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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09_1218_금요일_05:30pm
관람시간 / 09:00am~06:00pm / 토,일,공휴일 휴관
인터알리아 아트컴퍼니 B 전시장 INTERALIA ART COMPANY 서울 강남구 삼성동 147-17번지 레베쌍트빌딩 Tel. +82.(0)2.3479.0114 www.interalia.co.kr
멈춰 서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곳이 있다! ● 한 때 그의 '몸'은 한국 현대조각사에서 형상조각의 균형을 잡는데 활용된 바 있다. 올해 작고 10주기를 맞는 조각가 류인의 많은 작품들이 그의 몸을 모델로 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근대화의 일그러진 주체들의 표상을 탁월한 형상인식으로 응결해 내었던 류인의 그 조각들, 그 몸들. 송필은 스승이 떠난 뒤 그 몸의 껍질로부터 탈각하기 위한 긴 시간들을 보내야 했다. 스승의 향취가 짙게 밴 초기 형상조각들은 자기 것이 아니라 하여 버렸고, 빈 축사를 개조했던 마석 작업실은 새로운 출구의 비상구였다. 그는 이곳에서 소가죽을 꿰매어 탈아脫我의 고치cocoon를 만들었다. 이제 그의 소가죽 조각을 보는 것은 사라진 문화재를 찾는 것처럼 힘든 일이 되었지만, 그 기이한 형상들의 소리는 날카롭고 무겁고 강렬했으며 또한 고독했다. 소가 살았던 빈집에서 소거죽의 살점을 떼어내며 썩고 비린 인간의 형상을 재현하는 것이 어찌 고독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 그는 마치 조각을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보인다. 나는 한 순간도 조각의 바깥에 선 그를 본 적이 없다. 언제나 그의 화두는 조각이었으며, 조각만이 송필이라는 사람을 이해하는 단서였다. 류인의 '몸'이었을 때부터 그의 운명은 결정된 것일지도 모른다. 가죽을 쓰기 전, 그는 그의 몸을 모델로 한 조각에 매달린 바 있었다. 흙으로 빚고 플라스틱 고체로 캐스팅한 그 조각들은 마치 두꺼운 갑옷처럼 내부가 텅 빈 형상들이었다. 스승으로부터 물려받은 구상성과 빼어난 손맛이 그 작품들에 깃들어 있었다. 그러나 송필은 아니 '김송필'이란 청년작가는 류인의 조각적 후예로서가 아니라 바로 그 자신이기를 꿈꾸며 이전의 그 모든 기술적 자산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몇 년 전 중국으로 떠난다며 만나러 왔을 때 그의 변태變態, metamorphosis는 이미 시작하고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완전히 새로운 작업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올해 2월 나는 중국 북경의 다산즈大山子 798예술구와 환티에環鐵 창작예술구를 돌아 볼 기회가 있었다. 다산즈의 골목을 누비며 갤러리들을 둘러보다가 우연히 - 운명이라 하기에는 너무 무겁잖은가 - 그를 만났다. 그는 내게 꼭 보아야 할 전시를 소개했고, 다산즈의 주요 행사들, 이벤트가 열리는 장소들도 보여 주었다. 다음날 우리는 그의 작업실이 있는 환티에에서 다시 만났다. 그는 환티에의 많은 작가들을 나와 동료들에게 안내하고 소개했다. 그 덕분에 나는 소문으로만 들었던 북경 창작예술구의 실체를 가늠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의 작업실. 중국 작가들에 비해 작고 아담한 공간이었으나 그의 변이變異 흔적이 난무하는 작업실이었다. 그리고 한 눈에 들어 온 그의 작품들은 그의 작가적 인식이 얼마나 변화했는가를 보여주고 있었다. 애벌레가 고치를 거쳐 날개를 얻는 것이 성숙의 한 개념이라면, 그의 변모는 경이로운 성숙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흙의 조형과 형상에 매료되었던 김송필이란 청년은 이제 거기 없었다. 그는 형상과 질료에서 벗어나 개념적 리얼리즘에 가까운 작업을 전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제 그에게 조형은 하나의 선택일 뿐 그 자체로 조각의 전부가 되거나 과도한 에너지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의 선택은 질료 이전의 미학적 개념이고, 그 개념이 상정하는 현실의 리얼리티이며, 리얼리티에 똬리를 튼 성찰적 비판정신에 있었다. 만남이 이뤄진 짧은 시간 동안 그는 자신의 비판적 현실에 대한 견해를 쏟아 냈다.
그의 변화는 중국으로 건너간 뒤 얼마 후 제작된 「생각하는 사람」(2007)에서 바로 찾을 수 있다. 작품엔 생면부지의 사람들 속에 놓인 그가 작가로서 겪어야 했던 외로움, 열망, 고뇌 등이 응결되어 있다. 고백에 따르면 첫 3개월 동안 그는 오로지 혼자였다. 거대한 도시 북경에 그 스스로 찾아 든 불시착. 유교와 사회주의, 그리고 자본주의와 시장경제가 혼합된 기묘한 도시 북경에서 그는 탈각을 위한 동면에 들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작품은 북경을 상징하는 판지도와 지도 위에 세운 오벨리스크obelisk, 그 꼭대기 위에 앉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오벨리스크는 태양신과 피라미드로 상징되는 본래의 의미와 하등 관계가 없다. 역 피라미드꼴로 세운 그의 오벨리스크는 오히려 하늘이 아니라 대지, 땅, 사람들의 삶을 향한다. 사유의 끝지점에서 우리는 그가 바라보는 이 역설의 세계, 모순의 현실과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그 현실은 단지 북경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에 대한 인식일 것이다. 이후 등장하는 작품들에서 우리는 송필의 세계인식과 비판적 현실주의의 새로운 미학을 만날 수 있다. ● 그는 중국에서 두 번의 개인전을 치렀다. 2007년의 작품들은 근대 이후 인류가 성취한 '위대함'에 관한 사유를 보여준다. 라이트 형제의 첫 비행과 달 탐사 우주선 개발, 그리고 에어버스 A380. 1903년 1인 동력비행기에서 800여명을 태울 수 있는 에어버스 제작까지 정확히 1백년이 걸렸다(「Airplane」). 20세기는 또한 그 어떤 시대보다 월등한 전쟁기계를 개발해 냈다. 수만 수십만의 전투가 아니라 수백만을 살육했던 시대는 오직 20세기밖에 없을 것이다. 이 잔혹한 시대의 결정타는 창과 화살이 아니라 총이었다(「Suicide」). 그리하여 인류는 현실을 초월할 수 있는 '초인超人'을 상상하기에 이른다. 니체의 초인은 "인간의 불완전성과 제한을 극복한 이상적 인간"으로서 '초극적 존재', '절대자로서의 존재'를 상정하나 1978년에 등장한 헐리우드의 수퍼맨은 1초에 지구를 아홉바퀴 반을 도는 엄청난 속도와 힘으로 공포의 현실로부터 인류를 구원한다. 그러나 수퍼맨은 영화 속에서나 존재했으며, '수퍼맨의 저주'에 휩싸인 크리스토퍼 리브는 현실에서 암울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사무엘베케트의 '고도'와 같은 초인은 결코 나타나지 않았다(「Superman」). 시멘트벽돌에서 철골콘크리트로 진화한 20세기 건축의 구조는 '최고'를 향한 집요한 욕망을 드러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1931년부터 1972년까지 세계 최고층 건물로 기록되었다. 세계 무역센터의 등장으로 2인자로 물러났으나 9.11테러로 무역센터가 무너진 뒤 현재 뉴욕시 최고의 건물로 다시 등극했다. 마천루를 향한 인간의 욕망과 그 허영의 실체를 보여주는 「Empire State Building」. 사막에 세운 헐리우드와 이곳을 향해 돌진하는 나약한 꿈들(「Hollywood」). 그리고 우리는 그 위대함의 끝에서 방향타를 잡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는 빛을 발견한다(Beacon」). 송필에게 20세기의 위대함이란 공포에 가까운 것이며, 때로는 절망과 욕망, 희망과 굴욕이 뒤섞인 비극일 뿐이다. 그리하여 모든 작품은 색을 상실한 채 검고 어두운 그림자로 새겨져 있다.
2008년의 작품들은 2007년 작품들의 연장선에 놓여있다. 더 많은 '엠파이어'들이 등장하고 구겨진 성조기가 공중비행을 한다. 길 찾기를 시도하는 손전등과 삶의 화두를 비추는 빛, 희망에 찬 연설을 기다리는 구겨진 마이크와 별 바라기 망원경, 코카 콜라가 쏘아 올린 베트맨 로고. 그러나 조각으로 쓴 그의 '희망 기원'의 서사는 자본주의의 밑창에 깔린 어둡고 음습한 하수구일 뿐이다. 그는 수직상승과 낙하를 반복하며 세계도시의 망루를 쌓아가는 중국의 현실에서 자본주의가 밀고 가는 파괴와 폭력, 비인간화, 비윤리화의 실체와 마주하게 된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1970년대 한국사회의 광포한 산업시대를 폭로했듯이 송필은 21세기의 자본주의 광기를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두 전시의 특징은 그런 자본주의의 상징체들을 아주 쉽게 망가뜨릴 수 있을 만큼의 '구김'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과 그것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출구'를 찾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에서 제작된 거의 대부분의 작품들은 흑연 특유의 검은 질감과 빛깔을 가졌지만 중후함 따위는 온데간데없이 일그러져 있다. 중형급 검은 색 세단sedan일지라도 사고 후의 차체가 보여주는 무지막지한 부서짐, 가벼움, 공허함이 한데 어그러져 생긴 존재의 허술함 따위를 생각게 하는 그 일그러짐으로. 그리고 우린 9.11에서 무역센터가 얼마나 가볍게, 비극적으로 사라져 갔는지를 리얼 생생 동영상으로 지켜보지 않았던가! 그의 출구 찾기는 그래서 절망적이다. 마이크, 주사기, 망원경, 코카콜라, 황금의자는 존재의 궤적을 찾기 힘든 시간성에 놓여 있다. 그의 사물들은, 작품들은 삶의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깊은 웅덩이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페르난도 메이렐레스의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보이지 않는 자들에 의해 상실되는 공간처럼, 다큐멘터리 「인류멸망 그 후」의 소멸하는 문명들처럼 그의 사물들은 현실의 이면을 떠돈다. 사물들의 망명 혹은 망령이 거기 있다.
유일한 출구는 「멈춤」(2007)을 통해 제시된다. 자본을 실어 나르는 트럭들과 속도를 상징하는 미끄러운 직선. 그것이 당대 도시들의 초상이며, 개발과 재개발, 난개발로 얼룩진 옛 도시들의 흔적이다. 하루아침에 붕괴되어 깡그리 사라지는 오백년, 천 년의 도시들과 고공행진을 달리는 '명품도시'의 망루들이 트럭의 어깨와 직선의 그림자에 실려 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모든 속도는 일순간에 멈춘다. 투명하게 빛나는 거대한 부처의 수인手印에 충돌해 있다. 작품의 의미는 다음과 같을 것이다. 서구 자본주의를 동양의 철학, 정신, 영혼이 멈춰 세워야 한다. 지난 20세기 동안 서구 자본주의는 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되며 새로운 문명을 전염시켜왔다. 거의 모든 경제, 사회, 문화, 종교, 법률, 관습, 제도를 뒤 흔들며 '서구화', '세계화'의 물결을 흘려보냈다. 아시아의 오래된 가치들은 신문명의 패션 앞에서 싸구려가 되거나 키치로 전락했다. '신식'을 가장한 서구미학의 유행은 의식주 전반을 뜯어 고치는 개혁을 감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서세동점, 동쪽은 너무 많이 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 올해 보여주는 작품에서 눈여겨 볼 것은 「가벼운 그늘」과 「마지막 시선」, 「메아리」 등이다. 『찬란한 빛』이라는 전시주제를 내 세운 것은 새로 제작한 이 작품들과 깊은 연관이 있다. 다른 작품들은 이미 2008년에 보여준 것들이기 때문이다. 「가벼운 그늘」은 대지를 뚫고 솟아 오른 죽순을 형상화 한 것이다. 대나무는 대지가 생산하는 강하고 아름다운 뼈라 할 수 있다. 죽순의 생명력은 그 무엇에도 비할 바 없는데, 이것들은 숲의 음지에서조차 하루 한 뼘의 키를 높인다. '서세'의 그늘을 은유한 듯한 이 작품을 통해 그는 동양의 빛을 끌어 올린다. 「마지막 시선」과 「메아리」, 「형광등」의 경우도 사물의 죽음이 아니라 재생, 부활의 의지를 담고 있다. 이미 구겨지고 부서진 것들이 안간힘으로 발산하는 빛과 소리들은 생의 지속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오사다 히로시는 말한다. "멈춰 서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곳이 있다.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밖에는 볼 수 없는 것이 있다."고. ■ 김종길
Vol.20091218f | 송필展 / SONGFEEL / 松泌 / sculpture.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