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10_0407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30am~06:30pm
관훈갤러리_KWANHOON gallery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5번지 본관 3층 Tel. +82.2.733.6469 www.kwanhoongallery.com
섞여 흐르는 기억의 순간을 인화하다 ● 얼굴의 굵직한 분절들이 형태적 규칙성을 무시하고 섞여있다. 한 그림 속, 눈동자들이 가진 응시의 느낌은 구분된다. 하나는 온기를 품고 있고 다른 것은 슬프며, 또한 어느 것은 섬뜩하게 외부를 응시한다. 개별자들이 가진 느낌은 분리되지만 그들이 속한 공간은 넓고 윤곽은 모호하다. 이러한 모호함이 작품에 전체적인 통일성을 부여한다. 이 윤곽 안에는 같은 단어와 개념으로 표현되는 이미지들이 각자 다른 느낌으로 겹쳐져 있다. 이들은 개별적으로 소리 지르지 않는다. 서로의 개성을 드러내며 자신들과 겹쳐져 있는 것들과의 구분을 시도하지 않는다. 물론 개개의 구성요소가 가진 느낌은 다르다. 그러나 서로가 가진 경계는 이들을 포용하고 있는 공간의 그것만큼이나 불분명하다. 따라서 각각의 구성체가 가진 전체적인 부드러움은 이들이 서로를 구획하고 있는 경계, 그 자체로서의 의미를 희석한다. 이곳과 저곳을 향해 있는 큼직한 눈과 입술의 조합. 이들 각자의 지향은 산발적이나 거리를 두었을 때 인지되는 것은 결국 하나인 그 무엇이다. 전체적인 느낌의 일관성을 단정할 수 없는, 같은 공간 속 동일한 이미지들이 가진 각자의 의미. 하지만 모호한 경계에서 나오는 통일성. 이 같은 표현이 지닌 의도와 의미는 사람이 가진 경험에 직감적으로 반응한다.
박소현의 이러한 시도, 앞서 열거한 모든 표면적 시도들의 이유는 사실 명확하다. 사람의 경험에서 직감적으로 반응하는 무엇. 그리고 개념화하기엔 모호하나 순간적인 이미지로서는 분명한 것. 이것은 인간의 머릿속에서 진행되는 일종의 '떠올림'을 표현한다. 하지만 작업에서 읽을 수 있는 떠올림의 표현 자체는 손쉽게 읽히고 동시에 지나치게 명확하다. 그리하여 이것이 어떠한 의미 자체를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 오히려 섣부르게 판단을 내릴 수 없게 한다. '무언가를 떠올림' 그 자체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기에는 대상의 범위가 과하게 포괄적이다. 그렇다면 여기에 가벼운 의심을 더해 보자. 인간이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것들 중 무엇이 의미가 있는 것이며 또한 없는 것인가. 무언가를 떠올림에 있어서 어떠한 것이 떠올림의 대상 자체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진실이며 또한 아닌가. 명확하게 드러나 있으면서도 진위를 알 수 없고, 통일성을 지니지만 그 안에 포함된 개별적 주체들은 서로 다른 느낌을 가지며 뭉텅이 뭉텅이로 겹쳐져 있는 것. 이쯤 되면 과한 포괄성을 지닌 '떠올림'이라는 개념을 넘어, 박소현이 다루고 있는 근원적인 질문을 추적해 볼 수 있다. '떠올림'의 속성을 지니고 개인이 가진 명확함과 불명확함의 혼재를 더한 질문에서 탄생한 주제. 의외로 간단해진다. '떠올림'이라는 것에 인간 각자의 경험이 더해진 것, 바로 '기억'이다.
기억은 일종의 재구성이다. 하나의 개체를 인간이 기억할 때, 인간은 그 때의 시간과 장소를 명확하게 기억하는가, 혹은 아닌가. 여러 가지의 변인이 존재할 수 있고, 어떠한 것을 우리가 떠올리느냐에 따라서 의견은 분분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 기억의 큰 중추에 속하는 하나의 대상. 즉, 사람에 대한 기억으로 범위를 한정하자. 동일 장소의 동일 인물에 대한 기억을 우리가 떠올릴 때를 또한 가정하자.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이 오직 그 장소와 그 시간에만 한정 될 수도 있다. 스치듯이 만나는 사람, 혹은 만남의 횟수가 한 번인 경우에 그렇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기억이, 개별적으로 고정된 기억의 수를 압도한다. 그렇다면 압도된 기억의 저변 안에서 다시 생각했을 때, 그렇게 기억된 사람들은 과연 기억 속에서 순간순간 고정된 모습을 지닌 채로 영원한가. 인간은 크고 작게 변한다. 형상도 그러하고 정신도 그렇다. 그리고 변화한 형상과 정신은 현재는 물론 과거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한 형제를 생각해 보자. 어렸을 적 함께 뛰어놀던 형제, 그러나 나이를 먹고 커서는 말 한마디 하기 서먹하고 어려워진 형제. 그 형제가 서로를 기억할 때를 떠올려 보자. 과거를 상념할 때 현재의 기억은 과거 속으로 침투한다. 현재의 관계를 떠올릴 때는 과거의 모습들이 현재에 와 닿는다. 중요한 것은, 그것들은 서로 섞인다. 지금의 모습과 과거의 모습, 자신을 유쾌하게 바라보던 과거와, 일종의 슬픔이 더해진 지금의 눈빛은 섞인다. 그리고 그것은 조화 아닌 조화를 이룬다. 이렇게 조화를 이룬 기억은 또한 고정되어 있지 않다. 기억 속에선 개별적 주체와 상호 교류하는 파편적인 객체들이 혼합된다. 개별적 주체조차도 매 순간 흘러간다. 흘러간 것은 과거이고 과거의 그것은 현재에 있어서는 다시 객체로 정의된다. 그렇다면 지금 현재의 순간으로 떠오르는 과거의 어떤 부분에 대한 기억의 이미지를 낚아챈다면 그 모습은 어떠할까. 현재, 혹은 그보다 조금 더 먼 과거, 혹은 미래에 상상되는 기억 아닌 기억까지 지금 이 순간 떠올린 이미지에 다닥다닥 달라붙는다. 그리고 그것이 기억된 이미지의 덩어리를 만들어 낸다.
박소현은 지난 몇 년간 꾸준히 이런 기억의 재구성을 다루어 왔다. 그 재구성이라는 것은 말마따나 항상 다시 구성된다. 재구성된 것 또한 다시 변한다. 변하며 해체되고 재구성된다. 작가는 그 찰나를 잡아채어 복잡하지만 통일성을 이루는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현재에 있어서 기억되는 과거의 매순간은, 인간이 언제 기억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같은 순간이지만, 지금의 내가 기억하느냐 혹은 10년 후의 내가 기억하느냐에 따라서 모든 기억은 다시 해체되고 재조합된다. 지난 작업에서 사물에 대한 기억을 재구성하던 박소현의 시도는 시간이 흘러 같은 역사 속을 흘러 왔던 인간에 대한 기억을 다루는 것으로 나아갔다. 짧게는 본인 스스로가 가진 기억의 단편을 이미지로 낚아채는 것부터, 작가 본인이 상상하는 외부인의 기억까지 본인의 기억의 주물틀에 넣어 본을 떴다. 기억은 과거에 있었던 어떠한 현상적인 사건을 떠올리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것은 명확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또한 정확하게 과거의 순간과 일치할 수도 있으며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기억은 흐른다. 흐르는 기억은 또한 변한다. 과거의 순간은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기억함으로서 현재의 우리에게 의미를 가진다. 박소현의 작업은 기억의 재구성을 다루고 또한 그것에 천착한다. 작가의 작업 전체가 소리치고 있는 것은 명확하다. 경계가 없는 총체적인 기억 일부를 잡아채어 날 것으로서의 이미지를 화폭에 고정한다. 경계가 불분명하나 생동감이 내재한다. 작업 자체는 기억의 본성과 같다. 흘러가 사라질 것만 같다. 그리고 작가는 사라질 것만 같은 그것을 화폭 속에 투사한다. 박소현의 이번 작업은, 섞여 흐르는 기억의 순간을 인화하여 '영원의 무엇'을 간직하고 싶은 작가의 욕망 그 자체다. ■ 홍화진
Vol.20100409c | 박소현展 / PARKSOHYUN / 朴昭炫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