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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수 홈페이지_www.parksungsu.com 페이스북_www.facebook.com/binggomomo 인스타그램_@lightly197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모리스 갤러리 MORRIS GALLERY 대전시 유성구 도룡동 397-1번지 Tel. +82.(0)42.867.7009 www.morrisgallery.co.kr
우리들의 해피엔딩 ● 아담과 이브가 인류에 있어서의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의 시작이라면, 박성수작가의 세계에서 관계성은 개와 고양이로 시작이 된다. 깊은 고독함, 기계적 냉철함, 치열한 경쟁, 사라진 인간미, 퇴폐적인 개인주의가 현대사회 속에서 하나의 정체성으로 흡수되고 있는 가운데, 박성수작가는 외로움 속에서 무미건조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다시금 본연의 모습을 되돌려줄 수 있도록 유쾌한 상상을 통해 '인간다움' 그리고 '잃어버린 관계성'에 대해서 적극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상상만큼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고 말하는 박성수작가. 행복을 추구하는 끝없는 상상력에서 탄생한 개와 고양이는 작가의 일상 속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작가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하며, 외로운 현대사회에 용감히 맞서 싸우는 정의로운 영웅이기도 하고, 즐거웠던 과거로 또는 설레임 가득한 미래로 날아갈 수 있도록 함께 동행해 주는 친구이기도 하다. 능청맞기도 하고 심술궂게 보이기도 하는 개와 고양이의 표정과 행동은 언제나 새롭다. 수많은 이야기로 현실과 상상의 공간을 넘나드는 박성수작가의 작품 세계는 「프리허그(Free Hug)」라는 메세지를 갖고 있다. 작가는 이 단어를 '타인과 스며드는 용기 있는 사랑의 표현이며 자유연애를 재미있게 표현할 수 있는 엉뚱한 표현'이라고 정의 내렸다. 아옹다옹 다투면서도 서로의 존재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톰과 제리처럼 박성수작가의 개와 고양이의 만남은 현실 속에서 눈을 뜨고 꿈을 꾸는 우리들의 헤피엔딩이다. ■모리스 갤러리
스토리와 조형성의 성공적인 결합이란 모든 화가들의 꿈일 것이다. 작가의 사유와 구체적 경험을 전하는 데 필수적인 스토리는 적절한 조형적 완숙함을 얻어야 회화로서의 가치를 얻을 것이고, 또 순수한 조형미의 완성을 지향하는 작업 역시 그것이 기호인 한은 조형언어로서 나름의 스토리를 지녀야만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박성수의 작업은 이야기를 지향하는 특성이 강하다. 흥미로운 것은 그 자기세계가 고독한 단독자가 아니라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드러난다는 점이다. 물론 동물 캐릭터가 홀로 등장하는 작품이 없지 않으나 그래도 둘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 더 지배적이다. 그것은 작가의 세계 이해가 자신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타자(他者)에게까지 넓혀짐으로써 관계에 대한 성숙한 성찰을 하게 되었다.
그의 고양이와 개는 행복한 상상의 주체가 된다. 상상은 언제나 현실을 필요로 한다. 현실은 상상의 도약을 가능케 하는 발판이자, 상상의 끝에서 다시 내려앉아야만 하는 귀환점이다. 상상의 주체로서의 고양이와 개가 현실 속에서 타자를 발견하는 것은 이런 점에서 숙명이다. 그 어느 누구도 홀로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아란 내가 생각하는 나만이 아니라, 타인이 생각하는 나, 타자와의 관계 속에 있는 나, 이 모두를 일컫는 말이다. 나는 나이며 동시에 나가 아니다. '나와 너'의 관계를 보여주는 박성수의 작업이 존재론적 성찰을 담는 지점에까지 가 닿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유아(唯我)론적 자아로서의 나에게 머물지 않고,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나를 받아들이는 것은 분명 성숙한 시선이다.
진정한 상상은 일상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일상의 이해이며 일상의 승화일 때 가능해진다. 그러니 관계 속의 자아를 읽어내는 성숙함이야말로 불완전한 현실을 껴안는 힘이며 동시에 그 현실 너머의 행복한 세계를 꿈꾸는 의지인 것이다. 지나치게 소박하고 직설적일 수도 있을 그의 상상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가 바로 유머다. 이 유머야말로 현실을 받아들이는 지혜이자 동시에 현실을 뛰어 넘는 여유에서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 이 지점에서 작가의 작업은 1960년대의 '팝 아트'를 떠올리게 만든다. 추상표현주의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끝에서 로이 리히텐슈타인과 앤디 워홀은 서서히 새로운 예술을 만들어나갔다. 만화의 이미지를 차용한다든가, 대중문화의 아이콘을 빌어온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그들은 일상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박성수 역시 예술과 일상을 대립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며 예술가로서의 자신에 대한 정체성의 획득과 함께 타자와 세계를 향해 자아를 확산시킨 것이다. 여기서 단색으로 처리된 그림의 바탕은 때로 너무 정태적이라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그만큼 작가로서의 자기 결단일 수도 있는데,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늘 불확정적인 상태로 놓여 있는 자아에게 분명한 자기 색깔을 입히려는 무의식적 균형 잡기의 표현일 가능성 때문이다. 어쨌든 현실과 상상, 실체와 환영, 머무름과 떠남, 나와 너 등으로 변주되는 질문을 던지는 박성수의 세계는 자칫 무거워질 수도 있는 우리를 유쾌하게 이끈다.
예술이란 '실제 세계'를 보여주는 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세계'로까지 나아가는 것이다. 박성수는 관계에 대한 성찰을 통하여 자기와 타자, 더 나아가 세계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상상 속에서 행복한 존재로서의 자기 호흡을 얻는다. 그것은 생명으로서 가질 수 있을 아름다운 리듬과 이미지 그 자체다. 거기서 우리 모두 유쾌해지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그의 그림은 정말 사랑스럽다. ■박철화
Vol.20100408a | 박성수展 / PARKSUNGSU / 朴成修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