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同行

2010_0507 ▶ 2010_0706 / 월요일 휴관

윤두서_자화상_종이에 수묵 담채_30.5×20.5cm_1710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2010_0507 ▶ 2010_0525 조인호_김윤희展

2010_0528 ▶ 2010_0615 이진원_변정현展

2010_0618 ▶ 2010_0706 지요상_조송展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꽃+인큐베이터_Ccot + Incubator 서울 마포구 서교동 337-36번지 B1 Tel. +82.2.6414.8840

세상 사람들이 고작 유자서(有字書)나 읽을 줄 알았지 무자서(無字書)를 읽을 줄은 모르며, 유현금(有絃琴)이나 뜯을 줄 알았지 무현금(無絃琴)을 뜯을 줄은 모르니, 그 정신을 찾으려 하지 않고 껍데기만 쫓아다니는데 어찌 금서(琴書)의 참맛을 알 도리가 있겠느냐. (근원 김용준의 수필 「詩와 畵」 중 채근담 인용/근원수필/을유문화사/1946 ) 동행(同行)展은 지난했던 한국화 개념 논쟁의 연장선상에서 기획되었다. 따라서 본 기획은 2010년 5월부터 7월이라는 특정 기간에, 꽃+인큐베이터라는 특정 공간에 종속되고 국한되지 않는다. 본 전시의 기획 주체들은 대부분 『산수풍경의 시간(월전미술관, 제비울미술관/2004)』자료집에서 한국화 개념에 대해 토론을 벌였던 이들이며, 김천일, 권기윤, 김현철이 참여했던 『현대진행형으로서의 진경(갤러리 벨벳/2005)』으로부터 시작하여, 김천일, 문봉선, 김범석이 참여했던 『Sansoo(영국 윈체스터 대학/2005)』를 통해 여러 의문들에 대한 검증을 추구하였고, 박병춘, 유근택, 신하순, 김천일, 박종갑, 김성희가 참여했던 『리코멘타리1(갤러리 벨벳, 벨벳 인큐베이터/2008)』과 2010년 3월 토탈미술관에서 개최 예정이었던 『획을 긋다』에 직간접적으로 간여가 되어 있는 이들이다.

조인호_휘어진산수-설악산07_순지에_수묵_130×162cm_2009
김윤희_곱슬곱슬 인왕산길_장지에 먹, 아크릴채색_130×195cm_2009

일관된 주제로 지난 5년간 지속적인 모색을 해왔던 그들 기획자들은, 상기한 전시들을 통해서 추후 5년간 한국화의 미래방향성을 타진하게 될 신진 기획자들의 가능성을 더불어 고민하였고, 그들의 2011년 이후 기획에는 그간 대화를 나눠온 후학들이 또한 자신들 세대 작가들과 함께 호흡하며 여러 기획에 합류될 것이다. 아울러 그들은 동행까지의 기획자들과는 달리 기획자이거나 비평가이거나 이론가라는 전문 영역을 벗어나서, 작가이자 기획자이며 비평가이자 이론가의 역할이 병행 가능하도록 유도될 것이며, 그 이유는 그들 신진 작가들의 영역 확대가 지난했던 한국화 개념 논쟁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학량의 지필묵 다시 읽기를 필두로 하여, 케케묵은 전통계승론자들에 대응해 전통극복론자들이 지난 10년간 한국화단에 득세하였고, 그런 시대 현황이 시대 가치마저 규정하며 한국화의 개념을 아울렀던 매체의 도그마가 붕괴되었으니 회화로 이름을 전환해야할 시대라는 거창한 선언마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논리 전개에서는 전통을 고집하며 패권화 했던 이들에게 문제 요소가 있었고 그것을 극복하는 일에 가치가 있다는 주장은 호응을 얻을 여지가 있었지만, 산수풍경의 시간에서 동행까지의 시간 동안 논의되었던 전통계승론자들이 고수해왔던 그것이 과연 우리의 전통인가라는 의문에는 여전히 설득력 있는 대답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18세기 작품인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을 21세기에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전통 수호가 아니라는 주장에는 동의하지만, 18세기 사회에서 공재가 느꼈던 문제의식을 21세기 우리 현실에 대한 자화상으로 투영할 수 있다는 것은 부정돼서는 안 될 우리 고유의 소중한 자산이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한국화의 '전통'이 오로지 재료나 소제에 의해 규정이 되며, 한국화가들이 역설해온 '정신'이라는 것이 그리도 실체 없는 희화의 대상일까에 대해, 본 전시의 동행자들과 추후에도 심도 깊은 모색을 해 나갈 것이다.

이진원_untitled_장지에 수간안료_191×129cm_2010
변정현_Evidence 16_장지에 커피_150×400cm_2007

그간 케케묵은 전통계승론자들이 재료나 소제를 통해 얼떨결에 정작 전승해온 것은, 본인들 스스로도 강변은 하지만 이해도가 떨어졌던 그림에 있어서의 '외형이 아닌 본질'의 중요성에 대한 구전이었고, 그것의 실체는 그림이라는 외형을 이루는 여러 조건들을 집약시켜 그것들을 그림이라는 이름으로 소통하게 만드는 사상의 힘이었다. 러시아 유학 시절 박헌영을 통해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알게 되고, 프랑스와 중국과 미국과의 치열했던 독립전쟁을 연달아 치루며 야전침대 머리맡에 언제나 그것을 두고 잠들었다는 호지명을 예로 들어 보자. 그가 '프랑스제 노트'에 '중국산 연필'로 '미군기의 폭격'이 지나간 산하에 홀로 살아남은 '열대 야자나무' 한 그루를 엉성하게 그렸다고 했을 때, 그것이 조희룡의 화려한 매화나 윤영기의 세련된 난초보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에 가깝다는 주장을 부정할 수 있는가? 以不變 應萬變... 조국 독립이라는 단 하나 변하지 않는 목표를 위해 세상의 만 가지 변화들에 대응하며, 조선 사상사의 실천적 전통을 전향적으로 수용하여 평생을 헌신해온 베트남 국적의 이방인이, 지필묵을 입 안의 혀처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친일 귀족들과의 연회를 즐겼던 한국화단의 원로들보다, 또는 그들에게 도제식 교육을 받으며 기법뿐만 아니라 기득권까지 고스란히 세습 받아온 한국화단의 권력들보다 한국화의 원형에 가까우며, 목민심서라는 외래의 영향으로 호지명은 진정한 베트남의 '전통'과 '정신'을 전형으로 남기게 된다.

지요상_눈감고 머물다_화선지에 수묵_202×202cm_2003
조송_며느리 눈치를 보다 잠이 든 시아버지의 초상_종이에 먹 혼합재료_31×23cm_2009

재료와 소제를 바꾸고 이름만 한국화에서 회화로 바꾼들, 본질에 있어 어떤 변화가 있는가? 전통 사수가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그들이, 전통이 지금처럼 굴절되어온 역사적 맥락에 대한 충분한 검증이 있었는지 의문이며, 지난 5년간의 이론적 연구와 현장에서의 소통을 바탕으로 동행의 기획자들은 향후에도 여러 저술들과 전시들을 묵묵히 개진해 나갈 계획이다. 그것을 위해서 기존의 미술계 인력 외에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과 소통하고 있고 앞으로도 교류해 나갈 것이며, 학술원과 예술원의 분리가 상징하듯 근대적 교육 제도 이후 학과제에 의해 임의로 분리되었던 예술에 있어서 지성의 영역을 복권시키는 것이, 서구 미술 역사와는 다른 한국화의 전통에 근접하기 위한 최우선의 과제로 직시하고 있다. 작가들은 지성보다는 감성의 영역에 장점이 있으며 실기 연마의 성취여부가 오로지 평가의 기준이 된다는 관점은, 낭만파 이래 빈센트 반 고흐로 정점화된 서구적 관점의 일상에서 일탈된 광인 천재의 신화에 의지하는 측면이 크며, 위창 오세창과 근원 김용준의 시대만 해도 그들은 우리 지성 사회의 핵심에 있었다는 점을 그동안 지독히도 간과해 왔다. 동행의 현재 기획자들이 동행에 참여하는 작가들보다 지성적으로 우위에 있기 때문에 기획과 이론과 비평의 역할을 맡는 것이 아니라, 위창과 근원처럼 지성 위에 감성과 실기 역량이라는 경쟁력마저 구비했던 선학들의 경지에 못 미치기 때문이라는 점을 이 자리를 통해 고백한다. 더불어 이번에 동행하는 한국화단의 여러 작가들, 조인호, 김윤희, 이진원, 변정현, 지요상, 조송은 동행 기획자 세대의 한계를 극복하여, 서구 미술과는 차별화된 한국 미술 전통의 중요한 장점을 차차 가시화시켜 줄 것이라 기대한다.

정희우_강남대로_가변설치
김봄_종묘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5×73cm_2007

동행은 2009년 12월에 있었던 『정희우_김봄 2인』展을 프로토타입으로 진행된다. 정희우가 횡적 확장의 현대 진경산수로 우리 문명의 현재를 낱낱이 증언해 주었던 반면, 김봄은 종적 결합의 역사적 관점으로 현대 진경산수를 통한 시사적 발언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동일한 맥락에서 전통 소제에 충실한 반면 관점의 자율성을 추구해온 조인호와, 질료에 구애 받지 않으면서도 산수 본연의 지향점을 직시하고 있는 김윤희 간의 상반된 시도들 또한 비교해볼만할 것이다. 월전 장우성에 의한 서울대의 수묵 우월주의와 천경자에 의한 홍익대의 채색 방어주의 간의 갈등 상황이나, 그 후 서울대 홍익대 간 축구 경기가 끝나고 유니폼을 교환하듯 남천 송수남에 의한 수묵화 운동과 그것에 대응했던 일랑 이종상의 고구려 벽화의 채색 운동 간의 논쟁들이, 이진원과 변정현의 세대에 있어서 어떤 의미로 작용하는지를 성찰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관람 포인트가 될 것이다. 아울러 각기 전통적인 한국화 질료를 통해서 사실 이상의 사의의 차원을 모색해온 지요상과 조송의 대조적인 인물화 작업을 나란히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앞으로도 갈 길이 멀고 고민해야 할 지점이 산재해 있는 젊은 작가들이지만, 그들에게 유독 기대를 하는 것은 현재의 그들 작품의 값어치 때문이 아닌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가늠하게 된 미래 가치 때문이었다. 그 끝이 헤아려 지지 않는 막막한 여로에 위안이 되는 것이 달리 또 뭐가 있겠나? 동행인과의 대화가 즐거우니 닿는 곳마다 미지의 풍경들이 기다릴 것 같은 기대에 들 뜰 수밖에... ■ 변정현

Vol.20100510i | 동행 同行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