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도시-폐쇄된 환상

구본석展 / KOOBONSUK / 具本錫 / painting.video   2010_0511 ▶ 2010_0522

구본석_the city_혼합재료_91×122cm_2010

초대일시_2010_0511_화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이정갤러리_e·jung gallery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인터콘티넬탈호텔내 B2 C-22 Tel. +82.2.511.6466

밤의 도시 - 폐쇄된 환상 ● 구본석의 이번 연작에서 볼 수 있는 외관적 특징은 두 가지다. 첫째, 불빛으로 드러나는 도시의 밤의 정경-이것은 하나의 심상으로서 지시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핫픽스의 규칙적인 나열을 통해 그러한 심상이 불현듯 사라지면서 등장하는 사물화 되는 작품의 모습-이것은 그 화려한 재질감에도 불구하고 차갑고 규칙적인 모습이다. 하나는 환영적인 의미의 세계를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것을 붙잡아두는 어떤 질서를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빛과 어둠이 뒤엉키는 현란한 밤의 풍경들 속으로 빠져드는 의식을 붙잡아두기 위해 반복해서 주문을 외우듯, 촘촘하게 나열되는 핫픽스들은 현란한 장식적 효과에도 불구하고 어떤 종류의 안정과 질서를 약속하는 듯하다. 그런데 이러한 효과는 사뭇 과시적이다. 반짝이는 핫픽스의 표면들은 아주 작은 빛의 반사에도 찬란하게 반짝이면서 스스로의 물질성을 과시한다. 이렇게 작품의 표면이 강렬한 시각적 과시의 효과를 획득하게 되면 그를 보는 시선은 더 이상 그 이면의 환영적 공간을 주목하지 않게 된다. 캔버스의 화면은 그 자체로 물질화된 현란함에 만족한다. 하나의 심상적 이마쥬-판타지가 잊혀지면서 핫픽의 화려한 나열들이 작품이 가진 환영적 공간을 축소시켜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캔버스의 푸른 바탕위에 핫픽스의 나열로 만들어지는, 3차원적 환영도 2차원적 실재도 아닌 기이하게 독자적인 공간이다. 그 속에서 관객의 시선은 밤의 도시라는 심상 속으로 빨려들어 갈듯 하면서도 다시금 작품의 사물성에 부딪혀 튕겨져 나오기를 반복한다.

구본석_the city_혼합재료_91×122cm_2010
구본석_the city_혼합재료_90×160cm_2010
구본석_the city_혼합재료_73×91cm_2010

이렇게 캔버스의 표면에 장식적 사물들을 규칙적으로 배열하는 형식을 우리는 이미 노상균의 작업을 통해 경험했었다. 이들 모두는 고산금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언어적 재현체계, 즉 우리가 사는 현상세계의 구조 그 자체가 가진 강박적인 반복의 특성을 강조함으로서 시각예술이 빠져있는 재현과 재현불가능의 난점을 암시하는 작품들이다. 구본석의 작품이 이들의 작업과 구별되는 것은 환영의 차원을 교묘하게 도입하는 것에 있다. 구본석은 작품이 지속적으로 밤의 도시의 심상이라고 할 수 있는 어떤 환영적 요소를 암시할 것을 허용한다. 그러면서도 다시 촘촘히 박히는 핫픽스들의 규칙성을 통해 이러한 환영들은 통제되고 비인간화된다. 우리는 분명 화면 너머에 존재할 수 있는 어떤 환영들을, 라캉이라면 판타지($◇a)라 불렀을 그것을 암시받고 있다. 그러나 핫픽스로 뒤덮인 작품의 물질적인 박력은 이러한 감상적 전이를 단번에 차단하고, 관객의 시선을 다시 붙잡는다. 그러고 나서 시선을 매혹시키는 것은, 즉 판타지를 해체시키고 다시금 시선을 되돌리게 하는 것은 핫픽스가 가진 (라캉적 의미로서의) "실재적", 물적 화려함이다. 구본석은 이렇게 "실재"가 빛을 발하게 하는 테크닉을 발명해낸다. 스스로 빛을 발하는 발광체로서 다시 태어나는 "실재"의 도시는 밤이 아니라 캔버스에 기계적으로 칠해진 푸른 물감을 배경으로 솟아오르고 있는 것이다.

구본석_the city_혼합재료_60×80cm_2010
구본석_the city_영상설치_00:02:11_2010
구본석_the city_혼합재료_131×160cm_2008

그런데,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구본석의 이번 연작에서 가장 본질적인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오히려 갤러리 한편에 등장하는 모니터 화면 속에 있다. 도시 위로 밤이 흐르고 있는 이 풍경은, 캔버스에서는 물질화되어 폐지된 판타지의 어떤 원본과 같은 것이다. 반복되도록 분절된 시간 속에 고착된 밤의 판타지가 모니터의 화면에 폐쇄된 채로 등장한다. 동영상은 캔버스의 이마쥬가 어딘가에 남겨놓은 판타지이며, 더 이상 환영적 효과로 관객의 마음을 현혹시킬 수 없는 영상이다. 이를 통해 관객은 캔버스 작품이 암시하는 판타지가 허구임을 다시금 확인하도록 유도되는 것이다.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수십 초 간격의 비디오 이마쥬는 캔버스 작업들의 근저를 흐르면서 그렇게 "부정적 지시"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것, 바로 여기에 구본석 작업의 핵이 있다. 이마쥬와 사물 그리고 그들의 판타지를 그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구별해내고 처리하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캔버스라는 사물을 가장 시적인 방식으로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것, 구본석의 이번 연작은 이러한 과정들을 근거로 해서 "밤의 도시"에 대한 자신 만의 "정치적-형이상학적" 입장을 정초해 내고 있다. ■ 백상현

Vol.20100517b | 구본석展 / KOOBONSUK / 具本錫 / painting.video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