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10_0514_금요일_06:30pm
문화체험비_2,000원(단체동일)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월,공휴일 휴관
갤러리 도트_gallery DOT 울산시 남구 무거동 626-6번지 1층 Tel. +82.52.277.9002 www.galleryDOT.co.kr
어느 날 지하철을 탔다. 사람들이 꽉 차있는 열차 안에 있는데, 환승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내리고 마침 앉을 자리가 한 군데 생겼다. 정차한 후 문이 열리는 순간 승차하시는 한 아주머니가 앉을 자리를 발견하고 그곳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오셨다. 비록 그 자리를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언제라도 자리가 나면 앉기 위한 준비가 되어있는 그녀의 모습에는 비장함이 느껴졌다. 나는 그녀에게 앉는 자리를 어느 방향에서든 감시할 수 있도록 그녀의 뒷모습에도 얼굴을 하나 더 그려줬다.
한 아저씨는 한곳만을 계속해서 응시하고 있었다. 그 시선을 따라가 보니 맞은편에 앉아있는 한 몸매 좋은 여성의 가슴부위를 보고 있었다. 그 여성은 아저씨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몸매엔 자신감이 있어 보였으나 얼굴에는 자신감이 없는 듯, 고개를 숙인 체 있었다. 그래서 난 그녀의 얼굴에 깨끗한 피부를 가진 마스크를 씌워주고, 아저씨에게는 보고 싶은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그의 눈을 자유분방하게 늘어나도록 그려주었다. 나는 오늘도 일상 속에 마주치게 되는 많은 사람들을 바라보며 새로운 캐릭터들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그려나간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나와 나를 포함한 지금의 많은 사람들은 남의 눈을 의식하고 이미지를 중시하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무의식 속에서'나는 어떤 사람인가?'보다는'오늘도 어떤 이미지로 포장할까?'를 더 신경 쓴다. 그래서 스스로 정한 캐릭터를 끝까지 연기해내고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그 캐릭터를 놓치지 않기 위해 거기에 걸 맞는 이미지를 유지해야 한다. 문제는 남은 속여도 스스로는 못 속인다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나는 정체성을 인식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시선'이라고 느끼게 되었다. 그 후 일상 속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대상들의 감추어진 자아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대상을 바라보게 되었고, 그렇게 본 것들을 그려나가기 시작하였다.
나의 작업에는 다양한 모습의 자아를 보여주는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이 캐릭터들은 사진기를 통해 내가 경험한 일상의 현장을 찍은 실제 대상들이며, 나는 이 사진들을 가지고 내가 바라보는 시선으로 대상들을 상상하고 변형하며 낙서하듯 그려나간다. 내 눈은 내면을 투시하는 창이 되어, 비춰지는 대상들을 새로운 캐릭터로 변화시켜준다. 그림 안의 캐릭터들은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이지만, 우리가 흔히 보는 모습이 아닌, 감추고 싶거나 소망하는 자아가 투명하게 드러나 보임으로, 각자의 사연이 있는 독특한 캐릭터의 모습으로 보여진다. 문득, 그림을 그리다가 생각해보았다. '나에게 투시되어 보여지는 저 많은 대상들이 결국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은 아닐까?' 투명하게 드러난 캐릭터들을 통하여 또 다른 자신의 자화상을 발견해나가고 공유하면서, 서로의 관계성 속에서 진정한 자아를 함께 만들어가기를 원한다. ■ 양열
Vol.20100518f | 양열展 / YANGYEOR / 梁熱 / pr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