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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10_0514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30pm / 일요일 휴관
카이스 갤러리_CAIS GALLERY 서울 강남구 청담동 99-5번지 제1전시관 Tel. +82.2.511.0668 www.caisgallery.com
그녀는 분명히 거기에 있었다 ● 눈 꼬리가 잡아 당긴 듯 지나치게 높이 올라갔다. 눈 사이가 너무 넓고 얼굴 크기에 비해 눈이 매우 가늘다. 얼굴 표면의 굴곡을 비추는 조명효과가 인상을 무섭게 만들고 있다. 피부는 분홍색이다. 사실적인 묘사가 없는 잘 익은 복숭아의 분홍빛의 얼굴이다. 마치 인형처럼 무표정하다. 그림 속의 인물은 인형놀이를 하듯 다양한 옷을 갈아입고 다양한 장소에 있다. 작가를 직접 대면하기 전에 분명 이것은 깊은 인상을 남기는 가공의 인물이라는 생각을 했다. 작가를 직접 대면했을 때의 놀라움은 그래서 극도로 다다랐다. 바로 그녀의 얼굴이었다. 그 순간 '리얼리즘'에 대해 다시금 되새겨야 했다. 새로움을 추구하는 가운데 본질을 파악하는 능력을 보여줘 왔던 숱한 모더니즘 시대의 작가들, 그리고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보아왔는데, 나는 작가의 자화상을 대면하면서도 작가의 얼굴을 직접 보기 전까지 그림 속 그녀를 가공의 인물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확실히 그림 속의 작가의 얼굴은 많은 부분 인공적이다. 역시나 눈 사이가 너무 멀고 눈꼬리가 너무 올라갔다. 피부색도 그렇고 그 질감도 진짜 모습과는 한참 다르다. 하지만 그녀는 분명히 거기에 있었다. 현실의 그녀는 나에게 반갑게 웃음을 짓는다. 그림에는 웃음을 짓는 모습이 없건만 다시 너무 똑같다는 느낌이 든다. ● 2010년 5월에 열리는 카이스 갤러리에서의 이소연 개인전『모멘토 칼리지니 momento caligini! 』는 "어둠을 기억하라! "라는 라틴어에서 기인하였다. 1999년부터 독일에서 지냈던 작가는 이미 성장기를 한국에서 보낸 터라 전혀 몸에 맞지 않은 문화권에서의 생활을 10여 년 동안이나 해야 했다. 고향을 떠난 작가들이 누구나 한번쯤은 고민하게 되는 정체성의 문제가 혹독하게 다가왔던 시절에 이소연 작가는 자신의 모습을 끈질기게 들여다보았다. 작품에 흐르는 '기억'이라는 전반적인 큰 줄기 속에서 자신의 모습은 한가지 표정을 지닌 채 모든 그림에 등장한다. 그것은 마치 자기 자신에 대한 기억에 강하게 집착하는 작가의 태도일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그것을 그림에 등장하고 있는 반복된 얼굴에 아무리 회화적 패러디를 조장한다고 해도 자신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을 수 밖에 없었으리라. 하지만 작가는 그녀의 회화가 자신의 얼굴을 표현하는 자화상 형식만이 주 목적은 아니라고 말한다. 타지에서의 생활이 작가에게 적적한 감성만을 남긴 것은 아님이 틀림없다.
역시나 또 한편으로 작가는 새로움을 즐기고 있었다. 새로운 장소를 좋아하기 때문에 여행을 즐긴다. 대부분의 작품들은 여행 속에서 만나게 된 장소가 모티브이다. 그것은 그저 화면 속에서 작가의 머리 속 상상대로 그려진 것이 아니다. 모든 그림의 배경은 작가가 방문한 실제 장소이다. 작가가 그려내는 장소는 막연히 떠오르는 특정 풍경에 자신이 들어가 있는 모습을 상상하거나, 자신이 되고자 하는 모습과 적절히 맞아떨어질 장소를 기억해 냄으로써 선택된다. 그리고 작업이 시작되는 것이다. 황량함, 따뜻함, 음산함, 화사함 등 장소 특유의 느낌에 스스로의 감정을 담는다. 이러한 감정을 담는 방식은 일차적으로 색채의 느낌에서 오는 다양한 감성으로 드러난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그녀의 모습은 언제나 같은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입은 의상과 색상, 그리고 장신구들에 따라 다른 모습이 연출된다. 그리고 그녀는 스스로에 대한 새로운 모습을 즐긴다. 작업실 한 켠에는 각종 의상들이 걸려있다. 평소에 즐겨 입는 옷들이 그림의 소재가 된다. 어떤 것들은 평소에 잘 입을 수도 없는 코스프레 의상 같은 유치한 옷도 있다. 그림의 배경을 실제로 보고 기록하여 작품의 소재로 사용하듯 자신의 모습도 그 공간 속에서 서 있는 모습을 직접 재현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장소와 의상, 장신구, 오브제들은 모두 하나의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모든 것은 작가가 서 있는 세상에 맞추어진 연관된 이미지, 연관된 색상들이다. 화면 속에서 펼쳐지는 이미지의 연상작용은 작가의 머리 속에서 감지되는 이미지들을 함께 따라갈 수 있는 단초들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 장소 속에서 직접 재현하여 그대로 옮기기 보다는 대체로 장소와 인물구성 작업을 따로 한다고 한다. 장소를 방문하여 사진을 찍어온 것에다가 그 속에서 떠오르는 이미지에 맞춘 자신의 모습을 집어넣는 것이다. 그리고 그럴듯한 세상이 탄생한다.
점 찍어 놓은 그 장소에 왠지 어울릴 듯한 옷을 입고, 그 옷에 어울리는 가발을 쓰고 그 옷과 가발에 어울리는 뭔가를 집어 들고, 집어 든 오브제 혹은 동물에 어울리는 장신구로 치장한다. 가령, 지팡이를 짚고 흑염소떼 사이에 서 있는 그녀는 망토를 둘러쓰고 능숙히 흑염소를 몰고 다니는 산골 소녀가 되어 있다. 흑염소들은 심지어 그녀의 지배하에 얌전히 따라다니는 듯 순종적이다.(흑염소) 앵무새가 들어있는 새장을 들고 있는 그녀는 검은 깃털 장식과 긴 머리 가발로 치장하고 검은 드레스를 입고 서 있다. 배경에는 노을이 보이는 음산한 하늘을 장식하는 검은 구름이 깔려있다. (새장 1) 감정은 작품간에도 그 상호 교류가 일어나기도 한다. 소식을 받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기대와 설레임으로 앉아있는 모습은 그녀가 입은 밝은 노란색 위에 꽃무늬가 프린트된 드레스로 표현된다.(노란 드레스) '노란 드레스'의 인물은 어두운 드레스를 입고 비슷한 포즈로 앉아 있다. 둘 다 표정은 변화가 없지만 두 화면은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분명 어두운 드레스를 입은 인물은 나쁜 소식을 접했음에 틀림 없다. 이처럼 어느새 그림 속 풍경들은 작가만의 독특한 세상이 되어 있다. ● 그녀가 선택하는 오브제, 의상, 장소는 그녀의 존재를 만드는 중요한 요소일 수 밖에 없다. 직접 장신구를 구입하여 이들을 착용한 모습을 재현하여 자신이 선택한 풍경의 감성과 맞아떨어지는 연상작용이 가능한 모습이어야 했던 것은 의상에 새겨진 프린트 무늬까지도 풍경, 장신구, 손에 들고 있는 오브제와 연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작가가 그려지는 화면은 작가 얼굴 자체로 그 표현이 끝날 수 없다. 풍경, 오브제, 의상과 장신구 등 화면 속에 존재하는 그 모든 요소들은 곧 작가의 본질이 된다. 그 본질은 하나로 정의 되지 않는다. 작품이 그려질수록 그려진 수만큼이나 그녀의 모습은 새롭게 만들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 수만큼 그녀의 세계도 함께 새로이 창조된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고 말하였다. 작가 이소연의 존재는 그림속의 실체에 끊임없이 변화를 줌으로써 스스로를 존재하게 한다. 자신의 존재 이전에 타인의 시선으로 이미 존재하고 있는 실체를 즐기고 있다. 작가의 모습은 관객에게 그 실체를 매번 의심케 한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림 앞에서 그녀의 존재 자체가 실제 그려진 것인지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녀의 실체가 확인되었지만 그림에서 확인되는 반복되는 얼굴은 언제나 다른 장소에서 다른 역할 놀이를 하고 있다. 그녀는 양치기도 되었다가 닭 농장 여인도 되었다가 귀부인도 되어있다. ● 자화상 속의 인물은 항상 정면을 내다본다. 그녀의 응시는 우리를 긴장하게 만든다. 마치 화폭 너머의 세상을 응시하며 그 곳을 자신의 세상으로 만들 궁리를 하는 듯 보인다. 이소연의 그림을 앞에 두고 관객인 우리들은 타자-우리를 응시하는 작가의 자화상-의 시선 속에서 존재하는 또 다른 실체가 되기도 하며 이소연이라는 본질을 관객, 즉 타자의 입장에서 정의하기도 한다. 이러한 시선의 주고받기가 형성되는 가운데, 그녀의 세상과 우리의 세상이 교차된다. 때로는 그녀가 나를 바라보며 나의 모습을 재현할 것 같다. 내가 사는 세계 속으로 들어와 이 곳을 점령하려는 책략을 짜는 듯 뚫어지게 노려보고 있다. 이 세상이 저쪽 화폭 속에서 그랬든 그녀에 의해 집어삼켜질 듯한 공포감에 오싹해진다. ■ 김인선
Vol.20100514c | 이소연展 / LEESOYEUN / 李素蓮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