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차의 풍경 Parallax scape

최경화展 / CHOIKYUNGHWA / 崔卿華 / painting   2010_0203 ▶ 2010_0209

최경화_On the road_캔버스에 유채_436.5×227cm_2010

초대일시_2010_0203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30am~06:00pm

갤러리 라메르_GALLERY LAMER 서울 종로구 인사동 194번지 홍익빌딩 1층 Tel. +82.2.730.5454 www.gallerylamer.com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지나칠 때면 창 밖으로 보게되는 풍경으로부터 내가 문득 아득하게 멀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계속되는 이동으로 인하여 풍경은 앞으로 다가오면서 동시에 뒤로 빠져나간다. 나의 시선에 남는 도로변 풍경의 잔상들은 지각적 거리감과 정서적 거리감을 함께 불러일으킨다.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은 장소로부터 고립감을 느끼고 이동의 속도로 인하여 공간으로부터의 소외감을 느낀다. "아" 하고 말하는 순간 풍경은 이미 멀리 지나쳐가고 없다. 보여지는 것들이 자신으로부터 떨어져나가는 순간에는 또다시 다가오는 것들과 마주치는 순간이 뒤따른다. 이럴때면 시간과 거리의 이동으로부터 생겨나는 시각의 불연속적인 차이를 생각해보게 된다. ■ 최경화

최경화_In the distance 10_캔버스에 유채_194×259cm_2009
최경화_At a glance 04_캔버스에 유채_150×240cm_2009
최경화_In the distance 01_캔버스에 유채_91×117cm_2009

연착되는 몸으로 가까이 만나기 ● 스스로를 의식하지 않는 무구한 동물의 특성과 달라서 사람은 동물의 세계로 가지 못한다. 세계를 인식할 수 있다는 믿음은 다시금 차마 알 수 없다 로 바뀌었는데, 알 수 있는 것과 분명히 모르는 것을 점차 섬세하게 구분하게 되면서도 만질 수 없는 것을 그리워하고 열망하는 일은 우리의 한계와 자유의 가능성에 대해 알고 있는 존재로서 가능한 바람이다. 사유가 시작된 이래로 2천년 넘게, 굳건한 실체들로부터 인식의 원리를 규명하려했던 방식은 인간 주관의 성질에 대한 탐구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하여 인식 주관의 성질과 그 구성 원리에 법칙이 있어 존재와 경험들을 가능케 하는 것이 되었다. 그러나 이후로 실체와 인식의 가능성은 계속해서 더욱 급격히 모호해져, 세계도 인식 주관도 일목요연하고 명징한 법칙들을 적용하여 알 수는 없는 것이 되었다. 다시금 두려움 가운데 자신을 응시하는 인간은 좀처럼 분명하게 인식되지 않는 난해한 세계 속 절망으로부터 구출되어 생명을 얻기를 언제나처럼 바라고, 그리하여 지금 이 순간으로 집약되어 죽음과 맞닿은 생을 현재로서 온전히 경험코자 희원한다. 의식이 사라짐과 함께 끝장나는 이 세계에서 우리의 의식과 명료한 시선을 고수하는 것은 세계를 자기의 것으로서 온전히 인식하고 경험할 수 있을 때이다.

최경화_In the distance 03_캔버스에 유채_91×117cm_2009
최경화_In the distance 04_캔버스에 유채_97×102cm_2009

세잔의 말년 회화 「생트빅투아르 산」연작에는 새로운 풍경을 발견하고 이끌어내는 불안과 주저 확고함 새로운 기쁨들이 한 데 모여 있다. 내가 '본다' 혹은 '보고 계속해서 그린다'는 매개로써 얽힌 일정한 관계 속에서 눈과 손과 마음의 작용으로 세계가 경험된다. 그 작업들은 일리 있는 것이었는가? 시점이 다른 두 눈임을 감안하여 미세하고 분할적으로 관찰하는 것, 같은 자리에 앉아 몸을 기울이고 각도를 달리하며 바라보는 것, 그리고 순간적으로 기억과 잔상들을 재빨리 손으로 가져다가 더 빨리 물감으로 옮겨오는 것..... 기본적으로 사생의 사실성에는 수많은 허구들이 존재한다. 그것은 원근법과 마찬가지로 헛된 농담이었거나 죄다 거짓말이기도 하다. 세계와 일대일의 관계로 대면한 화가의 주저하는 시선과 불안이 진실의 단서로서 사실을 제공하고 우리로 하여금 그림에 대한 경험을 유발케 한다.

최경화_In the distance 08_캔버스에 유채_163×130cm_2009

최경화의 현재 작업을 이러한 맥락에서 바라보아도 좋을 것이다. '보는 일'이 처한 조바심과, 그 사태에로 어떻게도 비약해 들어갈 수 없는 무력함은 인간적인 방식으로써 불안을 집적해가도록 만든다. 시선은 계속해서 공간에 늦게 도착한다. 또 그러한 채로 계속해서 끌려간다. 공간의 속도 안에서 시선은 장소에 연착되고 연착되고 연착되어 시신경의 감각은 하릴 없이 계속해서 불분명해지는 잔상의 덩어리들을 주워섬기게 된다. 내몰리는 시선, 지연되는 인식. 시간 속에서 지탱할 수 있는 감각과 그것을 가늠하여 경험하려는 속도는 서로 능력이 달라, 그 과정들을 되짚어 세세하게 펼치고 닫고 접고 다시 늘어놓으려면 고요하고 두려운 시간들을 다시금 필요로 한다. 자전거 레이서 김훈이 '자전거를 저어서 나아갈 때 풍경을 만나는 것이 몸인지 마음인지 구별되지 않는다'는 말을 한 것이 인상적이다. 화가가 보고 기록하고 기억하고 옮기고 또다시 그릴 때 풍경과 만나는 것은 눈인가 손인가 몸인가 마음인가? 집중된 의식 가운데 새로운 조바심과 불안들이 집적되어야 한다. 세계에 대한 직접성은 오감으로부터 거꾸로 멀어진다. 다시 정말로 멀어진다. 우리는 인간적인 화답을 감행해야 한다. 캔버스의 크기와 질감을 감당하는 신체의 붓질은 간간히 몸을 가볍게 하고, 다시 그 자리에는 새로운 경험의 다른 갈래들이 피어나서, 그림은 익히 없었던 풍경으로 다가와 다시금 경험된다. 우리는 불안한 서로의 시선들을 공유하며 살아있음과 존재함의 질감들에 대하여 눈치를 보고, 생각한다. 눈과 마음을 계속해서 힐끔거린다. ■ 박세연

Vol.20100204e | 최경화展 / CHOIKYUNGHWA / 崔卿華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