 도어 OPEN SPACE DOOR 서울 마포구 동교동 177-22번지 B1 Tel. +82.10.9441.9335 www.thedoor.co.kr club.cyworld.com/moondabang cafe.naver.com/moondabang
HIDDEN GAME_우연을 가장한 선택게임 ● 오늘 하루도 무언가를 먹기 위해 선택하고 누구를 만나 무엇을 할지 고민하며 같은 시간 안에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지 수많은 사항들 중 몇 가지를 뽑아놓고 하루의 동선을 그려 나간다. 이처럼 현대의 나는 빠른 변화에 적응하며 살아가기 위해 더 많은 것에 대해서 더 빠른 선택과 결정을 요구 받는다. 이것을 나는 우리 삶에 숨은 '선택게임'이라고 말한다. 표면적으로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무수히 많은 복합적 선택 요소들이 다층적으로 내제해 있는 삶은 곧 숨겨진 (선택)게임(hidden game)이다.
게임은 본래 그 결과를 알 수 없는 우연을 내포한다. 그래서 모험이기도 하고 해도 해도 재미있는 경쟁이다. 우리는 이렇게 재미난 경쟁 속에 살고 있다. 그런데 현대사회의 게임에는 그 게임을 더욱 복잡하고 모호한 층위로 만드는 요소가 존재하는 것 같다. 너와 내가 존재하는 지금 이 순간의 물리적 시공간과, 그 안에서 느끼고 그것을 근거로 추측해 볼 수 있는 어떤 요소들 외에도 어디선가 나도 모르게 게임의 법칙과 결과를 바꾸는 또 다른 힘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나는 사회의 환경 변화로부터 찾는다. 현대 사회에 미디어가 발달하고 그에 따라 가상의 공간들이 증폭하고 그 안에서 선택의 주체인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우연한 사건들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것들이 중첩, 변형, 반복되는 현상들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삶의 더 많은 우연들과 마주치게 된다. 그 속에서 내가 경험하는 삶의 테두리, 접하게 되는 상황, 해야 하는 선택들, 그것에 대한 결정권, 영향력 등이 모두 바뀌게 된다. 즉, 과거에 알고 있었던 게임에 대한 법칙이 바뀌게 되는 순간이다.
이렇게 우연적 돌발 상황에 익숙해진 경험과 행동방식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사고와 소통방식 또한 바꾸어 놓는다. 이 경험은 현재의 너와 나를 순간의 너와 나로 바꾸고, 너와 내가 나눈 사고와 말들은 예측하지 못한 모습을 하고 어디론가 끝없이 내달린다. 나는 내 말들을 끝까지 책임질 수 없고 네가 시작한 말이었다고 해서 너에게 끝까지 책임을 물을 수도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 속에서는 너와 나의 유일성조차 의심받는다. 우리 삶의 선택게임도 이 방식과 마찬가지이다. 주체로서 게임에 임하는 자(game player)와 그 주체가 가진 판단기준, 비밀의 통로를 거친 게임의 결과도 분명 이 강력한 힘에 기대고 있는 것이다. 이 강력한 힘이 어떤 형태를 띠며 무슨 이름을 가졌는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무언가에서 제3, 제4로 파생되는 것이 아닌 온전히 새롭게 거듭하여 증식하는 어떤 에너지, 이것은 우리 삶의 선택게임에서 우연을 조장하고 결과를 흐리는 강력한 힘이다. 하지만, 이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에너지는 우리를 선택의 게임에서 혼동으로 몰아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또 다른 선택을 위한 도구와 힌트로서 작용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는 여러 가지 방식의 선택들과 그 선택들을 가능케 하는 새로운 사고체계가 요구될 뿐이다.
나의 작업은 도심 한 복판의 특정 공간을 작품이라는 선택상자 안에 넣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간판, 표지판, 상업 광고판, 온갖 현란한 굉음과 이미지들이 유독 많이 중첩·증폭되고 넘쳐나는, 그만큼 선택의 요소들이 표면적으로 많이 드러나 있는 명동을 주된 소재로 삼는다. 장소에서 개개인의 존재는 중요치 않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얼마든지 맞닥뜨릴 수 있는 우연적인 선택의 상황들만이 남아 있는 것이다. 한 장의 사진은 컴퓨터 작업을 통해서 각기 톤을 다르게 한 여러 장으로 만들고, 그 이미지들의 놓는 위치를 미묘하게 달리함으로써 겹치고 쌓아 나간다. 이미지 레이어를 겹치게 되면 최초의 이미지에서 볼 수 있었던 선명한 상이 흐릿해지면서 어떤 부분들은 지워진 듯이 보이게 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 시야에 나타난 최초의 이미지에서 기존의 방식으로 인지하고 지각할 수 있었던 부분들, 즉 선택의 규칙들은 없어진다. 이 결과물 속에서 어떤 이는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 없어서 선택할 것이 없다'라고 느낄 수도 있고, 어떤 이는 기존의 그 무엇을 추측해 보려 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이는 새로운 규칙들을 발견해 보려 시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작가는 그 어느 쪽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지만 작품에서 몇 발짝 떨어져 보면 작품에 어렴풋이 탄생하는 새로운 규칙들을 보여주고자 한다. 하지만 결코 그것은 또렷하지 않다. 그것은 아직 그 자신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하나로 귀결될 수 있는 정답에 대한 힌트로서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용히 그 존재감만이 드러날 뿐이다. 이렇게 모호하고 불명료 해보이는 게임은 오히려 삶의 이면에 감추어진 수평적이고도 메타모포시스(metamorphosis)적인 선택과정과 결과의 무수히 많은 가능성들을 보여주고자 하는 또다른 시도이기도 하다. ■ 김지혜
Vol.20100520i | 김지혜展 / KIMJIHEA / 金智惠 / printing.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