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ow of life

안병철展 / AHNBYUNGCHUL / 安炳澈 / sculpture   2010_0219 ▶ 2010_0302

안병철展_갤러리 그림손_2010

초대일시_2010_0219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30am~06:30pm / 일요일_12:00pm~06:30pm

갤러리 그림손_GALLERY GRIMSON 서울 종로구 경운동 64-17번지 Tel. +82.2.733.1045 www.grimson.co.kr

이번 작업에서 나는 생명의 근원이 되는 씨앗의 형태를 단순하고 순수한 형태로 환원하여 조형화 하였다. 씨앗은 자연의 시작이며 생명의 시작, 삶 속에 움직이기 시작하는 희망의 원천이다. 금속표면을 극도의 광택으로 처리하여 드러난 표면에는 주변의 모든 사물들이 마치 흡수된 것처럼 투영되어 있다. 씨앗의 받아들임, 그 변용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 안병철

안병철_Life-Flight 생명-비상_스테인레스 스틸_161×218×40cm_2009

생명의 파토스(pathos) ● 안병철이 지난 20여 년간 작업의 화두로 삼아 온 주제는 '생명'이다. 그러기에 이번 전시 제목을 『Flow of Life(생명의 흐름)』이라 정한 것도 당연한 듯 보인다. 오랜 시간 동안 작가가 '생명' 문제에 깊이 천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실상 '생명'의 문제를 다룬 작가는 많은 편이기에 주제 그 자체만을 본다면 그리 새로울 것도 없다. 그렇지만 안병철의 '생명' 주제에는 독특한 점이 엿보인다. 그것은 곧 '생명' 그 자체보다는 '생명'을 둘러싼 현상들과 그 반응을 조형적으로 표현하는 데 그가 관심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작품 제목에서도 읽혀진다. 안병철은 단지 '생명'이란 제목 대신에 항상 붙임표(-)를 사용해서 자신이 생각했던 말들을 붙여 제목을 만든다. 예를 들면 「생명-울림」, 「생명-율」, 「생명-영」, 「생명-비상」, 「생명-기원」 등과 같은 식이다. 이 글에서 나는 '생명'에 붙임표로 연결된 말들이 작가의 조형언어에 내재한 고유한 소리이며, 이를 '생명'에서 환기되는 '파토스(pathos)'들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 그런데 안병철의 작품에서 이러한 파토스를 직접 읽어내기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작품의 형식적 특징만을 감안한다면 오히려 '에토스(ethos')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실상 그의 작품들은 단단하고 곧은 조형성을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조형성은 초기의 「문」 연작에서부터 엘보를 활용한 동적(動的) 구성 및 수직의 적층(積層) 구성 그리고 이후 씨앗의 형태 구성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유지되어 왔다. 그러기에 비례, 조화, 균형, 대칭 등에 대한 그의 작업 태도에는 어떤 단호함마저도 보인다. 그렇지만 그 이면에 내재된 '파토스'가 간과된다면, 절제된 조형미도 한낱 기계적인 질서의 조합에 불과할 것이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씨앗 형태의 작품들은 에토스적 조형성과 여기에 깃든 생명의 파토스를 잘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안병철_Life-Reflection 생명-영(影)_스테인레스 스틸, 마천석_252×213×39cm_2010

지난 4년간 안병철은 스테인리스 스틸을 사용하여 씨앗의 형태를 탐구해 왔다. 그렇다고 해서 이를 두고 작가의 관심이 씨앗의 형태를 확대하고, 이를 조형적으로 표현하는 데 있다고 단언해서는 곤란하다. 왜냐하면 작품에는 씨앗의 형태 그 자체보다는 그것으로 인해 환기되는 파토스적 반응이 더욱 강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파토스적 반응과 관련해서 우선 눈여겨 볼 것은 작품의 표면이다. 「생명-영」 연작과 「생명-비상」의 표면은 고광택으로 처리되어 있어, 파토스적 반응을 효과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생명을 은유적으로 매개하는 씨앗의 표면에는 주위의 사물들이 마치 흡수되듯이 반영되어 있다. 그런데 씨앗의 표면에 투영된 상들은 실제 사물의 모습과는 다르다. 찌그러져 있거나 뒤틀려 있는 상이다. 이 상들은 단지 현실의 가짜 그림자가 아니라 현실의 또 다른 모습이다. 아니 어쩌면 본래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씨앗의 표면에 나타나는 변형되고 왜곡된 상은 현실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파토스'를 현시한다.

안병철_Life-Reflection 생명-영(影)_스테인레스 스틸_127×47×43cm_2010

안병철의 작품 형식 그 자체 속에서 '생명의 파토스'를 직관적으로 읽어내기란 쉽지 않다. 작품에서 파토스는 형식 자체가 아니라 그 형식이 빚어내는 조형적 긴장 속에서 생겨나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 긴장 관계를 잠시 생각해 보자. 생명의 기호인 씨앗을 차가운 금속 재료로 재현하는 것은 모순적인 작업처럼 보인다. 싹을 틔우면서 소멸하는 씨앗의 특성을 금속으로 표현하는 게 과연 적절한가? 충분히 적절해 보인다. 씨앗은 생성과 소멸이라는 이중성 속에서 기능한다. 작가는 바로 이 씨앗의 이중성을 절묘하게 조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한편으로 씨앗은 생명의 내재적 힘, 곧 잠재성(potentia)을 담고 있다. 금속 씨앗은 바로 이 힘에 대한 조형적 파토스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 씨앗은 생성을 위해 스스로 썩어가면서 사라진다. 「생명-영」과 「생명-비상」은 단단하고 곧은 형상이긴 하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마치 조용히 사라지는 듯한 형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일종의 애상적 파토스를 느낄 수 있다고나 할까? 실로 묘한 느낌을 받는다. 씨앗의 생명성과 금속의 차가움은 서로 대비되면서 상호 늘 교차되어 역설적 상황을 연출한다. 이로서 파토스는 더욱 강화된다.

안병철_Life-Prayer 생명-기원_합성수지_126×65×67cm_2010

지금까지 주로 「생명-영」 연작과 「생명-비상」을 중심으로 안병철의 작업세계가 보여주는 '생명의 파토스'를 설명해 왔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생명-기원」 연작도 동시에 선보이고 있다. 이 연작은 다른 작품들에 결여된 측면성과 볼륨이 특히 강조되어 있다. 「생명-기원」 연작은 재료나 그 형식적인 면에서 실험적이어서, 앞으로 그의 조형적 관심사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서 「생명-기원」 연작은 주변부에 위치해 있는 듯 하지만 전체 전시 공간에서 불러일으키는 조형적 환기성은 적지 않은 편이다. 이 연작이 어쩌면 작가가 추구해 온 '생명의 파토스'에 또 다른 극적인 전환점을 가져올 지도 모를 일이다.

안병철_Life-Reflection 생명-영(影)_스테인레스 스틸, 마천석_117×118×25cm_2008

전시에 앞서 작업과 작품에 관해 작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전시될 작품들도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물론 이 글을 쓰기 전에 그의 작품에 관련된 몇몇 글들도 읽어보았다. 그러나 그의 고유한 조형언어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물음이 머리에서 계속 맴돌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작품의 조형적 형태는 매우 단단하고 곧은 데 어째서 자꾸 서정적인 느낌을 받는 걸까? 두드러진 형식적 특징으로 보자면 분명 추상적인 데 왜 자꾸 표현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걸까? 이 물음은 실상 그의 조형언어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초를 제공하는 문제이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은 감상자 각자에게 달려 있을 것이다. 나는 이 글에서 물음에 대한 하나의 답으로 '생명의 파토스'를 제시하였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에서 이러한 파토스를 읽어내자, 아득하게만 생각되던 작품들이 아주 가깝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안병철展_갤러리 그림손_2010

이번 전시가 열리는 그림손 갤러리 전시장에는 「생명-영」, 「생명-비상」 그리고 「생명-기원」 작품들이 서로 조응하면서 강한 파토스를 드러낸다. 작업실에서 작품을 볼 때와는 또 다른 파토스를 느낀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전시 공간 전체는 작품들이 뿜어내는 '생명의 파토스'로 가득 차 흥분을 자아낼 정도라고나 할까? 실상 안병철의 작품들은 홀로 있을 때보다는 모여 있을 때 더욱 강한 조형적 심상을 감상자에게 던져준다. 작품 각자가 갖고 있는 '파토스'가 조형적 관계성 속에서 더욱 강화되었기 때문이리라. 물론 과연 이러한 '생명의 파토스'를 감상자가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을 지는 또 다른 물음으로 남아 있다. 작가의 향후 작업에서 이 물음에 대한 하나의 답을 기대해도 좋을까? ■ 임성훈

Vol.20100220g | 안병철展 / AHNBYUNGCHUL / 安炳澈 / sculpture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