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10_0402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화봉 갤러리_HWABONG GALLERY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7-28번지 백상빌딩 B1 Tel. +82.2.737.0057 www.hwabong.com
내 작업의 시작은 일기장에 끄적이던 낙서와 같은 드로잉에서였다. 나는 나의 감정과 이야기가 글로 쓴 일기보다 일기 옆에 낙서에 더 잘 나타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래서 그것을 작업으로 발전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즉, 나의 작품은 개인의 이야기를 담은 일기이며, 그 표현언어는 자동기술적으로 발생되는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다고 하겠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문자를 적을 때 이번엔 가로획을 긋고 글자의 간격은 이정도가 적당하겠다는 등의 의식 없이 기록하는 내용에 집중하고 글을 적어 내려가는 것처럼, 나의 드로잉은 감정에 집중한 채로 나의 이야기를 이미지로 적어 내려가는 '쓰여진 이미지(written image)'인 것이다.
작가 개인으로서는 작품이 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 그것이 개인적인 자아의 기록으로서 의미를 가지며, 작업 과정동안 마음 속 감정을 털어놓을 수 있어 치유의 기능을 한다. 그러나 나는 나의 개인적 이야기가 관객에게 읽혀지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소통될 수 없는 나만의 '기호화된 이미지'를 나의 비밀일기장의 자물쇠로 삼았다. 직접적으로 내용이 소통되는 것을 의도적으로 막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ironic)하게도 이 '기호화된 이미지'는 감상자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양하게 이해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어서, 나의 드로잉은 결과적으로 감상자와의 소통의 기회를 더욱 개방하게 되었다.
기호화된 이미지로 이루어진 화면에서 관객들은 각자의 경험, 현재의 상황 그리고 개인의 취향에 따라 제각각 다른 이야기들을 찾아가게 된다. 이것은 마치 음식물을 섭취한 후 체내에서 일어나는 소화과정과 같다. 소화란, 음식물을 몸에서 흡수할 수 있는 형태로 바꾸는 화학적 변화과정이다. 우리는 각자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선택하여 섭취하고 내 안에서 몸에 맞는 형태로 바꾸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감상자는 나의 드로잉을 각자의 기호에 맞게 선택, 수용하여 소화의 과정을 거쳐 내면화 하게 된다. 이와 같은 소화과정은 경험, 기억, 지식 등의 소화효소와 섞이면서 일어난다. 그리고 개인의 소화능력의 차이는 아마도 상상력이라는 말로 바꾸어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감상자들이 나의 그림을 어떻게 소화시키고 무엇으로 내면화 시키는가'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단지 나의 그림이 개인의 소화능력의 차이와 관계없이 모든 감상자가 원활히 소화할 수 있는 부드러운 음식이 되었으면 할 뿐이다. ■ 박지선
Vol.20100325g | 박지선展 / PARKJISUN / 朴芝仙 / painting.draw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