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ey

송선영展 / SONGSUNYOUNG / 宋善永 / painting   2010_0226 ▶ 2010_0307 / 월요일 휴관

송선영_Journey_캔버스에 유채_116.7×91cm_2009

초대일시_2010_0226_금요일_05:00pm

2009-2010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아티스트 릴레이 프로젝트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CHEOUNGJU ART STUDIO 충북 청주시 상당구 용암로 55 Tel. +82.43.200.6135~7 www.cjartstudio.com

삶의 길 위에서 펼치는 조형의지 ● 어떤 화가는 작품 속에서 회화 자체의 근원적인 문제와 씨름한 흔적을 남겨 놓는다. 그것이 조형적 모험 일 수도 있겠고, 새로운 회화로 가는 길 찾기 일 수도 있다. 또 다른 하나는 그런 거창한 화두보다도 자신의 문제를 보다 정직하게 회화적 어법에 기대어 드러내는 것을 목표로 삼기도 한다. 어느 길을 택하던지 중요한 것은 절실함이고 진정성이다. 회화 자체를 목적으로 해도, 우주를 대상으로 하던지 또는 화가 자신을 대상으로 하던지 똑 같다. 이 작가, 송선영의 경우는 자신의 내면에 대한 성찰에 기대어 자신의 예술을 출발시킨다. 그녀가 살아 온 삶의 무게가 작품의 주제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정직하고 믿음직스럽다. 작가노트에 언급 된 심정은 이렇다. "그리 길지 않은 생을 살아왔지만 무엇이 잘 사는 것인지 물음에서 답을 모르고 헤매다가 늘 가던 길인데 길 위에서 길을 잃을 때가 있다." 왜 그녀만 그렇겠는가? 인생이 마치 실타래 얽혀있듯 얽혀있고 술에 취해 비틀거리듯 가는 것이 인생행로 아니겠는가? 이 길로 혹은 저 길로 간다면, 당신이 원하는 곳으로 고속도로 달리 듯 갈 수 있다고 많은 사람이 말했지만, 또한 그 해결책이 각양각색이니 어느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어야 할지 모르겠다. 예수, 석가, 공자, 노자 같은 성현들도 통일 된 의견이 없으니 우리 같은 범인들이야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송선영_Journey_캔버스에 유채_116.7×91cm×3_2009
송선영_Journey_캔버스에 유채_91×60.6cm, 91×65.2cm_2009

송선영 예술은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이 겪는 인생에 대한 이 공통적 어지럼을 회화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최근 작업의 목표이다. 텅 빈 캔버스를 앞에 두고 삶에 대한 그녀의 고백을 어떻게 이미지화 할 것인지 망설이고 서성거리는 것이다. 최근에 유행하고 있는 극사실주의 미술 같은 설명적인 부분을 배제함으로 이 일을 시작한다. 특정 대상의 일루전을 세밀하게 그려가는 형식주의적 미술을 통해 미시적인 삶의 디테일을 드러냄으로 전체를 아우르려는 환유적 이미지 보다는 추상적 형태를 기반으로 한 상징적 의미부여에 방점을 찍어 둔다. ● 그렇다면 왜 송선영은 눈에 보이는 사물 자체를 그리지 않고, 추상의 방법을 써야 하는 것일까? 그건 이렇게 설명 할 수 있다. 태어나는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은 누구에게나 한 가지는 공평하고 유일한 축복이 있다. 모두가 죽는다는 것이다. 철학자 쇼펜하워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 인생은 모두 '죽음에 이르는 병'을 앓고 있는 것이다. 결국 삶이란 죽음에 이르는 길 위를 스캔하며 지나가는 것이다. 모든 세상의 예술이 이 길 위에서 만나고 느끼고 좌절하고 사랑하고 고뇌하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면 또 무엇이겠는가?

송선영_Journey_캔버스에 유채_130.3×162cm_2010
송선영_Journey_캔버스에 유채_162×130.3cm×2_2010

그녀는 이렇듯 잡히지 않는 삶의 도정을 '길'이라고 함축적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볼 수 없는 길이다. 그것을 그리자니 상상 속의 길이어야 할 것이다. 까닭에 지시적 형태의 길보다는 추상적 형태의 길을 택한 것이다. 이 점은 무척 중요하다. 그림이 실제의 투영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화가의 독자적인 실제성으로 제시되기 때문이다. 실제 눈앞의 세계를 떠나(이것은 이데아의 가짜일까?) 실제(이데아)에 도달하려는 의지. 그러기에 그녀가 삶으로부터 느끼는 다양한 색깔들이 구체적 형태들로 제시하기에는 실제 세계를 그대로 그리기에는 간극이 너무 크고, 어느 한 쪽으로 편중된 것이기에, 부적절하게 생각 될 수도 있다. 이것이 작가로 하여금 필연적으로 추상의 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따라서 송선영의 그림은 시각화 된 구성적 성격을 갖게 되는 것이다. 기하학적 추상화면은 엄격하게 계산 된 색면(色面)과 직선과 곡선의 대비를 통해서 삶에 대한 형이상학적 사유와 회화적 성취를 동시에 아우르고 싶은 욕심이 자연 드러나게 계획된다. ● 그림을 보자. 마치 스트라이프 벽지 문양과 같은 색면들은 화면 공간을 결정짓는 주된 모티브로 드러난다. 그것들은 화면 밖으로부터 화면의 프레임을 침범하여 뜬금없이 나타나서 다시 화면 밖으로 유유히 사라진다. 이 점은 이 작가에게서 대단히 특이한 점이기도 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회화는 대체로 한 화폭이 하나의 소우주를 이루는 자율적 공간이고 완결 된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송선영의 작품은 그렇지가 않다. 즉 화면 공간이 가지고 있는 완결성이 느껴지지 않는 미완의 공간으로 남아있다. 여전이 그림은 화면 밖의 무엇과 연결되어 있고, 밖의 형편에 따라 화면 공간이 유동적으로 변모 할 수 잠재적 가능성을 남겨두고 있는 것이다. 이 시리즈의 여러 작품들은 상호 비교해보면 이러한 가변적 유동성은 더욱 분명해진다. 마치 네비게이터를 이동하여 옆의 다른 상황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교차로를 네비게이터가 잡은 느낌 같지 않은가? 배경을 이루는 회색 색면은 마치 탁한 강물의 색 같고 좌우로 촘촘한 기하학적 문양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화면은 언뜻 아파트 단지의 도형화 된 이미지 같다. 그것들의 획일적인 문양들이 반복적으로 나타나서, 왠지 답답하고 일상적이다. 획일적 배경과 차갑게 느껴지는 스트라이프 문양으로 처리 된 직선 형태의 색면들은 자그마한 마치 아메바 같은 원형체를 만난 이후부터 생기가 돈다. 그것들은 이웃의 또 다른 원형체들과 손을 잡고 있는 듯, 자유로운 곡선들과 연결되어 화면 위에서 부유하고 있는 것이다. ● 사실 직선으로 구성된 건조하기만 한 그림에 원형체가 등장함으로 화면이 생동감 있게 살아나는 것은 그녀의 속내를 은근히 드러내는 조형적 장치인 것이다. 마치 여름 땡볕에 기진한 식물들이 한 줄기 소낙비에 부르르 몸을 털고 생기를 찾듯, 답답한 현실에 희망의 원들은 서로 서로 연결되어, 버릴 수 없는 꿈, 아니 버려서는 안 되는 꿈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두 가지의 감수성, 첫째는 세계 혹은 삶에 대한 것이고 둘째는 그것을 회화적 공간으로 환원 할 수 있는 감수성을 여하히 하나로 삼투 시킬 수 있는 것이냐가 송선영 작업의 추구해나가야 할 방향으로 자리 잡는 것이다. 특히 그녀가 화가이기에 두 번째 감수성은 대단히 중요하다. 조형적 모험이 어떻게 진행되는 것이냐에 따라서 그녀의 재능이 확실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송선영_Journey_캔버스에 유채_60.6×72.7cm×2_2009
송선영_Journey_캔버스에 유채_45.5×53cm×2_2009

일단 이번 작업에서의 조형적 레퍼토리는 확정 되어 있다. 즉 '길- 삶의 길에서, 꾸는 꿈'이라고나 할까. 이것을 가급적 최소한의 색체나 조형으로 마무리 지으려 하는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마치 네비게이터가 공간을 이동하여 어떤 상황들을 보여주는 것 같이, 그녀의 그림 또한 유사한 이미지가 같은 리듬을 타고 반복적으로 드러날 것으로 예견된다. ● 왜 하나의 시리즈를 추구해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 안에서 모티브는 어떻게 드러나야 할 것이며, 유사 이미지의 반복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나는 그것을 아마도 작가의 생각, 회화에 대한 입장 등을 보다 분명하게 함으로 하나의 방향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의지의 산물이라고 믿는다. 아마 그녀 또한 기하학적 패턴을 바탕에 깔고 자유롭게 형상화 할 것이고, 그 수많은 변주 속에서 작가는 스스로 던진 문제와 대결하고 해결하려는 일관 된 정신을 작업 과정에서 보여주게 될 것이다. ● 화면 밖의 것을 견인하여 화면 속에서 녹이고 재구성하여 하나의 완결 된 창조적 세계를 보여 주고자 하는 송선영의 작업은 결국 세계를 이해하고 싶은 꿈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소우주를 갖고 싶은 작가의 소박한 꿈이 막막한 흰 캔버스의 여백 위에 간단한 도형들과 색들을 입혀가는 것이다. 이 같은 절제 된 조형적 요소들은 서로 삼투하고 서로 반발하면서 한 공간 속에서 변증법적 긴장을 조성함으로 그녀의 꿈에 접근하고 있다. ● 형태에 대한 예민한 촉수, 투명한 서정성, 명징한 조형적 의지, 아마 그것들은 미적 도형들과 대칭과 비대칭이, 직선과 곡선이 부딪치고 조화를 이루면서 얻어 지는 세계에 대한 이해이다. 그녀의 구성적 추상이 단순히 화면 위에서 미적 조형적 세계에 머물지 않고 작가가 꿈꾸는 세계로 가는 통로로 접근하는 방법으로서 기능하고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이 작품들을 보고 그녀가 향후 새로운 세계를 찾아가는 여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에 나는 큰 신뢰감을 보낼 수 있다. ■ 최건수

Vol.20100227c | 송선영展 / SONGSUNYOUNG / 宋善永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