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김윤섭 블로그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9_1222_화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CHEOUNGJU ART STUDIO 충북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 2098번지 Tel. +82.43.200.6135~7 www.cjartstudio.com
김윤섭의 회화에는 스토리가 있다. 2007년 회화(자화상, 손그림, 컵드로잉)와 단채널 영상작품(28-1), 2008년 회화(거인시리즈, 마계 근방위), 2009년 회화(마계의 비대화)와 애니메이션(지지리궁상) 등이 그것이다. 물론 그 스토리 읽기는 그림을 보는 관객의 몫이다. 하지만 외람되게도 김윤섭이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스토리가 관객에게 제대로 전달될 것 같지 않다. 왜냐하면 김윤섭의 스토리가 사적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윤섭의 회화는 마치 관객을 괴롭히는 잡생각처럼 간주될 수도 있다. 왜 김윤섭은 관객에게 제대로 전달될 수 없는 그림을 그리는 것일까? 혹 김윤섭은 '하나의 이야기'가 아닌 다양한 이야기로 열려지기를 바라기 때문에?
김윤섭 왈, "나는 들뢰즈를 신봉하고 있었는데, 『천의 고원』을 읽던 중 '되기' 고원에 이르러서 (특히 동물되기) 나의 그림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것(나의 그림)들을 감각의 향유, 감각의 스피드라고 칭하고 있었다. 여러 감각들을 추적해 가면서 다양한 되기에 이르는 드로잉, 그것을 한 화면에 보여주는 것, 다양한 감각을 바꿔가며 그 변화의 스피드 속에 나를 가두는 것 - '멋지다~' 라고 생각했다."
필자가 김윤섭의 회화를 보면서 떠오른 단어는 들뢰즈(Gilles Deleuze)의 '되기'라기보다 차라리 '리좀(rhizome)이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리좀은 식물의 줄기가 뿌리처럼 땅속으로 뻗어서 자라나는 땅속줄기이다. 들뢰즈는 그 리좀을 당신의 욕망(변용능력)에 적용시킨다. 이를테면 당신의 끊임없이 발생되는 욕망은 '하나'로 환원되지 않는다고 말이다. 따라서 들뢰즈의 리좀은 (필자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통일성' 혹은 '유일자'의 논리를 제외한 다양성, 즉 다자(n-1)를 뜻한다. 김윤섭의 기괴한 그림들은 적어도 필자의 눈에 끊임없이 증식하는 형태에서 비롯된 회화로 보인다.
들뢰즈 왈, "리좀은 시작하지도 끝나지도 않는다. 리좀은 언제나 중간에 있으며 사물들 사이에 있고 사이 존재이고 간주곡이다. 나무는 혈통관계이지만 리좀은 결연관계이며 오직 결연관계일 뿐이다. 나무는 "-이다."라는 동사를 부과하지만, 리좀은 '그리고~그리고~그리고~'라는 접속사를 조직으로 갖는다. 이 접속사 안에는 "이다"라는 동사를 뒤흔들고 뿌리 뽑기에 충분한 힘이 있다."(MP 54)71)
'그리고~그리고~그리고'는 김윤섭의 단채널 영상작품 「28-1」에서도 나타난다. 「28-1」은 일종의 '움직이는 그림'이다. 김윤섭의 '움직이는 그림'은 그의 일상 단편들(28가지)를 그린 그림들로 구성된 애니메이션이다. 하지만 그 '움직이는 그림'은 선적 시간성을 따르지 않는다. 이를테면 김윤섭의 「8-1」은 서사구조를 갖지 않는다고 말이다. 따라서 김윤섭의 「28-1」은 역시 김윤섭의 회화처럼 하나로 끊임없이 증식하여 선적인 시간성을 따르는 서사구조에 '구멍'을 낸다. ● 김윤섭의 「28-1」은 (이왕 앞에서 들뢰즈를 운운했으니) 적어도 필자의 눈에 들뢰즈의 '기관-없는-신체' 개념과도 문맥을 이룰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들뢰즈의 '기관-없는-신체'는 단지 '기관'을 제거시킨 신체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유기체적인 신체'를 이탈한 신체를 뜻한다. 유기체(有機體)는 여러 부분들이 일정한 목적 아래 '통일' '조직'되어 각 부분과 전체가 필연적 관계를 가지는 조직체를 뜻한다. 따라서 들뢰즈의 '기관-없는-신체'는 필연적 관계의 조직화를 넘어 끊임없이 변화하는 변용능력을 드러낸다. 마찬가지로 28가지 일상 단편들로 이루어진 김윤섭의 「28-1」은 선적 시간(부분과 전체의 필연적 관계)를 따라 서사구조(유기체적인 조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선적 시간을 단절시켜 다양한 변용능력의 잠재력을 폭로한다.
김윤섭의 「지지리궁상」 시리즈는 「28-1」처럼 일종의 '움직이는 그림'이다. 김윤섭의 「28-1」은 같은 스케치를 반복하여 일정 움직임을 나타내는 애니메이션이다. 이를테면 김윤섭은 부처상과 남자를 나란히 그린 그림을 반복해서 그려 남자가 부처상의 얼굴에 키스를 하는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고 말이다. ● 그러나 「지지리궁상」 시리즈는 「28-1」에서 볼 수 있었던 일정 '움직임'에 제동을 건다. 말하자면 「지지리궁상」 시리즈는 움직이지 않으려는 애니메이션을 지향한다고 말이다. 움직이지 않으려는 애니메이션? 「28-1」은 인물의 부분뿐만 아니라 신체 전체를 그려놓은 반면, 「지지리궁상」은 움직임을 최소화하기 위해 근접화면(특히 얼굴)을 모델로 삼았다. 그리고 김윤섭은 맨 처음 그린 얼굴 스케치를 마치 모델(밑그림)처럼 사용하여 반복해 그린다. 따라서 김윤섭의 「지지리궁상」은 마치 움직이지 않으려는 애니메이션처럼 미소한 움직임만 드러낸다. 와이?
김윤섭 왈, "움직이는 회화는 단지 매순간 변하는 잠재적 결합을 은근히 보여준다. 그것은 장치들로써 한정되어져서 더욱 돋보이게 될 터인데 그런 돋보임은 미약하나마 근접화면에서의 풍경을 보여줄 것이다. 사실 이번 움직이는 회화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감화될 수 있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감화될 수 있는 그림? 감화-이미지(affect-image)? 감화-이미지는 지각-이미지와 행동-이미지 사이에 위치하는 이미지, 즉 지각된 이미지가 행동으로 반응하기 이전의 틈을 점하는 이미지를 뜻한다. 그 감화-이미지의 중요한 특징은 '얼굴'과 '불특정한 공간'이다. 따라서 김윤섭은 부동화된 얼굴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미세한 움직임들을 통해 감화될 수 있는 그림을 보여주고자 한 것 같다. 필자는 여기서 감화(affect)를 정중동(靜中動)으로 번역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김윤섭의 「지지리궁상」은 고요함과 움직임 사이의 '떨림'으로 표현되어져 있기 때문이다. ■ 류병학
Vol.20091222i | 김윤섭展 / KIMYUNSEOB / 金潤燮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