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눈

추유선_손인선_이미애展   2010_0501 ▶ 2010_0514 / 월요일 휴관

추유선_Open your eyes no.5_디지털 C프린트_80×100cm_2008

초대일시_2010_0501_토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아트가 GALLERY ARTGA 서울 종로구 효자동 40-1번지 Tel. +82.2.722.6404 www.artga.net

듣는 눈 ● 그림에 있어서 본다는 것은 가장 근본적인 것이어서 끊임없이 작가 스스로에게, 관람자에게 묻는 질문이다. 그럼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꽃에게 이름을 지어준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름을 지어줌으로서 비로써 꽃이 의미작용을 하듯이, 우리가 무엇인가를 본다는 것은 비로써 인식된 사물이 그가 있는 공간과 함께 진동하고 시간이 흐르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곧 세계의 깨어남이다. ● 무엇을 보는가? 무엇을 어떻게 보는가?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보는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보는가? ● 글을 쓸 때 6하 원칙에 의해 쓰는 것처럼, 시각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작가들에게 있어서도 이런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보기는 낯선 것들, 보려하지 않았던 것들, 보았으나 보지 못했던 것들을 자극하고 울림을 갖게 한다. 또한 천명의 작가가 같은 것을 보았다고 할지라도 개별적인 경험들과 그 울림의 관계맺음을 통해 천개의 작업이 나올 수밖에 없다. 천개의 세계가 있는 것이다. ● 세명의 작가가 있다. 그들은 듣는 눈을 가지고 있으며, 그 눈을 통해 보이는 것 너머를 듣는다. 우리가 눈을 감았기에 보지 못하는 것들, 너무나 미세한 떨림이어서 그 떨림의 파장을 불현듯 알아챌 수 있는 것들, 그리고 지워진 경계가 주는 인식의 불확실성을 지워진 경계를 더듬어가며 그 낯설음을 즐기는 것이 그것이다. 이곳에는 세 가지 방식의 세계가 존재한다. ■ 추유선

추유선_앨리스의 동굴_디지털 C프린트_70×70cm_2008
추유선_moonstruck no.5_디지털 C프린트_61×49cm_2008

늘 알 수 없는 어떤 힘에 의해 세계는 방향성을 갖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 존재의 힘을 어렸을 때는 신이나 우주인으로 단순화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삶도 생각도 어렸을 적과 다르기에 결코 단순화할 수 없음을 슬퍼한다. 나는 현재 우리의 세계가 거대한 욕망들로 얽혀 그 힘을 증식해 간다고 보며, 이것이 내게는 보이지 않는 커다란 감시자의 눈 같았다. 또한 이 눈에는 우리의 욕망까지도 하나의 커다란 줄기로 얽혀 뽑을 수 없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죽이고 환생을 꿈꾸지 않는 한, 이 욕망의 눈앞에서 우리 모두는 차라리 눈을 감아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계는 점점 투명해지고 스스로를 망각해 간다. 단지, 환상과 그 환상이 주는 극적인 쾌락과 공포만이 세계를 떠돌며, 진실은 침묵의 진동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나는 이 진동이 파동을 만들 것이라 믿는다. 따라서 듣는 눈을 통해 듣고, 보며, 느끼고자 한다. ■ 추유선

손인선_Tree_캔버스에 혼합재료, 카본지_70×90cm_2010
손인선_Tree_캔버스에 혼합재료, 카본지_80×80cm_2010
손인선_파란나무_캔버스에 혼합재료, 색연필_90×123cm_2008

늘 나무를 바라본다. 그래서 나무를 그린다. 나무주변을 떠도는 공기의 가벼움, 미세한 흔들림, 고요한 벽의 그림자, 가지들의 방향성, 하늘위로 보이는 가지들의 선들, 뭉침과 풀어짐, 담백함... 나무와 함께한 기억, 시간과 공간의 잔상에서 무언가를 그리는 작업을 시작한다. 중대한, 의미있는 나무의 이미지에 의미를 두기보다는 그리고 지우면서 생기는 번짐과 흔적들이 만들어내는 요소들과 이미지들이 만나는 한 지점에서 나무라는 매개체를 통해 기억의 순간을 포착하고 싶다. 눈을 감고 사물을 보듯 눈을 뜬 채 꿈을 꾼다. 보이는 세계일수도, 보이지 않는 세계일수도 있는 확정적이지 않은 애매함, 꿈의 상상력이 명료한 현실의 아름다움만큼 강하게 느껴지는 것, 그때가 작업 의미의 출발점이다. ■ 손인선

이미애_보이는 것 너머의 보이는 것_캔버스에 혼합재료_91×72.7cm_2009
이미애_보이는 것 너머의 보이는 것_캔버스에 혼합재료_41×27.3cm_2009
이미애_보이는 것 너머의 보이는 것_캔버스에 혼합재료_41×27.3cm_2009

하늘을 담은 바다, 숲의 하늘을 담은 옹달샘, 복잡하고 바쁜 일상을 담은 거리의 물웅덩이, 이들의 끝없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 바람에 의해서이다. 물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내가 서있는 가장자리, 그리고 바람이 지나가는 길 어느 지점의 가장자리이다. 잔잔히 움직이는 물 위에 돌을 던져보면 그 원에의해 수면위의 보여진 이미지들은 걷어지고 물속의 풍경이 드러남을 알 수 있다. 물속에 보이지 않던 깊은 공간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듯이 내 앞에 놓여진 많은 대상들을 통해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여지고 의미를 찾게 된다. 이런 면에서 물은 땅의 시선이 되고, 나와 세상의 거울이 되고, 하늘과 땅 사이의 시공간을 담을 수 있다. 보여지는 것에서 사유의 시선으로 새로움이 나타나는 물이기도 하다. 그 물을 담는 그릇의 웅덩이를 통해 삶의 작은 산책을 한다. 그 산책 속에서 바람처럼 시간의 지나감을 보고, 주변의 가장자리 대상들을 담아 삶을 바라본다. 나는 투명한 시선으로 보이는 것 너머의 보이는 것을 보고자 한다. ■ 이미애

Vol.20100502h | 듣는 눈-추유선_손인선_이미애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