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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10_0421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 나우_GALLERY NOW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2-13번지 성지빌딩 3층 Tel. +82.2.725.2930 www.gallery-now.com
시간과 공간의 각성, 부재의 존재를 상기하다 -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 김준호의 작업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산업화로 인한 도시풍경이 불균등하게 변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회적 풍경은 도시의 중심과 주변이 통일되지 않는 불합리한 공간으로 자리 잡는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그 자체의 미, 추를 떠나서 나름대로 기록할 가치가 있는 것 들이다. 김준호는 우리들 주변에 가까이 있으면서 흔하게 여겨졌던 소소한 삶의 현장이 과거의 순간에만 갇혀있기를 바라지 않는다. ● 지금 이 순간, 한국에서 추진하는 재개발사업으로 인해서 낡고 지저분한 지역이 개발되는 과정은 아무래도 섭섭하게 느껴진다. 이런 이유는 도시가 자신의 오랜 역사와 다양한 문화에 대한 기억이 상실되지 않을까하는 염려 때문이기도 하다. 김준호는 재개발지역을 촬영하는 방법에 있어서 형식적인 방법으로서 연작 사진을 사용했다. 이것은 흑백과 컬러사진으로 나누어진다. 흑백사진의 경우 '단 사진'을 찍은 것으로서 단순한 벽에 주목한다. 컬러는 2장, 4장, 5장, 7장으로 연작사진의 방식으로 진행한다. ●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많은 대상 중에 왜? 하필 벽을 촬영했을까 에 있다. 언뜻 생각하기에 벽은 표면적으로 공간을 드러내는데 있어서 부족해 보인다. 그 이유는 이차원적인 특성과 함께 관람자의 시선을 분산시키기 때문이다. 작가의 입장에서는 벽을 통해서 구체적인 어떤 이미지를 전달하거나 혹은, 상황을 연상시키게 하는 작용이 아니라 마음이 이끌리는 그 무엇인 것이다. 그의 행위는 과거 자신의 어떤 모습을 상기하면서 정신적인 무게를 덜어내고 피사체를 붙잡고 싶은 마음으로 느껴진다.
또한, 두 종류의 사진은 모두 재개발 지역이 발생하는 곳을 위주로 촬영한다. 지역별로는 서울 아현동, 중계동, 인천의 십정동, 강원도 영월 등이다. 작가는 지역이 가진 특성을 두드러지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테마로서 파악한다. 김준호의 사진에서 주목되는 것은 관찰자적인 태도이다. 그렇다고 동일한 장소에서 카메라가 움직이지 않고 일정하게 대상을 관찰하듯이 사진을 찍지는 않는다. 그는 재개발 때문에 낡은 거물이 헐리는 장면을 순차적으로 기록한다. 촬영 방법은 사진을 찍는 사람과 대상 간에 심리적인 거리를 일정하게 유지한다. 이런 방식은 본인의 의지를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김준호가 찍은 한 장의 사진은 수많은 시간 중에 '순간'에 불과하다. 하지만, 순간이라는 개념은 그다지 미덥지 않다. 예를 들면, 하루 24시간 중에서 길거리의 모습을 1/125의 셔터 스피드로 찍은 시간이 왜? 순간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카메라의 셔터 속도는 1초를 125로 잘라 나눈 짧은 물리적 시간은 작가와의 대상이 교감하는 지점이다. ● 김준호가 어떤 상황에서 촬영한 사진이 2008년 7월28일 9시 20분 3초라는 시간에서부터 2010년 2월 19일 6시 10분에 촬영한 것이라면 그것은, 그 기간 동안 0.001초라는 지속하는 시간의 사이로 봐야한다. 사진이 찍힌 순간은, 시간상으로 멈추어져 있지 않다. 움직이는 어떤 상황이 사진으로 포착되었다는 설명보다는, 그 시간에 살아있다는 존재의 지속을 의미한다. 우리가 가보지 못하고 경험하지 않은 시간과 공간을 담고 있는 사진에 기록된 순간은 시간의 매력을 증명한다. 모든 것을 재현하는 사진의 욕심은 시간에 대한 집착이다. 작가가 궁극적으로 표현하려고 하는 것은 부재의 존재성, 지나간 시간, 대상과 상실에 대한 의미를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느린 시간의 각질 ● "그가 앞으로 나아갈수록, 그의 걸음걸이들은 느려진다. 저 느림 안에서, 나는 행복의 어떤 징표를 알아보는 듯하다." (밀란쿤데라의 느림 중에서.) 밀란쿤데라(Milan Kundera)의 느림(Lalenreur)에서는 현대인들이 속도를 즐기는 현상에 대해서 언급한다. 자동차와 오토바이는 이러한 현대인의 욕망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한다. 기계를 이용해서 빠르게 질주하는 과정에서 인간은 과거와 미래로부터 파편화되고 단절된다. ● 그 순간은 잠시 동안 엑스터시(Ecstasy) 상태에 빠져버리면서, 시간의 굴레에 빠져 나와 바깥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밀란쿤데라는 계속해서 투덜거린다. 사람들이 빠른 속도를 즐기는 동안 느림의 즐거움은 없어져 버린 것인가? 어쩌면 현대인들은 그의 말처럼 느림에 대해서 생각해 볼 여유가 없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느림의 미학은 어떤 장점이 있는가? 그것은 빠른 속도 때문에 미처 보지 못한 것,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것들을 멈춰서 돌아보게 하는 순간을 만들어낸다.
김준호의 카메라는 시간성의 개념으로서 느림의 미학을 추구한다. 재개발 지역사람들은 도시의 사람들이 바쁘게 지내는 일상생활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들은 외부 환경의 변화와 무관하게, 이러한 속도를 못 느끼고 살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세상이 이처럼 빨라지고 있으니 너희들도 세상의 속도에 맞춰야 한다고 핀잔을 들을 수 있지만 빠른 것만 좋은 것은 아니다. 그들은 빠르게 바뀌는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서 적응하는 사람들의 세상과는 다른 시간과 공간, 다른 생각, 다른 환경에서 자족적인 삶을 꿈꾸는 것이다.
김준호의 작업은 얼핏 바라보면 롤랑바르트(Roland Barthes)의 비유처럼 푼쿠툼(punctum)이 제거된 상태로 보인다. 즉, 구체적이지 않는 시각적인 효과는 관람자의 지각을 비매 개(immediacy)로 향하게 한다. 이런 행위에 대해서 롤랑바르트는 관람자를 사진 자체로 끌어들이는 것을 방해하는 요인이라고 언급한다. 물론 대상에서 시선을 자극시키는 효과가 어느 정도 설득력을 발휘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시각적으로 반짝거리는 효과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진지하게 고민을 해보면, 푼쿠툼이 시각적으로 자극하는 행위를 지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 그런 의미에서 김준호의 작업은 일종의 「겉보기」와 「들여다보기」사이의 해소로 표현된다. 예를 들면 관객이 재개발 지역의 벽면을 바라보면서 작품의 표면에서 느껴지는 재질감이「겉보기」에 해당된다면, 표면적인 특성을 넘어서 자리 잡고 있는 의미를 찾는 행위는 「들여다보기」를 수행하는 것이다. 관객은 이 둘 사이의 관계를 자유롭게 왕래하게 된다. ● 김준호의 두 번째 개인전은 일상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소수들이 살아가는 방식과,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사회에서 느림의 미학을 통해서 그 가치에 관한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가치가 지닌 갈래에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작가의 각성과 함께 대상에서 드러난 부재와 존재의 의미를 상기시키게 한다. ■ 김석원
Vol.20100421d | 김준호展 / KIMJOONHO / 金俊浩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