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展 / LEEJEONGHEE / 李貞姬 / painting   2010_0505 ▶ 2010_0511

이정희_이빠진 준영이_장지에 먹담채_55×36.9cm_2010

초대일시_2010_0505_수요일_05:3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 이즈_GALLERY IS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0-5번지 Tel. +82.2.736.6669 www.galleryis.com

애정으로 포착된 일상과 그 온유한 화면 ● 인물화는 동서를 막론하고 대단히 오랜 역사적 전통을 지닌 장르이다. 그러하기에 인물화에 관한 조형적 경험과 이론 역시 대단히 폭넓고 풍부하다. 개괄적으로 정리하자면 서구의 인물화가 대상의 객관적인 상태의 재현에 중점을 두는 것이라면, 동양의 인물화는 전신(傳神)이라는 독특한 표현에 주목한다. 즉 서구의 인물화가 인물의 형태와 색채 등 외형적인 조건에 관심을 두는 것이라면, 동양의 그것은 대상이 되는 인물이 지니고 있는 내적인 내용의 표출에 가치를 두는 것이라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정희_코푸는 준영이_장지에 먹담채_43.5×25.5cm_2009
이정희_노래하는 성연이_장지에 먹담채_66×44.7cm_2010

작가 이정희의 작업은 인물을 주제로 하고 있다. 이러한 인물들은 작가 자신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음이 역력하다. 삶이라는 일상을 통해 포착되고 채집되어진 소소한 일상의 순간들을 아이들의 표정을 통해 표현해내는 작가의 화면은 소박하고 풋풋하다. 굳이 꾸미고 과장하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솔직하게 표현함으로써 잔잔한 미소를 자아내게 하는 표현 방식은 마치 잔잔한 에세이를 읽는 것과 유사한 감흥을 준다. 작가가 보여주고 있는 인물에 대한 엄격한 형태미와 정치한 표현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것이다. 이는 서구 인물화의 합리성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이에 더하여 표출되고 있는 절묘한 인물의 표정과 동작의 표현은 동양적인 전신의 요구에 부합하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작가의 작업은 서구적 합리성과 동양적 전신관이 융합되어 조화를 이루는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이른바 현대인물화라 통칭되는 작업들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보편적인 특징이라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 화면의 인물들은 대단히 섬세한 필치로 표현되고 있다. 인물의 순간적인 동작과 표정을 포착하고 이를 반복적인 붓질을 통해 이를 형상화하는 작업과정은 성실하고 진지함으로 점철된 것이다. 그것은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의 집적을 통해 구축하여 가는 것이라 함이 보다 적확한 표현일 것이다. 수묵을 표현의 기저로 삼고 있기에 이에 대한 적절한 통제와 운용은 작업의 관건일 것이다. 작가는 섬세하고 조심스러운 필치를 중첩하고 반복하는 과정을 통해 수묵의 물성을 다스린다. 그것은 전통적인 수묵의 심미를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형상표현의 목적성이 우선시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의 작업에는 방만한 발묵이나 호방한 운필의 맛이 넘쳐나는 것이 아니라 침착하고 안정된 수묵의 심미가 두드러지게 된다. 이는 서구적인 합리성과 수묵이 지니고 있는 전통성의 적절한 융합이자 조화의 산물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형제(우리는 뭐지 형아?)_장지에 먹담채_91×72.7cm_2008
준영이의 공부_장지에 먹담채_90.5×68.5cm_2006

표현되어진 부분을 실(實)이라 한다면, 여백으로 드러나는 공간은 허(虛)에 해당할 것이다. 인물의 표현과 여백의 대비를 통한 간결한 화면은 작가가 즐겨 차용하는 방식이다. 한없이 허허로운 여백은 정치한 필치의 인물 표현과 뚜렷한 대비를 이루며 시각적인 감성을 자극한다. 이러한 공간 운용을 통해 구축되는 작가의 화면은 실재하는 현실의 일상적인 인물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그것이 단순한 객관적 재현에 그치는 것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 합리적인 인물 표현과 여백으로 대변되는 동양의 전통적인 공간 운용의 묘가 이루어내는 조화 역시 현대라는 시간성의 또 다른 표현 중 하나일 것이다. 극히 합리적이고 섬세한 표현으로 드러나는 인물들은 이러한 공간에서 전신의 요구를 구현해 내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인물의 정확한 묘사나 표현을 통해 전해지는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작가의 애정과 사랑이 전제된 따뜻한 것임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어쩌면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전신의 구체적인 실체는 바로 이러한 내용일 것이다. ● 반복과 중첩을 통해 축적되는 수묵은 여간 조심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형상을 아우른다는 일차적인 기능을 수행함과 동시에 수묵 특유의 조형미를 드러내는 복합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작가의 작업 방식은 방만한 실험이나 감당치 못할 파격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원칙에 충실하고 조화에 무게를 두는 아카데믹한 것이다. 이는 작가의 작업에 일관되게 견지되는 조형관이라 할 것이다. 특유의 담백하고 안정적인 화면은 이러한 화면 운용의 결과인 셈이다. 물론 이는 작가의 작업이 지니고 있는 특징적인 요소라 할 것이지만, 만약 이에 상대적인 요소들이 더해질 수 있다면 작가의 화면은 더욱 풍부한 조형적 표정을 지니게 될 것이라 여겨진다. 그것은 수묵에 대비되는 색채, 차분하고 안정적인 구축적 방법에 대한 분방한 운필, 정연한 인물의 형태미에 대비되는 자유로운 조형 등 실로 다양한 내용들을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정희_성연이의 보물_화선지에 먹담채_68×91cm_2000
이정희_자유로움_화선지에 먹담채_34×45cm_2008

결혼과 출산, 그리고 육아로 이어지는 여성 고유의 현실적 체험들은 작업이라는 면에서 본다면 대단한 부담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이러한 체험들을 자신의 작업으로 고스란히 옮겨 옴으로써 특유의 솔직하고 담백한 화면을 구축해 내고 있다. 그것은 허욕이나 집착이 아닌 은근하지만 따뜻한 애정을 전제로 한 건강한 시각을 통해 포착되어지는 온유한 일상의 기록이다. 아이의 성장과 더불어 관찰되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가감 없이 솔직하게 표현해 냄으로써, 또 부연 설명 없이 허허로운 여백을 통해 그 이면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함축시킴으로써 작가의 작업은 일상의 기록이라는 상투성에서 벗어나 온전한 조형으로 안착되고 있다 할 것이다. 작가의 작업은 형태에 대한 정확한 표현력과 공간의 운용 능력, 그리고 진지하고 성실한 표현 등 긍정될 수 있는 다양한 내용들을 내재하고 있다고 보여 진다. 이에 더하여 앞서 거론한 바와 같이 보다 풍부한 조형적 요소들을 차용하고 운용할 수 있다면 그 화면은 실로 오늘의 면모와는 다른 표정을 지니게 될 것이라 여겨진다. 삶에 대한 따뜻한 시각과 온유한 감성, 그리고 이를 수렴해 내는 특유의 성실한 표현은 작가의 다음 작업을 담보해 주는 덕목들일 것이다. ■ 김상철

Vol.20100505h | 이정희展 / LEEJEONGHEE / 李貞姬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