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10_0507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마노_Gallery MANO 서울 서초구 서초동 1451-95번지 예전빌딩 4층 Tel. +82.2.741.6030~1 www.manogallery.com
이형의 원형 ● 우리가 학습 받아서 사용하는 단어는 실상 매우 한정적이며, 사회의 규칙에 편리하도록 분류되어 버린 것들이 대부분이다. 시각예술 종사자는 인간이 사용하는 가장 보편적 언어인 음성언어와 문자언어의 틀을 깨고 자신의 언어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시 조형언어라는 범주 안에 회화니 조각이니 하는 구별을 짓고, '익숙하다'라는 단어로 '옳다'라는 손쉬운 귀결을 내린다. ● 성상은의 작업이 주는 시각적 조형성은 일단 식물의 습성을 매우 닮아 있다. 주로 꽃잎이나 줄기 등을 연상시키는데 이것들이 모였다가 흩어지면서 새로운 형상을 구축하고 있다. 조금 더 주시하여 보자면 식물을 연상시키는 부분 속에 동물의 골격과 같은 부분이 투명하게, 그러나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 그것들은 다시 화면 속에 부유하거나 스며드는 등 다양한 위치를 부여받는데 다분히 작가의 작위가 묻어난 행위지만 그 자연스러움은 애초에 그렇게 놓여 진 것을 본 따서 그린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어째서 일까? 작위가 없는 작업은 있을 수도 존재할 수도 없다. 그러나 성상은은 작업을 하는 내내 작위의 행위를 우연이라는 효과에 반쯤은 의지한 채 진행한다. 작가의 의도가 작위의 말단을 드러내지 않는 이유는 오랜 시간 사유하고, 가장 스스로 그러한 듯한 자리에 앉혀 놓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굳이 '앉혀 놓았다'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성상은의 작업에 매우 중요한 지점이 바로 붓질을 통한 '그려 넣기'의 형식이 아닌 물성과 물성의 조율과 중첩을 통한 앉혀 놓는다는 표현에 더욱 적합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작가는 우연의 반복을 필연으로 만들어 새로운 다른 의외의 결과를 만드는데 익숙한 습習을 보유하고 있다. 액체와 같은 미디엄medium 의 안료들이 굳어지며 액체가 아닌 고체로 변환되고, 다시 그렇게 고체화된 재료 위에 액체의 안료들을 붓거나 덧올리면서 원하는 색감을 창출해 낸다. 작위라는 반복과 우연이라는 기다림의 행위가 의외의 결과물로 재탄생되면서 작가가 의도한 내용(식물도 동물도 아닌)을 담는 아주 좋은 그릇이 되어준다. 그렇기 때문에 성상은의 작업은 경계라는 단어가 무의미해진다. ● 내용과 그릇도 잘 어우러져 있는 이 작가의 작업방식은 작가 스스로가 의도하였던 그렇지 않던 역시 매한가지로 꼭 알맞은 방식으로 해석된다. 캔버스 평면 위에 낱장으로 굳은 미디엄medium 재료에 색을 천천히 올리는 방식은 페인팅의 방식과 같고 이를 다시 쌓아 올리며 중첩시키는 방식은 흡사 조소의 소조방식과 유사하다. 작가는 몸에 베인, 손끝에 익숙한 습習의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시켰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내용과 그릇, 방식이라는 삼박자가 모두 잘 어우러진 작업의 결과물을 탄생시킨 셈이다. 그렇게 때문에 무엇 하나 억지스러움이 보이지 않고, 스스로 그러한 自然과 같아 보인다. 이는 다시 작가의 초심과 같은 마음이 효과적으로 드러나는 역할을 한다. 시작부터 단절과 경계로 구분되는 나눔의 방식이 아닌 이것과 저것의 다름을 옳고 틀리다가 아닌 그저 다름으로 공존시키는 작가의 목소리가 작품 속에 오롯이 녹아 스며든 것이다. ● 어찌 보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애매한 모호성 따위의 이상한 단어로 오역될 수 있는 성상은의 작업은 실은 구별과 경계긋기를 벗어나 공존과 서로를 인정하기로 점철된 이형異形(기준이 있다는 전제 하에 다르거나 기이한)이 아닌 원형原形(근원이 되는)을 그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이 과정을 통해 이형의 원형-이형처럼 보이는 것들 안에서 오히려 원형이 존재함-을 발견하게 된다.
게다가 성상은의 작업은 시각예술의 기본 가운데 하나인 아름다움의 구성을 잘 유지하고 있다. 작업마다 주어진 화면의 공간은 분명한 물리적 한계성을 지니고 있는 캔버스임에도 불구하고 흩날리는 듯한 꽃잎을 연상시키는 작업의 형체들이 화면을 중심에서 사방으로, 위에서 아래로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며 물리적 화면이라는 한계를 뛰어 넘어 심리적 감상공간을 확장시켜 놓는다. ● 나는 그의 작업을 문학에 비유해, 소설 혹은 시라는 표현을 사용하곤 했다. 미디엄medium 의 재료를 응축된 것들의 모여 화면을 구성하는 작업은 흡사 詩의 단어처럼 함축적이고 은유적이다. 반면 붓을 사용한 페인팅의 화면은 크고 작은 붓질이 마치 하나의 중심축을 가지고 있는 내러티브narrative를 구성하면서 소설과 같은 면모를 보여준다. ● 회화인지, 조각인지로 시작하여 식물인지, 동물인지의 물음을 거쳐 다시 소설과 시의 작법을 넘나드는 성상은의 작업을 나는 굳이 어떠한 규정된 언어로 부르고 싶지 않다. 적절한 신조어를 만들어 낼 수 없는 내 알량한 능력의 섭섭함을 성상은 만큼의 열린 사유의 부족으로 치부하며 그가 만들어 놓은 조형이라는, 그나마 익숙한 시각예술의 기호를 그저 즐기면 그 뿐이다.
그래서 일까 성상은의 작업은 원초적 아름다움과 닿아있으면서도 현대의 세련된 기법을 품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처음의 심미적 감상과 반복하여 바라보며 사유할 수 있는 심상의 공간을 동시에 열어 놓는다. ● 이형異形의 원형原形. 성상은이 만들어 놓은 새로운 세계는 어쩌면 전혀 새롭지 않을 수도 있다. 인지하지 못했지만 분명히 존재하거나,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경계의 틈 속에 묻혔으나 오히려 더 진짜 같은, 그런 냄새가 난다. ■ 김최은영
Vol.20100509e | 성상은展 / SUNGSANGEUN / 成尙恩 / painting.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