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면의 깊이-識性向식성향

나점수展 / JEOMSOO NA / 羅点洙 / sculpture.installation   2010_0304 ▶ 2010_0321 / 월요일 휴관

나점수_표면의 깊이 識性向 식성향_철, 나무, 실리콘, 유리, 합성수지 등_가변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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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10_0304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현대_16번지 GALLERY HYUNDAI 16 BUNGEE 서울 종로구 사간동 16번지 Tel. +82.2.722.3503 www.16bungee.com

유목민적 시각이 발견한 숭고한 풍경들 The sublime landscape which the eye of a nomade discovered - 1. 여행 ● 작가 나점수는 생김새부터 유목민의 인상을 풍긴다. 천성이 빚어낸 외모의 차분함과 온순한 그의 품새 밖으로 어쩔 수 없이 삐져나오는 유목민의 역마살은 생생하다. 낡은 배낭 챙겨들면, 당장이라도 그의 동선은 문명의 지도 밖으로 나아갈 것 같다. 나점수는 그러므로 유목주의 유형의 작가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유목주의는 여행에서 비롯했다. ● 유목주의(Nomadism)라는 신조어가 현대문명을 정의하는 개념으로서 떠오른 것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 세계화나 국제화(Globalism) 따위의 용어나 개념과 더불어 모든 영역에 확장되어 회자되고 있다. 기술과 자본의 눈부신 발전이 가져온 정보화는 행정과 문화의 경계를 허물었고, 탈 경계의 네트워크는 미술에서도 화두가 되고 있다. 이제 작가는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활동하며 자신의 존재성을 알리고 있다. 정보사회가 낳은 편리한 이기들로 무장하고 유비쿼터스(ubiquotus)를 몸으로 실천하는 작가들이 국제적인 명성을 얻는 것도 작금의 현상이다. 지역을 넘나들며 유동적인 삶을 사는 것을 유목주의라고 할 수 있다. ● 그러나 나점수의 유목주의는 특별하다. 우선 그의 유목성은 언급한 현대적인 유목주의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원시적이고 초기문명적인 형태의 유목주의자이다. 아프리카나 중앙아시아의 사막 등 그가 선택한 여행지는 자본의 실리와 같은 특정한 목적을 지니지 않으며, 오히려 그런 것을 철저하게 배제한 순수한 곳이다. 그는 거기서 그의 예술적 제재들을 발견한다. 그런데 동물성가 다분한 유목주의를 표방하는 예술가가 발견한 것은 뜻밖에도 식물성이 다분한 형상들이다.

나점수_표면의 깊이 識性向 식성향_철, 나무, 실리콘, 유리, 합성수지 등_가변설치

2. 식물 ● 유목민 나점수가 황량한 오지에서 찾은 것은 그곳에서 생명의 의지를 관철시키고 있는 식물들이다. 대개 선인장과 같이 혹독한 자연조건 속에 진화하여 생존을 위한 독특한 형태를 갖춘 것들이다. 나점수는 때론 힘든 여정 속에서 체험했던 감동에 대해서 말하곤 했다. 그에게 감동을 준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식물들이었다. 사막의 끝없는 지평선 속에서, 그러니까 무한의 풍경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단순한 수직적 기립으로 확인시켜 주는 이런 식물들을 만났을 때, 작가는 생명과 자연이 투쟁하는 힘에 경외심을 느꼈다고 한다. ● 특정한 장소에 고착된 식물과 유목의 정서가 만나는 우연이 바로 작품의 단초가 되었다. 식물의 기다림과 작가의 찾아감이 교차되는 순간이 작품들 속에서 형상언어로 구체화되는 것이다. 수직과 수평으로 균형을 잡고 있는 전시 공간 속에 서 있는 식물형상들은 그가 만났던 풍경을 대리하며 서 있다. 그 수직성은 식물이 자라남(植)에 대한 형상적 은유이면서도 현장성을 강조한다. 한자를 해자하면 자라남은 곧 나무(木)가 서 있음(直)을 의미하는데, 바로 이러한 사물에 대한 동양적 사고로서 식물을 이해한다고 할 수 있겠다. 이번 전시는 지난 해 김종영미술관에서 전시 제목으로 사용했던 '식물적 사유-식(植), 적(蹟), 생(生), 명(明)'이 보여주었던 사유의 연장으로서 식물에 대한 사유를 더욱 진행시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식물에서 앎(識)으로의 변화도 주목되는데, 이것은 단순히 사생이나 재현을 넘어서, 의식적으로 보다 더 사물의 본질에 접근하려는 작가의 의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단순히 살아있는 식물에 대한 경외감이 아니라 그것이 존재하는 이유 그리고 그 존재성이 지향하는 바를 형상화하고 싶은 욕망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수직성은 단순히 서 있음(존재함)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과 주체 사이를 앎이라는 관계항으로 묶는 연결고리라고 할 수 있겠고, 더 나아가 경외를 불러일으키는 원리로서도 의미가 있다.

나점수_표면의 깊이 識性向 식성향_철, 나무, 실리콘, 유리, 합성수지 등_가변설치

또한 수평으로 누워 있는 몇몇의 작품들은 여행에서 체험했던 수평선과 풍경에 대한 소박한 은유로 이해될 수 있다. 서 있음이 생명의 방향성을 강조한다면, 누워 있음은 전자를 위한 준비이자 준거로서 의미를 보유하게 된다. 누워 있는 것들을 잘 보면, 식물의 초기단계를 연상시키는, 즉 씨앗과 같은 형상이다. 혹은 길게 누운 넝쿨과 같은 모습을 띠기도 한다. 모든 생명체가 하늘과 땅 - 여기서는 수직과 수평이라는 기호로 대리되고 있다 - 사이에서 삶을 유지하고 향상시키는 본래적인 의무에 충실하고 있다는 점을 두 개념의 적절한 형상화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 그리고 작품들의 결이 보여주는 표면 질감이 또한 식물형상에 의존하여 작가가 보여주려는 삶의 근원적인 힘이라고 하겠다. 식물의 잎 혹은 줄기 아니면 더 나아가 식물의 몸이 드러내는 칼칼한 표피는 생명이 환경 속에 버텨온 생리와 더불어 그것이 형성하는 감정적 층위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감정은 오로지 형태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작가가 사용하는 다른 조형원리인 색이 그것을 뒷받침한다. 흙이 지닌 자연색감이 주조를 이루면서, 형상의 기본원리와 함께 흑과 백이라는 색의 기본원리도 그대로 작품에 적용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세 가지 기본 색이 작가가 만난 자연의 궁극적인 이미지로 귀결되고 있다. 그의 유목주의는 바로 이러한 궁극적 자연미(=숭고미)를 찾아나가는 여행이었고, 거기서 그는 감각기관을 통해 합일될 자연의 형상적 뿌리를 발굴해 이곳으로 가져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점수_표면의 깊이 識性向 식성향_철, 나무, 실리콘, 유리, 합성수지 등_가변설치

3. 숭고(미)의 발견 ● 18세기의 미학자들에게 숭고는 인간의 감각의 한계를 넘는 최고의 미로서 설정되었다. 숭고는 단순히 시각적 쾌를 넘어서는 궁극적인 미감이었다. 여기에는 인간의 원초적인 자연관을 엿보게 하는 감성이 있는데, 그것은 공포와 경외이다. 무한이나 절대크기와 같은 것들이 바로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요소들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미술의 거장인 버넷 뉴먼은 거대한 색 면으로 숭고미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즉 단순하지만, 인간이 지닌 감각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으로 숭고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 에드문드 버크(Edmund Burke)가 설정한 숭고에 다다르기 위한 기초적인 조형원리에는 수직과 수평이 있다. 이 단순한 원리들이 인간의 감각을 넘어서는 차원에 이르면, 공포심과 경외감을 발휘하게 된다는 것이다. 나점수는 이러한 점을 간파하고 자신의 작품에 적극적으로 이 원리들을 수용한다. 또한 이 서양의 미적 사유에만 기대는 것이 아니라, 동양의 천지인(天地人)이 지니는 우주관과 여기서 도출될 수 있는 절대 미감을 적절하고 조화롭게 혼용할 줄도 안다. 형상의 단순한 기호화는 몸으로 체득했던 자연의 숭고미를 적절하게 이전시켜놓는다. 작가는 자연 속에서 이러한 코드들을 발견할 뿐만 아니라, 이것이 얼마나 단순한 기호로 치환될 수 있는지도 실험해 보고 있다. 그래서 그의 손이 다듬어 놓은 형상들은 자연물의 재현이면서 동시에 원초적인 텍스트로 환원된 풍경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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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텍스트로 환원하는 풍경 ● 작가가 제안하는 전시제목이나 주제는 그가 체득한 풍경들을 텍스트로 환원한 것이라는 것을 암시해준다. 물론 필자가 말하는 텍스트는 문자화된 기호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작가가 펼쳐놓은 전시 자체가 바로 시각화된 텍스트라는 것이다. 작가는 "표면의 깊이(식(識), 성(性), 향(向))"이라고 전시를 명명했다. 작가의 식물적 형태들이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코드처럼 텍스트 전환한 아이콘적인 형태뿐만 아니라 형태를 지지하고 수식하는 다양한 부호들도 포함되어있다. 수식하는 요소 중에 하나가 표면이다. 조각은 원래 물질과의 물리적 그리고 감각적 교감을 전제로 하지만, 작가는 특별히 촉각적 부분을 강조하며, 이것으로부터 의미의 심도를 증가시키려고 한다. 식물을 표방하는 작품들의 표면은 유목민의 환경이나 정서를 반영하는 듯 거칠다. 그대로의 삶의 유형이 형성한 거칠고 투박한 표면 속에서 삶의 인고(忍苦)와 그로인해 말미암은 경외심을 그대로 전시장으로 이동시켜온 것이라 할 수 있다. ●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낀 감동을 나무나 철 그리고 흙 등으로 체화, 조형하는 것은 시각적 텍스트로 전이하는 예술적 과정이고, 관객은 바로 이 텍스트를 통해서 유목민의 시선과 만나고, 그가 느끼고 경외심으로 수용했던 풍경의 숭고미를 얻어갈 수 있을 것이다. ■ 김정락

Vol.20100306f | 나점수展 / JEOMSOO NA / 羅点洙 / sculpture.installation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