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사당과 B-boy

안기찬展 / ANGICHAN / 安起燦 / painting   2010_0514 ▶ 2010_0530 / 월요일 휴관

안기찬_남사당과 B boy1_ 면에 감즙 염색 후 발색, 철장액 매염에 황토 채색 질감, 금박_50×100cm

초대일시_2010_0514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대안공간 반디_SPACE BANDEE 부산시 수영구 광안2동 169-44번지 Tel. +82.51.756.3313 www.spacebandee.com

전통과 현대, 그 사이에서 재주넘기 ● 정갈함. 안기찬의 이번 작품들을 일별했을 때 든 첫 번째 느낌이다. 금박이 주는 시각적 강렬함이 여백을 압도하고 있어서도 그랬겠지만, 작가의 묵은 한국화 필력이 묘사의 대상인 인체에 가한 간결한 선이 주는 느낌이 그랬다. 사실 금니(金泥)라는 재료는 대상의 속살을 표현하기엔 그리 적합한 재료가 아니다. 다른 재료들과의 유화성이 현저히 떨어질 뿐 아니라 농담 표현조차 어려워 화폭 위에 평면적 형태를 입힐(箔) 수는 있어도 대상을 입체적으로 그리는 것(畵)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 그 때문에 자칫 정적이기 쉬울 그의 작품이 대상의 운동성 또한 놓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주된 소재로서의 B-Boy 혹은 남사당패라는 율동감이 강한 모티프를 전면에 내세웠기 때문이 아니라 금분을 먹처럼 부려 쓰고 있는 그의 필력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인체의 관절을 꺾는 그의 맵시 좋은 붓놀림은, 글이 서예(藝)가 되듯 그렇게 금박의 평면성을 극복하고 간결한 인체의 선에 풍부한 조형적 부피감을 부여한다.

안기찬_남사당과 B boy2_ 면에 소방목에 백반 매염 황토질감, 황토 제거, 소방목 채색, 금박_60×60cm
안기찬_남사당과 B boy3_장지에 황토채색 긁어냄, 먹채색_43×26cm

하지만 이 정도의 느낌이 그의 작품이 관객에게 건네는 메시지의 모두이지는 않다. 작품의 첫인상을 넘어 여전히 남는 해석의 잉여들, 말하자면 금박의 강직한 인체가 아니라, 그것 아래 혹은 그 너머의 투명한 색과 질감이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면이나 비단에 전통적인 염료인 감물이나 소방목 혹은 황토를 겹겹이 올려 얻은 천연색과 독특한 질감의 화포는 그 자체로 이미 하나의 작품으로서 부족하지 않은 품격을 갖고 있고, 이로 말미암아 각각의 작품들은 의미의 결을 아주 다층적으로 제시한다. 마치 이번 전시 작품들이 현대의 격렬한 운동성으로서의 B-Boy와 과거 전통적인 놀이패로서의 남사당을 동시에 소재로 취하고 있는 것처럼, 과거성과 현재성은 소재적 차원을 넘어 제작 방식에서도 나란히 병치되어 다층화 되어 있는 것이다. ● 그런 의미에서 이번 작품들의 해석적 거멀못은 창작 태도로 제시된, 이질적인 것들을 동시에 표현하는 이 병치적 방식에 있을 법하다. 거멀못이란 독립된 두 사물을 하나로 연결시키기 위해 홈을 파고 끼워 놓은 못을 이르고, 병치란 연결되지 않은 채 나란히 서 있는 상태를 뜻하는 것이어서 이 어법은 사뭇 모순적이지만, 안기찬의 이번 작품을 관통하고 있는 문제의식은 그럼에도 바로 이 모순 어법을 수용하는 태도에 있다.

안기찬_남사당과 B boy4_면위에 먹 감즙_200×43cm
안기찬_남사당과 B boy5_면에 감즙, 햇볕에 발색 후 소방목 염색, 먹_200×43cm

예컨대 이번 작품에 사용된 모든 재료는 하나 같이 물과 기름처럼 모순적이다. 주지하다시피 화포로 쓰인 면이나 비단은 그 자체로선 염료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매염제를 씀으로써만 그것들은 비로소 색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렇게 얻은 화포 또한 대부분의 물감을 배척하기는 마찬가지다. 조형의 도구로 금니를 쓰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 서로 배척하는 이질적인 것들을 끌어안으려는 노력은 이뿐만이 아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각각의 작품들 속엔 마치 숨은그림찾기 놀이라도 벌리듯 투명한 선묘들이 감추어져 있다. 상모 쓴 남사당의 얼굴도 있고 부끄러운 듯 얼굴을 가린 여자 광대의 고운 자태도 있다. 제 몸에 스며드는 먹을 완강히 거부하는 화포의 사나운 성정을 쓰다듬듯 켜켜이 올린 붓질로 얻는 또 한 겹의 그림인 셈이다. 말하자면 도드라지는 금박의 화려한 인체는 비로소 그 위에서 재주를 넘고 있는 터수이다.

안기찬_남사당과 B boy6_검은 부분 먹, 밝은 부분 감즙 햇볕 발색_200×86cm
안기찬_남사당과 B boy7_ 면에 감염 소방목염, 흑토로 질감 건조, 수세, 소방목 채색, 금박_200×43cm

이 두 겹의 그림을, 이번 전시가 B-Boy와 남사당으로 각각 표상하고 있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의미심장하다. 놀이꾼으로서의 이 두 집단의 유사성이야 누군들 짐작하지 못할까 마는 그렇다고 예전의 남사당이 자기 갱신을 거듭함으로써 오늘날의 B-Boy가 된 건 아니다. 이 두 존재들 사이엔 그 근원에서 풍물과 힙합이라는 부정하지 못할 역사적이며 문화적 단절이 깊이 가로놓여 있다. 이 점을 우리는 너무 쉽게 간과한다. 이를 간과하고 나면 우리의 옛것은 오로지 전통이라는 낡은 가치 속에서만 겨우 명맥을 유지할 수 있을 뿐, 현재적으로 개변 승화될 길을 잃게 된다. ● 안기찬의 이번 전시는 이 위험을 고스란히 내면화하고 있다. 이로 인해 질료와 필법의 전통을 잊지 않으면서 동시에 현재적 조형성을 얻고자 하는 그의 작가적 노력은 단연 돋보인다. 작품에 대한 평가야 관객들의 심미안에 무한정 열려 있는 것이지만, 그의 작품이 갖는 이 미덕만큼은 단단히 새겨볼 일이다. ■ 박훈하

Vol.20100514h | 안기찬展 / ANGICHAN / 安起燦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