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10_0217_수요일_06:00pm
후원 / 서울특별시_한국문화예술위원회_서울문화재단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3층 제1특별관 Tel. +82.2.736.1020 www.insaartcenter.com
Remember …( )… ● 1990년대 후반 처음 작업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함창현의 주제는 항상 '기억'이었다. 몇몇 예외가 있긴 하지만 그의 작품 제목은 대부분 「Remember」이거나 「Remember of...」다. 그것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remember'는 목적어를 필요로 하는 타동사다. 즉 우리는 이 단어를 '~를 기억하다'로 번역한다. 그런데 함창현의 작품 제목에는 이 '~를'이 빠져있다. 여기서 'remember'는 목적어가 없는 타동사로 제시되어 있다는 것이다. 목적어가 없는 타동사는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함창현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는 이 빈자리, 공백을 무엇인가로 채워야 했다. 그러면 그 빈자리, 공백은 무엇으로 채워졌을까? 처음에 함창현은 그 자리를 '가방의 이미지'로 채웠다. 즉 1990년대 후반 그의 초기 작업에서 기억(들)은 '가방' 주변에 모여든다. 그 가방은 함창현이 국민학생 시절에 메고 다니던 닳고 닳은 사각의 '황금박쥐 가방'이다. 가방의 '닳고 낡은 모양새'와 '사각 형태'는 함창현 초기 작품 세계를 표상하는 유력한 양과 질이다. 여기서 가장 안정된 형태 가운데 하나인 '사각형'은 충만해 보인다. 그러나 이 시기 함창현의 작업에서 '황금박쥐 가방'은 채워져 부풀어 오른 가방이 아니라 텅 빈 쪼그라든(또는 움푹 들어간) 가방이다. 그러니 여기서 가방은 '결여'의 다른 이름이다. 가방은 기억을 감싸지만 정작 그렇게 감싸 안은 중심에는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거기에는 보이지 않고 가시화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잔뜩 담겨있다(고 그는 믿었다). 이 무렵 작업노트의 한 구절.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무수히 많은 가방들이 나의 희노애락을 함께하며 항상 나의 곁에서 나의 인생(추억, 기억)을 담는 그릇이 된다. ● 초기 작업에서 함창현은 가방을 그렸다. 그러나 그 '가방'은 remember의 목적어가 아니다. 여전히 빈자리는 채워지지 못했고 공백은 메워지지 않았다. 즉 이 시기 그는 '기억'을 그리기 보다는 기억을 담는 가방-그릇을 그렸다. 그렇게 화가는 기억의 주변을 배회했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 이른바 '추상이미지의 시기'로 들어서면 사정이 달라진다. 이 시기 그는 기억의 외피, 또는 그릇이 아니라 그 안으로 들어가 기억(들)을 직관하고 형상화하고자 했다. 이제 그는 예전에는 단순히 (가방의) 사실적 재현 수단으로만 여겼던 판화 재료나 기법의 고유한 물성과 특성들에 주목하게 된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자각 때문이다. 즉 붓고, 흘리고, 닦아내고, 지우고 부식시키는 동판화 제작 과정과 그 결과로 얻은 자국과 얼룩, 더 나아가 형상들의 존재 양태-갈색 톤의 빛바랜 화면-가 기억의 생성과정 내지는 존재양태와 놀랄 만큼 닮았다는 것. 이렇게 만들어진 아련하고 추상적인 화면은 그에게 솔직한 '경험적 독백'같은 것으로 여겨졌다. 그것은 내게 이를테면 '과거로의 시간 여행' 같은 낭만적 정감을 불러일으킨다. 주목을 요하는 것은 이 아련한 화면, 낭만적 여행에 항상 정형화된 사각의 검은 형상들이나 프레임이 수반된다는 점이다. 함창현에 따르면 그것들은 긍정적인 낭만적 여행에 상반되는 어떤 현실적인, 부정적인 계기를 나타낸다. 이 사각형은 앞서 언급한 사각 형태의 '가방'을 연상시킨다. 다만 그의 초기작에서 가방의 사각형태는 기억을 보듬는 안정된 그릇으로 보이는 반면 여기서 검은 사각형태는 자유로운 독백과 기억의 흐름을 제약하고 단속하는 장치로 보인다. 이전에 posi-(긍정)로 보였던 것이 여기서는 nega-(부정)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긍정-부정의 역전 또는 공존의 양태가 구체화되는 것이 세 번째 시기라 할 근래의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에서 채워진 것(+)과 비워진 것(-), 사물의 안과 밖, 기억의 외부와 내부는 그렇게 확연히 구분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양자는 하나의 화면에 공존하면서 상호작용한다. 여기에는 가방 밖에서 가방 자체를 관찰하던 화가(첫 번째 시기)와 가방 안에서 내부를 직관하던 화가(두 번째 시기)가 교차, 중첩, 종합되어 있다. 이러한 양태는 나로 하여금 동사 'remember'의 의미를 재고하게 한다. remember를 타동사로 규정하면서 나는 S+Vt+O로 구성되는 소위 3형식 형식을 자명한 것으로 전제하고 있었다. 주체-주어(Subject)와 대상-목적어(object)의 분리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분리 하에서 기억하는 나(현재)는 기억되는 대상(과거)으로부터 이탈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탈 상태에서 벗어나는 길은 지금 함창현처럼 안(주체)과 밖(대상)의 분리를 무효화하고 안팎을 뒤집어 밖으로 안을 내보이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지금 교련복의 검은 얼룩무늬들을 바라본다. 눈에 보이던 검은 얼룩들이 어느새 반전되어 흰색의 얼룩무늬들로 보인다. 먼 옛날 어머니가 싸 주신 도시락이 또한 그랬다. 밥과 반찬으로 가득 찼던 도시락은 집에 돌아올 때는 텅 비어 있었다. 숟가락과 젓가락이 흔들리며 나는 소리들이 그 빈 도시락의 공백을 매웠다. 아마도 그 소리들을 나는 다시는 듣지 못할 것이다. 그러한 인식은 나를 아프게 한다. 밀란 쿤데라를 따라 이렇게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너의 부재로 인한 고통을 견딜 수 없다" (『향수』, 국역판, 11쪽) ■ 홍지석
Vol.20100218a | 함창현展 / HAHMCHANGHYUN / 咸昌賢 / pr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