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풀 봄을 노래하다

김은곤展 / KIMEONGON / 金恩坤 / painting   2010_0225 ▶ 2010_0307

김은곤_6월의 풀_캔버스에 유채_162×97cm_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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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10_0225_목요일_03: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봉하마을회관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Tel. +82.11.568.2001

마을공동체와 동행하는 성찰의 예술 ● 김은곤은 바닥에 낮게 깔린 풀꽃들을 하나하나 불러 세운다. 그는 개망초와 노랑어리연과 자운영을 자상한 목소리로 부른다. 낮게 깔린 풀꽃들을 호명하는 김은곤의 마음속에는 생명의 푸르름에 관한 존경이 가득 차 있다. 그는 특정한 풀 한 두 포기를 도드라지게 그려내기보다는 바닥에 밀착한 시선 전체에 들어오는 수많은 풀꽃들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그려냈다.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소중한 생명의 가치에 대한 경이로움 그 자체이다. 그의 생명 예찬은 녹색을 상실한 마른 풀에까지 닿아있다. 그의 그림 속에는 삶과 죽음, 처음과 끝이 함께 들어있다. 그는 낮게 깔린 자연의 모습에서 생명을 가치를 재발견한다. 생멸을 거듭하는 생태의 순환을 포착한 그의 그림들에는 풀꽃 하나하나에 고루 눈길을 주려는 그 평등한 마음이 담겨있다. 장쾌한 화면의 대관산수 방식을 채택하지 않은 김은곤은 한없이 낮은 마음으로 대자연의 일부분을 차분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 '마른 풀 봄을 노래하다' 연작들은 갈색 마른 잎들 사이로 돋아나는 새싹의 경이로움을 예찬한다. 물속에 잠긴 마른 갈대의 모습에서 한해의 푸르름을 뒤로한 계절의 흔적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가을대추와 구절초 꽃잎들을 나무판에 그려넣어 시간의 순리에 따라 결실을 내놓는 '봉하의 가을'을 이야기한다. 화포천의 습지에 스러진 나무에서 뻗어나는 가지들로 생멸의 이치 속에 담긴 대자연의 생명력을 노래하기도 한다. '봉하의 봄'은 갈아엎은 논을 그린 풍경화로서 형상 묘사보다는 장면 포착에 중점을 둔 그림이다. 밀짚모자와 자전거를 통해서 지난해의 아픔을 아름다운 기억으로 되살리는 '그해 여름'도 있다. 스스로는 우뚝 설 수 없는 풀이 사물을 타고 올라 덩어리를 이루고 있는 '풀기둥'은 생명현상에 빗대어 삶의 이치를 포착하려는 그의 은유적 서사를 대변한다.

김은곤_마른 풀 봄을 노래하다-갈대3_캔버스에 유채_55×33cm_2009
김은곤_봉하의 가을1_캔버스에 유채_32×122cm_2009
김은곤_다시 봄-일어서다_선버들_89×116cm_2010

회화는 프레임 속의 언어이다. 따라서 프레임의 비율은 그림의 느낌을 좌우한다. 그는 정해진 규격의 캔버스 대신에 가로나 세로로 길게 뻗은 장방형의 캔버스를 주로 썼다. 풍경을 담는 감각을 고정된 비율로 일반화하기보다는 가장 적절하게 뜻을 담을 수 있는 비례를 찾기 위함이다. 위아래로 또는 좌우로 길쭉한 프레임은 원근법의 시선을 거의 배제한 근작들의 구도와도 관련이 있다. 동일한 대상의 반복으로 이뤄진 화면에 모종의 변화를 준다는 측면에서도 적절한 선택이었다. 풀꽃 그림의 전면성은 그가 근작에서 크게 관심을 두고 있는 회화 작업의 수행성과 연관이 있다. 화면 가득 풀꽃을 정밀하게 묘사하는 일은 긴 시간의 집중적인 노동을 요하는 일이어서 카메라의 기술미학과는 달리 인체의 회화술이 갖고 있는 수행 과정의 감성을 잘 드러내기 때문이다. ● 큰 틀에서 보자면 김은곤은 봉하마을을 다루었다. 봉하마을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오리쌀농사와 화포천을 필두로 생태친화적인 공동체 마을을 지향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봄 봉하마을에 입주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생태마을을 표방하며 유기농 실험과 생태하천 가꾸기 등을 실천하고 있던 당시의 봉하마을은 김은곤에게 생태자연의 건강한 속살을 찾아 새로운 미래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는 좋은 서식처였던 셈이다. 그러나 그의 지난 1년은 계획대로 순탄하게 이어지지 못했다. 그 마을에 돌아와 생태적 삶을 꿈꾸며 살고 있던 전직 대통령의 서거는 그동안 비교적 자신의 보폭대로 삶을 꾸려온 화가가 감당하기에 버거운 것이었다. 짧지 않은 번민의 시간을 보낸 후, 그는 다시 붓을 들고 봉하마을의 사계절을 화폭에 담았다.

김은곤_봉하의 봄_캔버스에 유채_73×50cm_2009

김은곤의 그림은 생명의 가치를 실천하는 성찰의 예술이다. 그가 애초에 이 마을에 입주한 것은 화포천의 생태를 그려내기 위함이었다. 화포천은 봉하마을 앞을 흐르는 습지하천이다. 낙동강 지류로 흘러들며 대지를 적시는 화포천은 유속이 매우 느려지는 봉하마을 앞에서 풍부한 생명의 기운을 머금은 습지를 이루고 있다. 김은곤은 그곳의 물과 풀꽃과 나무를 그려냈다. 그가 화면에 담은 것은 격동에 휩싸인 역사적 아픔의 장소로서의 봉하마을이 아니라 생명의 가치를 품고 있는 땅과 물의 이야기이다. 마을의 풀꽃과 물가 풍경을 통해서 생태자연의 낮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는 그의 눈길과 손길에는 생태공동체의 가치지향을 공유하고 하는 예술가의 삶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김은곤_그해 여름 2_캔버스에 유채_60×122cm_2009
김은곤_풀기둥2_캔버스에 유채_122×90cm_2009

김은곤의 풀꽃 그림은 산하 어디에나 널려있는 식물 일반을 그린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가 그린 것은 그냥 식물이 아니라 봉하의 풀꽃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김은곤이 그린 것은 일반적이 생명 예찬으로서의 풀꽃이 아니라 봉하마을의 생태적 가치를 담은 풀꽃이다. 그것은 그냥 풀꽃 그림으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사건과 사회적인 의제를 집약한 봉하마을의 상징가치를 예술언어로 풀어낸 성찰적인 언어이다. 따라서 김은곤의 풀꽃 그림은 생명의 메시지라는 일반성으로부터 생태공동체를 지향하는 봉하마을의 특수성을 포착해내고 그것을 다시 생명을 성찰하는 예술언어의 보편적 가치로 재생산함으로써 해석의 지평을 넓힌다. 그것은 마을공동체와 동행하는 예술가의 실천적인 삶으로부터 나오는 문화생산으로서의 예술이다. ● 예술작품은 예술가의 삶의 궤적으로부터 나온다. 예술가가 그의 처소를 어디에 두느냐 하는 문제는 그의 작업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잣대이다. 봉하마을에 입주한 이래 한 해를 지낸 김은곤은 예술가의 삶의 태도와 방식이 예술작품 생산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잘 보여준다. 생태마을의 가치에 공감하는 예술가가 지난 1년간 마을의 들판과 풀섶에서 생태적 가치를 예술적 상상력으로 포착했다는 점은 그림이나 전시회라는 결과보다도 더 소중한 미래의 씨앗을 품고 있다. 마을에 머물며 마을을 그리고 그 마을에서 전시회를 여는 예술가의 삶이 생태공동체의 미래에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볼 일이다. 동시대와 호흡하고 구성원들과 대화하며 예술과 사회의 접점을 찾아나서는 아름다운 동행이야말로 예술가를 공동체의 건강한 구성으로서의 재발견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대목이기 때문이다. ■ 김준기

Vol.20100225a | 김은곤展 / KIMEONGON / 金恩坤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