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10_0410_토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주말,공휴일_10:00am~05:00pm
한전프라자 갤러리 KEPCO PLAZA GALLERY 서울 서초구 쑥고개길 34(서초동 1355번지) 한전아트센터 1층 Tel. +82.2.2105.8190~2 www.kepco.co.kr/gallery
드러난 상처의 아름다움 ... 철사는 쇠로 만든 얇은 실이다. 얼마나 모순된 존재인가! 단단한 광물인, 기계문명을 꽃피우게 하고, 수세기 동안 동서양의 문화에서 강인함을 상징한 철은 얇은 실이 되는 순간 단단함을 잃고, 여자의 손에도 굽어지고 끊어지는 존재가 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철사가 반드시 길들이기 쉬운 재료가 된 것은 아니다. 금속의 차가움과 까칠함을 그대로 간직한 철사로 옷을 짠다는 것은 여간 독한 행동이 아니다. Hers와 His가 주는 낭만적인 아련함 뒤엔 피가 나고 부르튼 작가의 손이 있다. 손끝의 쓰라림과 손목의 고통을 감수하며 옷을 '엮어 내는' 작가의 행위는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말할 수 없는 상처를 쥐어 짜내는 행위이다. 하지만 철사의 모순된 성질이 류정미의 작업에서 비장미悲壯美 만을 불러 일으키는 것만은 아니다. 작가는 얇은 철사로 느슨하게 조직을 엮어 이어나가는 직조방식을 취하는데, 이러한 방법은 소시민으로서 한 개인이 느끼는 '존재의 가벼움'을 시각적으로 느끼게 해주며, 작품이 설치된 벽면에 작업의 그림자가 드로잉처럼 투사되는 효과를 가져다 준다. 그리고 이 그림자 드로잉은 철사 조형물에서 파생된 또 따른 창조물이 된다.
드러남과 숨김/남자의 타이즈는 두꺼운 성기의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여자의 드레스가 만들어낸 '풍만한 하체'의 그림자 보다 더 자극적인 남성 성기의 그림자는 우스워 보이기까지 한다. 무얼 그리 과시해야 하는 것 일까? 타이즈 안에 들어있는 그것은 정말 그림자만큼 클까?... 타이즈가 남성들의 허세를 드러내기 위한 옷이라면 (발레리노의 타이즈를 보라!) 류정미의 드레스는 여자들의 숨겨진 낭만적 자기과시와 기만적 자기연민을 상징한다. Hers의 실루엣은 가녀린 소녀의 상체와 중년 여성의 하체를 조합시킨 듯 하다. 그리고 이러한 이중적 구조- 낭만과 현실-의 괴리감을 눈가림하기 위해 작가는 빈약한 가슴과 벌진 골반을 꽃으로 장식해준다.
...결국 류정미의 옷들은 어느 한 성에대한 공격과 정체성 인식을 촉구한다기보다는 한 인간이 사회에서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과정에서 입은 상처를 가리기 위한 옷이었다. 그러나 철사로 만들어진 이 옷들은 상처를 가려주지 못한 채 오히려 숨기고 싶은 상처들을 파리하고 위태롭게 드러내고 말았다.
한편 철사로 옷을 뜨는 과정은 점점 더 작가 자신의 내면으로 파고들어가는 작업 과정이 되었고 이 집요하게 반복적인 행위는 작가로 하여금 점점 더 솔직하게 남성과 여성의 위선에 대한 알레르기를 고백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Hers2와 His2에서 작가는 자신의 감추고 싶었던 상처_혹은 욕망을 표면위로 끌어 올리기로 결심한 듯 하다. 이제 그녀는 관계, 구조, 허상에 대한 집착을 조금은 내려놓고, 자신의 내부에 자리잡고 있는 상처의 정체성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핵 Kernel들을 차근차근 드러내고 있다.
「Hers2」는 여성의 난자를 닮은 모시로 된 원형들이 얇은 실로 흩어져있다. 「His2」는 작가의 어머니가 손을 뜬 레이스를 스캔 한 뒤 작가가 직접 찍어낸 모티프들로 만들어졌다. 두 옷들의 형태는 과장되고 긴장되었던 2009년도의 철사 옷들보다 한결 편해 보이지만 더 견고해 보인다. 철사 작업의 과정보다 덜 아프겠지만 노동강도는 만만치 않다. 조형적으로는 '감춤'의 긴장감 대신 '드러남'의 여유를 선택했지만 류정미의 작업방식은 여전히 불편하고 강박적으로 되풀이 되는 작업이다. 하지만 하나하나 홀치고, 꿰매는 작업을 통해 선에서 면으로 표현된 그녀의 새로운 옷들은 이제 작가가 능동적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던 욕망과 상처에 대해 이야기 할 준비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 나비
Vol.20100413h | 류정미展 / RYOOJEUNGMI / 柳貞美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