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요일_10:00am~05:00pm / 월요일 휴관
아트스페이스 에이치_ARTSPACE H 서울 종로구 원서동 157-1번지 Tel. +82.2.766.5000 www.artspaceh.com
인간이 만든 물질은 과포화와 불균형으로 우리의 삶과 지구에 이상기류(異常氣流)를 만들었다. 균형의 메시지가 담긴 ' 또 다른 기류 ' 를 작품으로 나타내본다.
The tree of Life_생명나무 ● 우리는 매 순간 호흡하며 생명을 유지한다. 사람은 겨우 6-10분간만 호흡이 멈추면 뇌사상태에 이른다고 한다. 이런 생리학적인 호흡 외에 우리는 진정으로 생명력 있는 호흡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 21세기의 문명의 발달은 놀라울 정도이다. 그러나 이런 문명발달의 단면엔 인간의 이기주의와 자연의 파괴, 개인 삶에 대한 소명과 존재의 의미가 사라진 어두운 그림자가 있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점차 생명력 있는 호흡이 사라져 가고 있다. 그림은 세상에 대한 작가 자신의 묵상이라 한다. 이러한 시대적 기류 안에서 생명을 주는 그림에 대한 열망으로 나의 그림은 출발한다.
당(唐)대 미술사가이자, 미학자, 미술평론가 장언원(長彥遠, 815?-875이후)이 『歷代名畫記』,卷1에서 말한 "회화라는 것은 교화를 이루고 인간의 윤리를 조장하며 신비한 변화를 궁구하고 깊숙한 것과 미세한 것을 헤아림이 여섯 가지 경서와 공(功)을 같이 하며 사계절과 더불어 나란히 운행되는 것으로 저절로 그렇게 발현되는 것이지 (인간이) 지어서 만든 것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은 아니다. " (夫畵者..成敎化 助人倫 窮神變 測幽微 與六籍同功 四時並運 發於天然 非由述作)는 크게 보면 공자의 회화효능론에서 출발한다. 회화는 자연의 질서 안에서 사람의 지혜로 알 수 없는 신비한 변화를 궁구하며 사람을 변화시키는 단계까지 발전한 것이다. 이것을 확대하면 회화는 시대적 환경을 수용하면서 구별된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한다. 마치 이 혼돈의 세상 속에 오롯이 서있는 한 그루의 나무처럼… 나무는 대자연의 진리에 순응하되, 인간의 그 어떠한 문명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인간이 그것을 파괴할지라도 나무는 반응하지 않는다. 다만 자연의 진리에 순종할 뿐이다. 자연을 파괴한 인간이 그 자연의 소산물과 푸르른 생명력을 느끼지 못할 뿐이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은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다. ● 현대 문명은 고귀한 인간을 끊임없이 타락시키고 있다. 영혼을 가진 인간으로서의 존재는 점점 사라져 가고, 마치 영혼이 죽은 物化된 인간만이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삶은 생명이 없는 죽은 삶이다. 현대인은 끝없는 디아스포라(diaspora)의 정체성 없는 공허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 (창세기2:7)수 많은 분야에서 죽어가는 영혼들은 마치 오염된 흙처럼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다. 흙과 같은 존재에 생명을 불어넣어 생령의 사람을 만드셨다는 이 말씀처럼 나는 관자의 심중에 겸손히 한 그루의 생명나무를 심어주고 싶다. 인생이라는 거대한 태풍의 소용돌이 안에서 잠잠히 생명나무를 바라보게 하고 싶다. ■ 김정수
천사-아이들 놀이 ● '인간이 만든 물질(matter, 物質)의 과포화와 불균형이 부른 결과에 대해 어린 천사들이 메시지를 던진다. '우리는 간혹 어린아이들이 어른들의 눈에는 하찮은 물질, 예를 들면, 사탕같은 것을 가지고 서로 싸우는 것을 본다. 한쪽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사탕을 빼앗기게 되면, 그 어린아이는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울기 시작한다. 어른에게는 그저 사탕에 불과하지만 그 어린아이에게는 세상의 전부 인듯하다. 어느 위치의 시각이냐에 따라 그 사탕은 그저 잠깐 달콤함을 주는 하찮은 사탕이 되기도 하고, 세상의 전부가 되기도 한다. 아마 우리보다 더 큰 존재의 시각에서 봤을 때, 인간이 물질 때문에 서로 싸우고 미워하는 것은 어린 아이가 사탕을 가지고 싸우는 것같이 보일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그 존재를 아이들로 비유되는 천사로 생각해 보았다.인간은 자신이 만든, 또는 이미 존재하는 귀한 물질에 대한 과욕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병들게 하는가 하면, 전쟁을 일으켜 인간 스스로를 멸망시키고 있다. 인간이 불편함을 극복하고자 만들었던 물질이 인간을 위협하게 되는 상황이라면 그것은 인간이 이제 어떤 방향으로 생각하고 움직여야 할지를 알게 하는 사인(sign)이 아닐까? 그런데 우리는 그러한 지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내 그림에서는 그러한 사인을 주는 존재는 천사이다. 서양에서 천사는 르네상스가 시대가 되면서 중세의 천사처럼 크고 어떠한 전능한 능력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순진무구한 어린 천사가 되었다. 그러나 나의 경우, 천사는 인간이 때로는 물질을 신성(神聖)시 하기까지 하는 것이나, 신화에 나오는 에로스의 화살을 맞은 것처럼 물질을 사랑하게 된 숙명을 상징화한 것이다. 성인 천사가 아닌 아기 천사인 것은 아이들이 어른의 행동을 보고 천진하게 흉내를 잘 내기 때문이다.
그림 「행복을 찾아서」에 나오는 건물과 도로가 있는 도시는 아주 일상적인 현대 사회의 공간이다. 모든 천사들에게 주변 배경이 투영되어있는 것은 두 가지 의미, 즉 우리의 현실에서 그들을 볼 수 없음과 볼 수 있음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우리가 같은 상황에 직면했을 때 진실을 자각하고 있지 못하는 사인을 의미한다. 어떤 천사들은 커다란 사탕을 들고 있는데, 사탕은 도시의 건물들과 함께 물질의 상징이다. 인간을 흉내내는 천사가 물질의 상징인 사탕을 들고는 아주 행복할 것 같지만 실제로 천사들의 표정은 무표정하다. 사탕이 없는 천사들은 사탕을 가진 천사를 바라보거나, 계속 어딘가를 찾아 다니고 있다. 사람들이 물질적인 행복을 찾아 다니듯, 날아다니는 천사들은 물질적인 행복을 찾아 다니는 현대인의 마을을 대변하고 있다. 결국 천사는 물질을 갖게 되더라도 그 안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더 많은 물질을 갈망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투영한다.
다음 그림 「정글짐」에서는 놀이터에서 볼 수 있는 정글짐 속에 실제 정글(jungle)의 모습이 들어가 있다. 천사들은 자연과 어우러진 놀이기구에서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지만 그 정글짐의 정육면체 형태들은 인간사회에서 물질의 상징인 건물을 표현한 것이다. 정글짐을 바라보고 있는 시선은 좀 떨어진 위쪽인데 전체 모습을 관찰하기 좋은 위치이다. 정글짐 바깥쪽은 물로 표현되었는데 이는 인간이 환경을 파괴하고 구속하면서까지 물질의 욕망을 채우는 것으로부터 자연을 해방시켜주고 싶은 염원에서 그려진 것이데 어디론가 흘러가는 '방향 잃은 자연'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림에 나오는 천사들은 어떠한 판단을 내린 표정 없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단지 인간의 행동을 모방할 뿐이다. 마치 놀이터에서 놀면서 어른을 흉내내는 아이처럼 행동하며 우리에게 메시지를 던진다. "그것은 단지 사탕일 뿐이야" 라고... ● 이번 전시에서 나는 불균형을 이루는 이 물질세계에서 삶의 중심추를 조절해주는 역할로 천사들의 메시지를 조형화시켜 보았다. 그 사인을 보고 우리 인간이 웃어넘길지 아니면 그 안에 담긴 뜻을 찾아 새로운 자각을 해야 할 지를 선택하는 것은 우리 인간의 몫일 것이다. ■ 천지수
Vol.20100513e | Another Current-김정수_천지수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