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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10_0422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8:00pm
남서울대학교 아트센터 갤러리 이앙 NAMSEOUL UNIVERSITY ART CENTER GALLERY IANG 서울 종로구 혜화동 90-18번지 뉴씨티빌딩 B2 Tel. +82.2.3672.0201 www.galleryiang.com
죽음의 신화적 알레고리 : 영웅의 탄생을 기대하며 신화는 철학적인 보편적 사유의 근간이다.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신화는 종교와 철학의 본체이자 문학과 예술의 원천으로서 인간존재와 삶의 원형으로 작용해 왔다. 신화에 대한 학문적 정의와 해석의 범주는 인문학의 발전과 함께 보다 다원화된 관점으로 확대되었으며, 이러한 변화는 예술작품에서도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고대와 중세 시대의 예술 작품이 신화적 상상력을 온전히 재현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근대 이후에는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과 세계관 실현의 근거이자 모티브로 활용되었다. 20세기를 전후로 신화에 대한 관심은 타 문화권의 신화들을 비교하고 구조적인 분석이 이루어지거나 심리학에서는 무의식의 세계를 탐구하는 기준으로 제시되기도 하였는데, 단순히 과거의 산물이 아닌 인류에 있어 가장 보편적인 학문으로서 현재와 미래를 투영하는 거울의 역할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현대예술에서는 신화적 요소를 재구성하거나 새롭게 생성되는 각종 형태의 신화들을 직간접적으로 차용함으로써 인간 삶을 바라보는 현대인의 태도와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있다.
이정헌의 작품들을 해석하기 위하여 선행되어야 할 몇 가지 요소들은 신화에 대한 이해와 그것이 형상화되는 과정에서 작가가 무의식적으로 발현시키고 있는 메타포의 의미들에 대한 다양한 층위의 해석 틀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신화적 요소를 토대로 유사한 의미의 알레고리들을 내포하고 있는데, 다소 직접적인 형상을 띄고 있음에 주목할 때 '왜 신화인가?'라는 흥미로운 질문들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초기 작품들의 경우 개인적인 경험과 환경에서 비롯된 종교의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에 의문을 품으며 종교적 인물들을 풍자함으로써 철학적 사유를 토대로 문제에 접근하는 그의 성향을 암시한다. 그 후 작업에서는 어린 시절의 작가, 어머니, 동물, 소녀 등의 형상들을 함께 배치시키며 자아와 내면세계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근작에서는 이러한 종교 혹은 자아의 직접적인 주제에서 벗어나 신화적 모티브를 끌어들임으로써 보다 우의적으로 메시지를 표출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크레타 섬의 미궁에 갇힌 반인반수 괴물 미노타우로스, 피노키오 동화의 서사를 재해석하거나 변용시킴으로써 교조주의와 흑백논리가 만연한 종교적 대립과 모순된 세상, 허구와 실재, 욕망, 불멸, 초월적 존재에 대한 사유의 비틀기를 보여준다. 피카소가 「미노타우로스」 연작에서 자신을 미노타우로스와 동일시하며 인간의 양면성에 대해 이야기하듯, 이정헌의 근작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미노타우로스는 대립적 존재들 사이에서 표류하는 분열적인 정체성에 대한 가장 적합한 상징이자 그의 심리적 세계와 신화적 심상간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한 결정적 단서로 작용한다. 작품들 대부분 상당히 그로테스크하고 상징적인 느낌이 강하며, 개별적인 형상들을 함께 배치시키는 제의적 형식을 띄고 있다는 점에 착안할 때 복잡한 무의식 세계의 표상들을 드러냄으로써 작가 스스로 의식을 치루고 있음을 추측케 한다.
분석심리학자인 융(C.G.Jung)은 "신화가 집단무의식의 원형"이라 정의한다. 단순히 개인적 경험을 뛰어넘는 인류의 공통적인 정신구조와 관련되어 있으며, 신화에서 심상이 도달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새로운 집단의식의 획득이자 개인적으로는 자기실현 혹은 개인의 전(全)인격화임을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예술가의 작업은 심리적 방식의 창조작업과 환영적 방식의 창조작업으로 나뉠 수 있는데, 전자가 개인의 경험 혹은 삶의 체험 즉 의식을 근거로 한다면, 후자는 의식의 배후에 있는 정신이 제공하는 심적 체험과 무의식이 작품의 원재료가 된다. 진정한 예술의 원천은 바로 이 무의식이며, 집단무의식의 원형이 곧 신화이기 때문에 신화적 심상을 토대로 예술 작품을 생산한다는 전제를 가진다. 20세기의 대표 신화학자 조셉 캠벨(Joseph Campbell)은 전 세계에 걸쳐 본질적으로 똑같은 신화적 모티브가 나타나고 있음에 주목하며 "꿈은 개인의 신화이고, 신화는 집단의 꿈"이라 말한다. 또한 신화는 인류가 궁극적으로 걸어야 할 내면의 길 안내자이며 심층의 영적 잠재력의 실마리라 표현하였다. 이러한 학설들을 통해 '왜 신화인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그것이 삶의 원형이자 예술의 원천임을 재확인할 수 있으며, 인류의 시공간을 초월하는 보편성을 기반으로 하기에 특히 예술작업에 나타나는 신화적 사고와 언어는 개인의 내면세계를 외부로 전이시킬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도구로 선택되어지는 것이라는 결론을 얻게 된다. ●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크게 두 가지의 계획을 수립하였다. 장례의식 장면을 전시공간에 설치하는 것과 그리고 지난 몇 년간 작업했던 작품들을 전시기간동안 모두 처분한다는 것이다. 두 계획 모두 '죽음'과 '무(無)'를 상징하거나 상통하는 면이 있는데, 그 스스로 죽음에 대한 간접적인 경험과 어떤 의식의 변화가 이번 전시를 결심하게 된 가장 큰 요인으로 보인다. 지난 몇 년간 기르던 암수 앵무새 한 쌍이 약간의 시차를 두고 사망하였다고 한다. 앵무새는 자신의 자아를 투영했던 대리체의 존재였기에 마치 스스로가 죽음을 대면하고 있는 듯한 심적 괴로움과 충격이 컸다는 작가의 고백은 이번 전시가 하나의 의식적 행위임을 입증해 주고 있다. 지난 작품들을 모두 처분하려는 계획은 스스로의 죽음을 알리고 조의를 표하는 자리를 마련, 주변인들을 초대함으로써 삶의 위기와 행위를 개인에서 비개인화시키려는 작가의 의도가 반영된다. 전시의 구성은 과거의 작품들과 장례의식을 배치하고, 신작으로는 영상과 평면, 텍스트 중심의 작품들이 추가되어 기존의 조형 방법인 신화와 알레고리적 표현에서 '죽음'이라는 주제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장치들이 마련된다.
예술작품과 전시는 예술가의 내면세계를 드러내는 관념체계이자 소우주의 표현양식이다. 그것을 여과없이 드러내려는 노력이 마땅히 행해져야 하겠지만, 스스로 '죽음'이라는 명제를 선택하고 가시화시킨다는 것이 분명 쉽지는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표면적인 죽음을 넘어선 철학적 관점에서의 '죽음'에 대한 사유는 그것을 초월함으로써 과거의 자신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욕망의 근저에서 발단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작가는 기존의 작품들을 모두 처분하려는 시도를 새로운 작품을 하는 원천이자 행위의 근거로 들며 새로운 작품의 구상으로 가장 순수했던 시간과 추억으로 역행하고 싶은 소망을 밝힌다. 그러한 경험들을 통해 작가가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캠벨에 따르면, "영웅이란 죽음과의 화해를 통해 공포를 극복하는 자"이다. 스스로 부여하는 시련이나 계시 속에서 의식의 변모를 통해 무엇인가를 '찾으러' 떠나는 여행자라 설명한 그는 인간은 누구나 잠재되어 있는 삶의 과녁과 이상을 발견하고 개척해나가야 하며 이것이 "천복"을 따르는 삶이라 하였다. 천복을 따르는 과정에서 겪는 시련과 고통을 용기있게 극복하는 자가 곧 "영웅"이며, 자기 스스로를 찾기 위한 모험을 감행하는 것이 영웅이 되는 길이다. 누구나 내면에 자신만의 신화가 존재하고, 자기 삶의 영웅이 되고자 하는 욕망과 이상을 가지고 있다. 인간 스스로 자신을 넘는 도전을 하게끔 만드는 것이 신화의 역할이라는 이론에 입각할 때, 신화를 대하는 작가의 입장이 처음에는 무의식에서 시작되었을지언정 점차 그 개연성들을 찾아나가며 자신의 신화를 형성하고 영웅이 되기 위한 정신적인 행위들을 켜켜이 쌓아나가고 있음에 주목하는 바이다. 미궁 속에서 아리아드네의 실타래처럼 직관과 기회의 실마리를 놓지 않고 두려움과 공포없이 천복을 찾아 떠나는 영웅의 탄생을 기대하며 이정헌 작가의 다섯 번째 개인전, 과거의 자신에게 행하는 고별 의식에 이 시를 바친다. ● 영혼은 몸에 지나지 않는다고 나는 말했다. 그리고 몸은 영혼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무엇도, 신도 한 사람의 자아보다 크지 않고, 누구나 조의를 표하지 않고 수의를 입은 채 자신의 장례식으로 걸어가고, 한 푼 없는 나나 당신은 지구의 정수를 얻을 것이고, 눈으로 들여다보거나 꼬투리 속의 콩을 보여준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지식을 혼란스럽게 하고, 거래나 고용이 아니라 이를 따르는 젊은이는 영웅이 되며, 아주 부드러운 물건이 아니라 이것이 돌아가는 우주의 중심을 이루고, 모든 남녀가 무수한 우주 앞에 냉정하고 거만하게 서리라고 나는 말했다. 인류는 신을 알고자 하지 않는 자라고 나는 말한다. 만인을 알고자 하는 나는 신을 알고자 하지 않기에 어떤 말로도 내가 신과 죽음에 대해 얼마나 편안한지 말할 수 없다. (월트 휘트먼, 「풀잎」) ● I have said that the soul is not more than the body, And I have said that the body is not more than the soul; And nothing, not God, is greater to one than one's self is, And whoever walks a furlong without sympathy, walks to his own funeral, drest in his shroud, And I or you, pocketless of a dime, may purchase the pick of the earth, And to glance with an eye, or show a bean in its pod, confounds the learning of all times, And there is no trade or employment but the young man following it may become a hero, And there is no object so soft but it makes a hub for the wheel'd universe, And I say to any man or woman, Let your soul stand cool and composed before a million universes. And I say to mankind, Be not curious about God, For I, who am curious about each, am not curious about God; (No array of terms can say how much I am at peace about God, and about death.) (Walt Whitman, 「Leaves of Grass」) ■ 최정은
화창한 겨울... 따윈 필요없어, 여름 내게 화창한 겨울은 아무리 화창해도 차갑기만 하다. 늘 여름의 햇살을 꿈꾸게 한다. 화창한 겨울과 여름의 우울한 장마 중 반드시 고르라면 뜨거운 여름을 꿈꾸겠다. ● 이번 전시는 그 동안의 작업을 정리하는 고별의식이다. 새로운 작업을 축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동안의 작업과 결별하고 위안을 얻는 일종의 장례식이다. 그리고 새로운 여행을 떠나는 출발점이다. 과거에 둘러싸여 헤매이는 나를 보기가 이젠 안스럽기까지 했다. 그것들을 부둥켜 안고는 더 이상 나아갈 힘이 없었다. 쓰레기로 치부해 버리기엔 고난한 추억이 있는 작품들... 내가 애정을 주고 감싸 안지 못하는 작품들을 헤아려주고 안아줄 사람들을 찾는 것이다. 혹자는 버리는 거라면 자기에게 주라고 말하곤 한다. 내가 쓰레기라고 몰아세우는 것들을 누군가는 바라봐줄 수도 있지 않을까? 적어도 사랑스럽진 않더라도 보듬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염치없게도 내 작품들을 대신 사랑해 달라며 후원해달라고 부탁한다. 거창하게 스폰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작지만 많은 마음들을 받으려 한다. 그리고 전시가 끝나는 시점이 아니라 전시 중 내 작품들은 자신들을 사랑해주는 사람들과 새로운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점점 비워지는 전시장은 나에게 축복이다. 과거의 상념과 절교하는 것이다. 모든 게 정리되면 나도 여행을 떠나려 한다. 첫사랑을 찾아 떠나는 여행... 어릴 적 일본으로 이민 가고 다시 한국에 유학 와서 호주로 이민간 첫사랑. 가장 순수하고 고왔던 관계에 대해 추억하며 여행 중 무언가 얻게 되는 행운을 누리리라 희망하며 여행을 떠나려 한다. 내게 추운 겨울은 그에게 뜨거운 여름이리라. 그리고 그 여행에서 느꼈던 감정과 영상, 사유를 통해 다음 작업을 이어 나가려 한다. 이 전시를 함께 했으면 하는 것이 작지만 내게는 커다란 후원자들에게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전시에 소장한 작품 설치사진을 함께 꾸미고 여행을 통해 작업한 것에 대해 얘기 나누고자 하는 것이 이번 전시의 시작이자 다음 전시의 마지막이다. 과거와의 단절을 통해 또한 과거와 새로운 관계 맺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새로운 추억을 쌓아 나가는 것이다. 화창한 겨울 떠나는 여름여행... ■ 이정헌
본 전시기간동안 다음 전시 프로젝트 후원자를 모십니다. 후원자가 되어주시는 분들은 이정헌의 지난 작품들을 소장하시게 되며, 그에 대한 과정의 기록들은 또 하나의 작품제작 소스로 활용될 예정입니다. 본 전시의 의도와 추후 작업방향 맥락형성을 위한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Vol.20100423f | 이정헌展 / LEEJUNGHUN / 李政憲 / painting.video.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