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10_0505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Tel. +82.2.736.1020 www.insaartcenter.com
기억의 편린을 포착하는 모멘트 ● 자신이 겪은 일들을 떠올리는 일을 기억이라고 한다. 지금 당장 보이지 않아도 예전에 보았던 것을 떠올리는 일이다. 감각기관을 통해서 정보를 수용하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도 마음 속에 무언가를 떠올리는 기억이라는 표상작용은 인간의 사유와 감성을 이끄는 매우 중요한 메커니즘이다. 기억의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는 인간 그 누구도 자신의 과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김원용은 기억의 조각들을 포착하는 (바로 그) 순간들을 「모멘트」 연작에 담았다.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존재하는 기억이라는 것에 관한 이야기이며 동시에 그 기억으로부터 이탈함으로써 새로운 사유를 획득하려는 성찰의 결과이다.
기억은 심상(心像, image)의 뿌리이다. 하나의 기둥 위에 가지를 뻗고 잎을 피우는 나무들은 그 아래 수없이 갈래를 뻗은 뿌리를 두고 있다. 우리의 마음도 마찬 가지다. 무수한 가지와 잎을 피우는 우리 마음의 아래에는 미세하게 뻗쳐있는 기억이라는 뿌리가 있다. 그 뿌리는 굵은 줄기에서 잔털 같이 촘촘한 그물구조에 이르기까지 천변만화의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가지와 잎새들처럼 뿌리 구조 또한 생장하는 유기체이다. 따라서 기억이란 가변적인 조각들의 연쇄이다. 고정불변의 기억이라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의 마음 속에서는 단편적인 기억 조각들이 복잡하게 얽혀 떠돌 뿐이다. ● 김원용은 이렇듯 굵직한 줄기로부터 미세한 잔털에 이르기까지 우리 인간의 마음을 엮어내는 기억의 편린(片鱗)을 포착한다. 그것은 물고기의 비늘-린(鱗) 한 조각-편(片)처럼 전체가 아닌 부분으로 존재하는 기억 조각들을 담는 일이다. 그는 인간의 자아를 생성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하는 기억의 존재 방식을 형상화하기 위해 찢겨진 종이의 이미지를 끌어들인다. 사진을 찢거나 구겨 놓은 것 같은 형상을 거대한 부조 패널로 만든 그의 작품들은 작가 자신이 지난 세월동안 쌓아온 삶의 기억들을 담고 있다. 그가 다루는 기억 저편의 이야기들은 1983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 현재에까지 이른다. ● 그는 마치 A4용지에 담긴 한줄 낙서와도 같은, 오래되어 빛바랜 사진과도 같은 기억의 조각들을 꺼내서 애틋하게 어루만진다. 자신의 기억을 다루는 그의 방식에는 일종의 시니시즘이 담겨있다. 그가 다루는 기억들은 반듯한 형상을 가진 단정한 기억이 아니다. 찢겨지고 구겨진 종이 위에 담긴 사람들 하나하나는 아련히 멀어져간 과거를 바라보는 냉정함이 담겨있다. 찢겨져 나간 종이의 단면 위에 부조 형상으로 새겨진 얼굴들에는 극적인 긴장이나 아늑한 부드러움도 없다. 삶 속에 녹아 있는 기억의 편린들을 추적하는 김원용의 이야기는 자극적인 드라마를 연출하기 보다는 기억 속의 어느 한 순간을 심플하게 짚어내는 간명한 내러티브들이다.
그는 삶을 구성하는 과거의 흔적들을 들춰낸다. 그 안에는 현실을 구성하는 과거의 기억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눈가리고 입막은 인물들의 면면에는 우리의 기억이라는 것이 안정적인 기표로 고정되어 있지 못하고 유동하는 편린에 불과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한 손으로 한 쪽 눈만을 가린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눈길도 있다. 두 손으로 두 눈을 가리고 있으면서도 손가락 사이로 한 눈을 뜨고 어딘가를 바라보는 인물의 불안한 시선도 있다. 입을 막은 채 실눈을 뜨고 한쪽을 응시하는 시선도 있다. 턱을 괸 채 골똘히 생각에 빠진 구겨진 인물 사진 이미지도 있다. ● 찢겨지고 구겨진 종이는 김원용 근작의 출발이자 결과이다. 그는 종이를 찢는 행위와 그 결과를 작업의 모티프로 삼았다. 그것은 조각 작품의 형상을 만들어낸 시각적 결과물의 출발점으로서 뿐만 아니라 과거의 기억들에 대한 작가의 태도이기도 하다. 찢겨진 종이 이미지는 기억의 잔상과 망각된 기억 두 가지 모두를 담아내는 기표이다. 종이를 찢어버리는 과정과 찢겨진 종이라는 결과 두 가지 모두가 김원용의 근작들을 구성하는 요소들인 것이다. 그것은 과거의 기억들을 삭제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는 동시에 그 자체로 기억의 존재를 긍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드러내는 일이다. ● 김원용의 근작은 기억의 편린을 다루는 스타일로서 독자성을 확보했다. 그의 이야기들은 구체적인 사건을 다루기보다는 자신의 삶에 들어있는 기억 일반의 모습을 간추린 상징적인 형상들을 담고 있다. 이제 남은 문제는 떠도는 기억들을 개인과 집단, 인간과 사회, 의식과 무의식 등의 다양한 층위 속에서 면밀하게 검토하는 일이다. 지금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인간의 삶 속에 담겨있는 매우 일반적인 체험에 근거한 보편적인 기억의 문제들이라면, 앞으로 우리가 그로부터 들을 이야기는 김원용이라는 예술가 주체의 매우 특별한 체험에서 나오는 특수한 기억의 편린들이기 때문이다. ■ 김준기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많은 기억과 사건 속에서 갈등하고 동요한다. 그 순간의 갈등과 망설임들은 기억의 파편이 되어 오랜 시간 나의 삶과 함께하며 나의 인생을 만들어 주고 자아를 형성시켜 준다. 순간의 아픔, 즐거움, 쾌락, 눈물로 아파하던 그 순간, 순간의 기억과 잔상들은 지나간 시간이 되어 버렸지만 지금 이 순간도 나의 삶 속에서 현실이 되어 다가오곤 한다. 「moment」작품 연작들은 종이를 찢고, 선물을 포장하고 있는 종이를 찢어 벗기는 과정에서 발상이 시작 되었다. 찢어 벗기고 그 안에 무엇이 있을까 하는 바램의 순간들 그리고, 종이를 찢고 사진을 찢음으로 지나간 시간을 잊고 버리려는 결단의 순간들, 그 순간들은 마침표를 찍는 것이 아닌 찢어냄으로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다. 「moment」연작의 얼굴 이미지들은 기억의 파편들이며 A4용지에 긁적인 낙서일수도 프린트했던 사진 이미지일 수도 있다. 찢겨지고, 구겨지고, 버려지는 종이처럼 우리는 기억되어지는 것과 잊혀지고 버려지는 것들의 사이에서 언제나 망설이고 있다. 찢는 순간 우리는 지나간 것들을 잊으며 새로운 시작과 다음 시간을 꿈꾼다. ■ 김원용
Vol.20100505g | 김원용展 / KIMWONYONG / 金源矓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