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9_1210_목요일_06:30pm
참여작가 도기종_라유슬_이익재_이현정_이호섭
관람료_자율기부제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CSP111 ArtSpace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188-55번지 현빌딩 3층 Tel. +82.2.3143.0121 blog.naver.com/biz_analyst
CSP111 ArtSpace는 12월 10일부터 12월 31일까지 개관기획전 2부로 도기종, 라유슬, 이익재, 이현정, 이호섭의 최근작들로 『빛을 그리다_Nostalgia』를 마련하였다. ● 70년대 중반에서 80년대 초반에 태어난 5인의 예술가들은 TV와 라디오로 만화와 영화, 스포츠, 드라마, 대중가요를 보고 듣고, 또래 집단과 문화적 공감대를 형성하며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내온 우리나라 전자매스미디어 문화의 첫 수혜자들이다. 이들은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 뉴밀레니엄 이후 근 10년 간 워크맨으로 대표되는 휴대용 카세트 레코더와 CD 플레이어 그리고 MP3플레이어 등 개인용 미디어의 기술적 발달과 개인과 개인이 인터넷으로 하나 되는 디지털 기술매체로의 코드 전환 과정들을 모두 경험하며 청년기를 맞이한 세대이기도 하다. ● 이들은 자의든 타의든 전자매스미디어문화를 이끌어온 핵심 세대이자 디지털 기술이미지 문화 생산의 주역으로 불린다. 하지만 아날로그 방식의 문화적 코드와 감수성을 추억하며 그리워하는 마지막 세대이기도 하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2000년 이후 이 세대의 젊은 작가들이 그려낸 현대기술문명사회의 단상 속에서 개인의 충돌과 갈등, 소외와 혼돈, 불안과 같은 심리적 위기감들을 더욱 민감하고 여과 없이 드러내며, 또래 세대뿐 아니라 동시대인들에게 심리적 공감대를 호소해왔다. ● 『빛을 그리다_Nostalgia』에서 도기종, 라유슬, 이익재, 이현정, 이호섭이 그리는 빛의 여정은 이러한 심리적 공감대를 넘어서, 전자매스미디어 이미지문화에 대한 감각적이고 감성적인 사유가 돋보이는 작품들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 이들은 디지털적 비트와 비트 사이에서 잊혀져가는 아날로그적 형상들과 이를 향수하는 이의 고독감과 멜랑콜리를 애잔하고 은은하게 불러일으킨다. 이들에게 고독감과 멜랑콜리는 단순히 감상적 차원의 감정의 토로나 정신적 도피, 혹은 특정대상에 대한 시각적 환상과 집착 등 과거 지향적 퇴행에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감정 유발을 작가적 의미를 발생시키는 예술적 효과로서 의도하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자신들의 전후세대들과 차별화된 자신들만의 입장, 즉 시대적 책임과 역할에 대한 고민을 풀어 나아가기 위한 사유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70년대 중반에서 80년대 초 출생 세대의 상황적 딜레마는 간절한 그리움의 진동을 담은 화면을 전자매스미디어 문화에 대한 자기반성적 사유와 비평적 계기로 대면하게 하는 한편, 시대변화에 조화롭게 공존하는 주체적 개인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해결 방안을 탐색하도록 끈질기게 부추기고 있다. ● 특히 주목할 것은 최근 들어 도기종, 라유슬, 이익재, 이현정, 이호섭은 화면의 프레임을 디지털 코드라는 기술적 체계에 대한 은유이자 시각적 유희 장치로서 인식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화면의 형상 요소로서 등장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프레임과 프레임을 닮은 수직, 수평의 기하학적 형상, 그리고 불명료하고 불안정한 아날로그적 형상들의 출현, 이들의 갈등적 충돌과 공존을 오히려 디지털 코드 전환 과정에서 잊혀져가는 향수의 대상들을 되살려 새로운 조화를 꾀하는 장치로 발전시키고 있다. 그리하여 비물질적인 빛과 과거의 기억, 아날로그적 촉각성, 그리고 이것이 유동하는 시간 속에 잊혀져감을 현재적 시간과 경험으로 되살려낸다. 배경과 주제의 대상, 색채와 형태, 이미지와 언어의 경계를 오가며 펼쳐내는 심리적인 내면 풍경은 디지털적 감수성을 반영하는 동시에, 시대적 단상들에 대한 비평적 주체로서의 시각을 투영한 예술적 사유의 흔적이다.
도기종의 일상과 주변인들에 대한 탐구는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과 충돌하는 일상 속에서 벗어나 시선이 자유로이 유영하며 그들을 탐색할 수 있는 거리에서 계속된다. 우발적으로 출현한 다양한 제스처의 손짓과 그리움의 대상은 그의 시선에 포착된 순간 그대로 그림이 된다. 포착된 대상들은 일상 풍경의 아주 작은 일부처럼 화면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지만, 오히려 일상 풍경 전체를 자신들이 포착된 순간에 정지시켜 버린다. 화면 전체의 정적과 적막을 깨고 정감을 일으키는 아주 작은 손짓은 우리의 시선을 그들이 놓인 세부 공간에 주목하도록 한다. 애초에 인간적 시선 교환을 차단한 채 풍경 내지는 사물처럼 숨어있던 이들이 존재를 드러낸다. 도기종은 화면을 무수한 시간들이 중심과 주변, 상하 좌우의 위계 없이 결합시킨 공간으로서, 그리고 프레임 역시 경계가 아닌 이질적인 화면들을 연속적으로 확장시켜가는 장치로 다룬다. 그리고 마치 마우스 클릭 한번으로 무수한 시간 중 하나로 순간 전환시키는 디지털적 공간에서의 행위처럼, 자신의 그림 행위로 일상적 시간을 정지시키고, 작고 소외된 존재의 시간을 되살려낸다.
라유슬은 비정형적 형상의 중첩으로 시간의 흐름과 기억의 잔상들을 다루어왔다. 점차적으로 물감의 물질성을 배제시키며 빛처럼 맑고 투명한 색들을 구사하고 있다. 다채로운 색들은 중첩된 형상 사이를 침투하면서, 중첩된 시간적 선후관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기억의 잔상들은 대상적 중심을 잃고 부유하기도 하고, 때로는 기억의 대상과 무관하게 순수 조형적 공간으로 확장되어 가기도 하고, 때로는 끝도 없이 자유로운 유영 속에 소멸되어 가기도 하였다. (끊임없이 퍼져나가는 경계 지워지지 않는 불명료한 색의 영역들로 회화의 상상적 공간으로) 그런데 최근 라유슬은 음영이 반복되는 스트라이프 색 형상을 바탕에 입힌 캔버스 위에 시간의 흐름과 기억의 잔상들에 대한 회화적 사유를 올려내고 있다. 이러한 밑 작업은 중첩을 반복하는 작업 방식과 논리에 대한 은유이다. 동시에 회화의 상상적 공간으로 허무하게 사라져가는 비정형적 기억의 잔상들을 정박시키는 체계이다. 그는 분명 디지털적 전자비트를 연상시키는 리듬 속에서 부유와 정박의 경계를 오가는 새로운 질서와 조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익재는 익숙한 일상공간에서 빛에 대한 현대인들의 향수를 탐구한다. 그는 비물질적인 인공조명의 공간과 물질적인 건축공간을 대비시키며, 과감한 구도와 매혹적인 색면들로 환상도시를 구현한다. 이러한 빛에 대한 탐구는 인공태양이라는 고전적인 메타포, 즉 충족을 모르는 인간의 물질에 대한 끝없는 욕망을 다루고 있다. 이익재는 대형쇼핑몰, 영화관, 놀이공원 등 다양한 인공조명 공간들을 과감한 색면으로 마치 고대 그리스 신전처럼 질서와 비례, 균형을 갖춘 단단한 물질적 구조물처럼 재현한다. 재현된 공간 안에 욕망의 주체인 인간은 없다. 빛은 거대한 건축 공간의 기하학적 골조를 드러내며, 빛의 환상도시는 색면 추상의 고요한 평면이다. 그러나 이익재는 빛을 색의 시각적 환상으로 환원시키지 않는다. 고요한 평면은 빛에 대한 촉각적 향수를 되살리며, 우리를 인간의 시각적 욕망에 대한 사색과 성찰의 공간으로 초대한다.
이현정은 캔버스 앞에서 드러내고 싶은 자아와 숨고 싶은 부끄러운 자아가 반복적으로 교차하며, 글을 쓰고 지우는 일련의 과정들로 내면의 풍경들을 그려왔다. 최근 일기와 같은 캔버스는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불안을 언어로 말할 수 없음 앞에 '불','안'이라고 고백하게 만들었다. 이현정은 대형 캔버스 하나에 한 글자씩 마치 키보드 자판으로 글자를 찍어내듯이 '불','안'을 명확하게 드러내고는 '불','안'의 고백이 여전히 부끄럽다. 쓰고 지우는 과정은 불안이라는 글자의 언어적 성격을 점차 희미하게 하고, 불안을 둘러싼 섬세하고 미묘한 정서와 감정의 색채들로 캔버스 화면을 물들인다. 이러한 언어적 고백을 둘러싼 심리적 과정이 펼치는 풍경은 불확정적이고 유동적인 감정들을 정화시켜나가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한다.
이호섭은 아이콘으로 형상화한 기억의 파편들을 기하학적 형태와 유기적으로 결합시켜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콘 형상들은 화려한 색 이미지의 향연 속에서 부조화를 유발하는 문제적 요소로서, 현실 공간 안에서 소외된 기억의 파편들과 이를 향수하는 이의 고독, 그리고 불시에 찾아오는 기억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 등을 드러내왔다. 최근 이호섭의 화면은 수직 혹은 수평의 더욱 세밀해진 색 스트라이프로 더욱 균질적이고 기계적으로 추상화되었다. 전체 화면과 동일하게 처리한 아이콘 형상들은 문제적 요소를 해결한 듯하다. 그러나 이호섭은 기억의 파편들- 마이클잭슨과 비틀즈 멤버들-존 레논,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 마그리뜨의 새, 만화 영화의 제목들, ARCADIA, L,O,V,E 등 -을 위장시켰을 뿐이다. 이러한 형상들은 잔잔한 스트라이프들의 색 진동면에 파장을 일으키며, 전체 화면을 배경으로 밀어내고 영원한 우상과 이상향으로서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낸다. ● 『빛을 그리다_Nostalgia』에서 5인의 예술가들은 잊혀져가는 소중한 삶의 의미와 가치들을 그리고 그리워한다. 그리고 되살려낸다. 그리고 기억한다. ● 언제든지 기억하고 돌아갈 마음의 고향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게다가 그곳에서 여전히 불을 밝히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믿음은 저 멀리서 아련하게나마 비춰오는 빛만 보고도 한달음에 뛰어갈 만큼 가슴 벅찬 행복이다. 우리는 5인의 예술가의 그림 앞에서 욕망을 향한 기계적 질주를 잠시 멈추고, 이러한 축복과 행복을 마주하고 느낄 것이다. ● 도기종, 라유슬, 이익재, 이현정, 이호섭의 『빛을 그리다_Nostalgia』와 함께 하는 지금 여기의 축복과 행복 역시도 미래의 언젠가 우리 모두가 그리고 기억해내야 할 마음의 빛, 노스텔지어가 되기를 바라며... ■ SONGE
Vol.20091216f | 빛을 그리다_NOSTALGIA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