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리 궁상

김윤섭展 / KIMYUNSEOB / 金潤燮 / painting   2009_1222 ▶ 2010_0102 / 월요일 휴관

김윤섭_담배필때 자주 보는 풍경_반복재생_가변크기_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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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9_1222_화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CHEOUNGJU ART STUDIO 충북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 2098번지 Tel. +82.43.200.6135~7 www.cjartstudio.com

김윤섭의 회화에는 스토리가 있다. 2007년 회화(자화상, 손그림, 컵드로잉)와 단채널 영상작품(28-1), 2008년 회화(거인시리즈, 마계 근방위), 2009년 회화(마계의 비대화)와 애니메이션(지지리궁상) 등이 그것이다. 물론 그 스토리 읽기는 그림을 보는 관객의 몫이다. 하지만 외람되게도 김윤섭이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스토리가 관객에게 제대로 전달될 것 같지 않다. 왜냐하면 김윤섭의 스토리가 사적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윤섭의 회화는 마치 관객을 괴롭히는 잡생각처럼 간주될 수도 있다. 왜 김윤섭은 관객에게 제대로 전달될 수 없는 그림을 그리는 것일까? 혹 김윤섭은 '하나의 이야기'가 아닌 다양한 이야기로 열려지기를 바라기 때문에?

김윤섭_방안에서 궁상_캔버스에 유채_145×200cm_2009

김윤섭 왈, "나는 들뢰즈를 신봉하고 있었는데, 『천의 고원』을 읽던 중 '되기' 고원에 이르러서 (특히 동물되기) 나의 그림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것(나의 그림)들을 감각의 향유, 감각의 스피드라고 칭하고 있었다. 여러 감각들을 추적해 가면서 다양한 되기에 이르는 드로잉, 그것을 한 화면에 보여주는 것, 다양한 감각을 바꿔가며 그 변화의 스피드 속에 나를 가두는 것 - '멋지다~' 라고 생각했다."

김윤섭_산책_캔버스에 유채_140×340cm_2009

필자가 김윤섭의 회화를 보면서 떠오른 단어는 들뢰즈(Gilles Deleuze)의 '되기'라기보다 차라리 '리좀(rhizome)이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리좀은 식물의 줄기가 뿌리처럼 땅속으로 뻗어서 자라나는 땅속줄기이다. 들뢰즈는 그 리좀을 당신의 욕망(변용능력)에 적용시킨다. 이를테면 당신의 끊임없이 발생되는 욕망은 '하나'로 환원되지 않는다고 말이다. 따라서 들뢰즈의 리좀은 (필자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통일성' 혹은 '유일자'의 논리를 제외한 다양성, 즉 다자(n-1)를 뜻한다. 김윤섭의 기괴한 그림들은 적어도 필자의 눈에 끊임없이 증식하는 형태에서 비롯된 회화로 보인다.

김윤섭展_청계창작스튜디오_2009

들뢰즈 왈, "리좀은 시작하지도 끝나지도 않는다. 리좀은 언제나 중간에 있으며 사물들 사이에 있고 사이 존재이고 간주곡이다. 나무는 혈통관계이지만 리좀은 결연관계이며 오직 결연관계일 뿐이다. 나무는 "-이다."라는 동사를 부과하지만, 리좀은 '그리고~그리고~그리고~'라는 접속사를 조직으로 갖는다. 이 접속사 안에는 "이다"라는 동사를 뒤흔들고 뿌리 뽑기에 충분한 힘이 있다."(MP 54)71)

김윤섭_첫사랑_반복재생_가변크기_2009

'그리고~그리고~그리고'는 김윤섭의 단채널 영상작품 「28-1」에서도 나타난다. 「28-1」은 일종의 '움직이는 그림'이다. 김윤섭의 '움직이는 그림'은 그의 일상 단편들(28가지)를 그린 그림들로 구성된 애니메이션이다. 하지만 그 '움직이는 그림'은 선적 시간성을 따르지 않는다. 이를테면 김윤섭의 「8-1」은 서사구조를 갖지 않는다고 말이다. 따라서 김윤섭의 「28-1」은 역시 김윤섭의 회화처럼 하나로 끊임없이 증식하여 선적인 시간성을 따르는 서사구조에 '구멍'을 낸다. ● 김윤섭의 「28-1」은 (이왕 앞에서 들뢰즈를 운운했으니) 적어도 필자의 눈에 들뢰즈의 '기관-없는-신체' 개념과도 문맥을 이룰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들뢰즈의 '기관-없는-신체'는 단지 '기관'을 제거시킨 신체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유기체적인 신체'를 이탈한 신체를 뜻한다. 유기체(有機體)는 여러 부분들이 일정한 목적 아래 '통일' '조직'되어 각 부분과 전체가 필연적 관계를 가지는 조직체를 뜻한다. 따라서 들뢰즈의 '기관-없는-신체'는 필연적 관계의 조직화를 넘어 끊임없이 변화하는 변용능력을 드러낸다. 마찬가지로 28가지 일상 단편들로 이루어진 김윤섭의 「28-1」은 선적 시간(부분과 전체의 필연적 관계)를 따라 서사구조(유기체적인 조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선적 시간을 단절시켜 다양한 변용능력의 잠재력을 폭로한다.

김윤섭_헤어진 그녀 2_반복재생_가변크기_2009

김윤섭의 「지지리궁상」 시리즈는 「28-1」처럼 일종의 '움직이는 그림'이다. 김윤섭의 「28-1」은 같은 스케치를 반복하여 일정 움직임을 나타내는 애니메이션이다. 이를테면 김윤섭은 부처상과 남자를 나란히 그린 그림을 반복해서 그려 남자가 부처상의 얼굴에 키스를 하는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고 말이다. ● 그러나 「지지리궁상」 시리즈는 「28-1」에서 볼 수 있었던 일정 '움직임'에 제동을 건다. 말하자면 「지지리궁상」 시리즈는 움직이지 않으려는 애니메이션을 지향한다고 말이다. 움직이지 않으려는 애니메이션? 「28-1」은 인물의 부분뿐만 아니라 신체 전체를 그려놓은 반면, 「지지리궁상」은 움직임을 최소화하기 위해 근접화면(특히 얼굴)을 모델로 삼았다. 그리고 김윤섭은 맨 처음 그린 얼굴 스케치를 마치 모델(밑그림)처럼 사용하여 반복해 그린다. 따라서 김윤섭의 「지지리궁상」은 마치 움직이지 않으려는 애니메이션처럼 미소한 움직임만 드러낸다. 와이?

김윤섭_여신(오구라 유코)_캔버스에 유채_80×100cm_2009

김윤섭 왈, "움직이는 회화는 단지 매순간 변하는 잠재적 결합을 은근히 보여준다. 그것은 장치들로써 한정되어져서 더욱 돋보이게 될 터인데 그런 돋보임은 미약하나마 근접화면에서의 풍경을 보여줄 것이다. 사실 이번 움직이는 회화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감화될 수 있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감화될 수 있는 그림? 감화-이미지(affect-image)? 감화-이미지는 지각-이미지와 행동-이미지 사이에 위치하는 이미지, 즉 지각된 이미지가 행동으로 반응하기 이전의 틈을 점하는 이미지를 뜻한다. 그 감화-이미지의 중요한 특징은 '얼굴'과 '불특정한 공간'이다. 따라서 김윤섭은 부동화된 얼굴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미세한 움직임들을 통해 감화될 수 있는 그림을 보여주고자 한 것 같다. 필자는 여기서 감화(affect)를 정중동(靜中動)으로 번역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김윤섭의 「지지리궁상」은 고요함과 움직임 사이의 '떨림'으로 표현되어져 있기 때문이다. ■ 류병학

Vol.20091222i | 김윤섭展 / KIMYUNSEOB / 金潤燮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