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10_0127_수요일_05:3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사이아트 갤러리_CYART GALLERY 서울 종로구 안국동 63-1번지 Tel. +82.2.3141.8842 cyartgallery.com
비움과 채움의 패러독스적 관계에 대한 조형적 대화... ● 작가 김사라는 평면 회화작업으로부터 개념적인 설치작업까지 다양하게 자신이 세계를 보는 시선에 대한 이야기에 관해 다양한 조형작업을 해오고 있다. ● 그는 비움과 채움이라는 가장 단순하고 역설적인 개념에서부터 시작하여 그 안에 잠재된 조형적 질서를 면밀히 고찰하면서 인간의 존재에 대해 깊은 사색을 하고 이로부터 이 세계 안에 내재된 것들에 대해 그리고 이 세계에 관해 깨닫게 된 것들에 대해 작업의 소재로 환원시켜 작업을 진행해 나가고 있다. ● 그의 작업을 보게 되면 특별히 빛에 대해 유심히 살펴보고 있음을 주목하게 되는데, 페인팅 작업에서는 대상과 배경이라는 네거티브와 포지티브의 관계에 대하여, 그리고 이와 유사한 회화 공간에서의 서로간에 역전되며 상호 관계하는 상황에 대하여 표현하면서 공간의 구성이 빛에 의해 변모되는 것을 보여주고 이를 진지하게 그 공간들의 비움과 채움의 간극에서 알게 되는 여러 가지 담론들을 끌어내 보여주고 있음을 알게 된다. ● 사실 창틀이나 벽의 구멍은 비워져 있지만 비워져 있기 때문에 빛으로 채워질 수 있는 공간이다. 이미 벽돌로 채워져 막혀 있는 벽돌은 더 이상 채울 공간이 없는 것이기도 한 것이기에 비워진 공간일 때 빛의 역할을 더 적나라하게 확인하게 되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작가는 작업을 통해 이렇게 가장 근원적인 이야기들을 조형적 원리 속에 녹여내면서 대화를 시도하고자 한다. ● 이러한 점은 이번 전시에서 보게 되는 그의 개념적 설치작업에서도 연장되어 진행되고 있다. 물론 이 개념적 작업들에서는 회화작업과 유사한 어떤 형상이나 이미지들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종이와 글씨의 관계에 대해 일정한 단어들이 쓰여진 부분을 도려내서 종이라는 글자의 지지체 자체를 소거해 버리고 구멍 뚫린 책의 비워진 문장들이 만들어 내는 구멍들과 이 비워진 공간을 가득 채우는 빛은 보여주는 상황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종이가 제거되면서 함께 제거된 글자들은 어쩌면 문장 전체를 혼란스럽게 하기도 하고 비워진 공간의 역할이 재 발견되는 지점이 되는 역설적 상황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 책에서 글을 읽을 때 시선이 글씨만을 따라가면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될 뿐 글씨가 종이 위에 물질적으로 존재하는 혹은 점유하는 공간에 대한 의미를 간과하게 되는데, 작가는 이 공간을 물리적으로 비워 놓고 비워짐에 대한 현전과 부재의 절묘한 비교를 눈 앞에서 경험하게 하여 비워진 공간에 대한 필요 혹은 갈망에 대한 담론을 환기시키고 조형적으로 그리고 개념적으로 언젠가 그곳에 있었던 그것 혹은 이후 언젠가는 그곳에 있어야 할 그것에 대한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오려내고 비워놓은 아주 단순한 장치가 상징하고 담아내고 있는 것이 그리 간단하고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기에 좀 더 시선과 호흡을 멈추고 주목하게 만드는 대목이지만 작가는 이렇게 예술작품이라는 것은 충분히 자연과 세계 그리고 인간에 관한 사색을 할 수 있는 사색공간이며 대화공간인 것을 그의 작업을 통해 말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감동하고 느끼기 이전에 일어가고 대화하며 음미하는 과정이 필요하며 좀 더 진지하고 느리게 그림읽기를 하기를 요청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의 작업 자체가 조형과 세계에 대한 근원적 문제에 대한 고민이자 동시에 인간의 본질에 대한 존재론적인 고민이기 때문이다. ■ 이승훈
공허와 고독, 소외, 우울, 쓸쓸함은 아마도 20세기 이후 인간사회를 대변하는 가장 적절한 단어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한 종류의 '결핍'은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다른 한 편으로 말하면 그 '부족함' 때문에 우리는 필요를 보게 된다. 사람들은 그 필요를 '여러 가지 것'으로 채우려 하지만, 채우면 채울수록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공허함은 더욱 더 커져만 가고, 그 '여러 가지 것'들 때문에 정작 궁극의 필요는 밑으로 점점 가라앉아 보이지 않게 된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공허(空虛)라는 말에는 '헛됨'만 있는 것이 아니라 '텅 빔'도 있다. '없음'은 '있음'의에로의 가능성이다. 유(有)는 무(無)가 되고, 무(無)는 유(有)가 된다. 인간에게 궁극의 필요라 함은 '존재인식'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 타인에 대한 인식. 그것은 실로 가득 찬 이에게는 불가능한 것이다. 여유가 필요하다. 비워내지 않고는 아무것도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 전시하는 작품들은 에드워드 호퍼의 1963년작 Sun in an Empty Room에서 영감을 받아서 시작하게 되었다. 물론 완전하게 같지는 않지만 특히 그 작품이 이전에 내가 진행해 오던 페인팅 작업에서 느끼고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잘 응축된 작품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 작품에서는 호퍼의 이전 작품들과 달리 무언가 조금 더 희망적인 메시지를 읽을 수 있는데, 그것은 '비어 있음'에 대한 것이다. ● 성경을 가지고 작업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성경 자체가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이데거가 '이름 부름'(호명呼名, 명명命名)을 "부재 속에 간직된 현존"이라고 말했듯이 존재는 이름을 통해 규정된다. 부름은 부재하는 어떤 것을 부재 가운데서 현존하게 한다. 그런데 이 '현존現存'은 '현전現前'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가시성이 존재의 전부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러한 존재의 '비가시성을 이야기하기 위해 선택한 장치가 '구멍'과 '빛'이다. ● 성경 텍스트에서 'God'이라는 단어를 오려 내는 것은 '초월적 존재'의 비가시성을 더욱 극명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낱말'이 '현전'할 수 있게 하는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종이 자체를 소거해 버림으로써 '현존'에 대한 화두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다. ● 비가시적 영역에서 존재를 떠받치고 있는 '본질'(인 '존재 자체')에 의해서 시간 속에 현상하는 '존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歷史이다. 이러한 '시간 속에 현상하는 존재'의 역사성을 보여 주기 위해서 선택한 재료가 종이이다. 종이 위에 '기록'된 것은 '보존'되기 때문이다. ● 내가 종이에 기록하는 것은 무無 이다. 성경에서 'God'이라는 글자를 오려 내고 남은 구멍을 카피하는 것이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이라는 존재의 비가시성 그 자체를 옮기는 것이며, 그 '비어 있음'(Emptiness, 공空)에 빛을 채움으로써 비물질적 가시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러나 채워진 빛 역시 그 공간에 머물러 있지 않고 빠져나가 버린다. 그렇게 무無와 유有가 공존하게 된다. ■ 김사라
Vol.20100126d | 김사라展 / KIMSARAH / 金絲羅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