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10_0407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일,공휴일 휴관
구올담 갤러리 KOOALLDAM GALLERY 인천시 부평구 부평동 185-1번지 Tel. +82.32.528.6030 www.kooalldam.com
꽃은 '아름답다'는 명제하에 굳어진 이미지를 강요받는다. 또한 그러한 이미지를 깨지 못하고 바라보는 이들 또한 막연한 기대를 갖는다. 하지만 화면의 꽃은 반복과 익숙한 시간 속에 화석화된 이미지보다는 이야기를 위한 구성요소에 가깝다. 구성 요소로써 그 역할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마치 우연찮게 꽃의 이미지를 닮아 가고 있다는 편이 더 정확한 접근이 되지 않을까 싶다. 문득 바라보았을 때의 인상을 표현하고자 하였던 것인데, 그곳에 꽃이 있었을 따름이다. 본인에게 있어서 꽃은 무덤덤한 꽃의 인상이 있는가 하면, 기다림이란 뒷이야기가 있을 뿐이다. 시간과 공간의 여운을 남기는 이야기가 있는 꽃의 등장이다.
완성되어져야할 목적, 목표는 그저 심상과 내면의 작은 울림인 것이다. 나의 자연 속에 유닛은 다른 조합을 통해 새로운 기능과 미적 구조를 가진다. 낯설기도 하고 전혀 섬유질의 식물의 모습을 벗어났어도 내겐 주인공이며, 조연이다. 유기적 생명성을 띄고 있으며, 유동적 이미지가 있어서 흘러내리다 멈칫한 상황을 재현하기도 한다. ● 오랜 고향길 담벼락에 있는 얼룩무늬를 보고 있자면, 끝도 없는 공상과 상상의 나래를 피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누군가의 흔적일까? 우연이라 하기엔 상상의 즐거움이 너무나 많이 묻어있는... ● 자연과 대면하고 있는 나의 자세와 상상의 산물들이 어우러져 화면안에서 이야기를 보여준다. 빛에 의한 발색이 아니라 마치 스스로 발색을 위해 숨을 고르며 긴장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가지고 있다. 아련한 것들은 많은 상상과 뒷이야기의 여운, 확실치 않은 정의로 인해 관람자로 하여금 다시 한번 경험에 의한 답을 요구한다. ■ 문효정
화면에서 보여 지는 중첩된 점들의 이미지는 시작도 끝도 없는 공간에서 유유히 부유 한다.그것은 현실세계에서 지각되는 관계들의 알레고리를 의미한다. 표면에 드러난 이미지들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물, 인간과 자연간의 상호관계에 대한 현실의 반영이며 본인의 의식을 바탕으로 한다. ■ 홍효숙
자연은 참으로 위대하고 신비합니다. 춥고 눈 덮인 겨울을 지나 또 봄이 되었습니다. 그 힘든 시간을 견디고 인내한 까닭일까요? 봄날 뜨락에 핀 꽃송이들이 어느 때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꽃이 주는 행복과 편안함을 캔버스를 통해 전할 수 있기를 바라며... ■ 천성숙
만약 우리 삶의 순간순간이 모두 수없이 반복된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혔듯이 영원에 못 박힌 꼴이 된다. 너무나도 무서운 생각이다. 영원한 재귀의 세계에서는 모든 동작에 견디어낼 수 없는 무거운 책임의 짐이 지워져 있다. 이러한 근거에서 니체는 영원한 재귀의 생각을 「가장 무거운 무게」라 일컬었다. 만약 영원한 재귀가 가장 무거운 무게라면 우리들의 삶은 이 배경 앞에서 아주 가벼운 것으로 찬란하게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무거운 것은 정말 무섭고, 가벼운 것은 찬란한가? ● 가장 무거운 무게는 우리를 짓눌러 우리를 압사케 한다. 우리를 땅바닥에 압착시킨다. 하지만 어느 시대나 사랑의 서정시에서 여자는 남자 육체의 육중한 무게를 동경한다. 따라서 가장 무거운 무게는 동시에 가장 집약적인 삶의 충족 이미지다. 무게가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우리의 삶은 더욱더 땅에 가깝다. 그것은 더욱더 실제적이고 참된 것이 된다. 이와는 반대로 무게가 전혀 없을 때 그것은 인간이 공기보다도 더 가볍게 되어 둥둥 떠올라 땅으로부터, 세속의 존재로부터 멀리 떠나게 한다. 그래서 인간은 절반만 실제적이고, 그의 동작은 자유롭고 동시에 무의미한 것이 된다. ● 자 그러니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무거운 것을? 아니면 가벼운 것을? 기원 전 6세기 파르메니데스는 자신에게 이 질문을 던졌다. 그는 온 세계가 여러 가지 대립의 쌍으로 양분되어 있다고 보았다. 빛-어둠, 섬세-난삽, 따뜻함-차가움, 존재-비존재 등. 그는 한쪽 극(빛, 섬세, 따뜻함, 존재)을 양으로, 다른 극을 음으로 생각했다. 그와 같은 분할은 너무나 쉽게 보이지만 한 가지 어려움을 동반한다. 즉, 어떤 것이 양이냐 하는 것이다. 무거운 것이? 아니면 가벼운 것이? 파르메니데스는 대답했다. '가벼운 것은 양이고 무거운 것은 음이다.'라고. ● 그의 대답이 옳았는가? 아니면 틀렸는가? 이것이 문제다. 확실한 것은 오직 한 가지뿐이다. 즉,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의 대립 쌍은 모든 대립들 중에서 가장 신비스럽고 가장 타의적이라는 것이다. (Milan Kundera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 김미란
Vol.20100407d | Memory storage-# 1-문효정_홍효숙_천성숙_김미란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