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9_1208_화요일_05:00pm
2009-2010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아티스트 릴레이 프로젝트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CHEOUNGJU ART STUDIO 충북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 2098번지 Tel. +82.43.200.6135~7 www.cjartstudio.com
멀리서 언 듯 보면 미니멀리즘을 연상시키는 기하학적인 구체들의 조합이 눈에 띈다. 그러나 조금 더 다가가면 그것은 매끈하게 마감된 표면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거북이의 형상으로 덮여있는 구상적인 형태임을 알게 된다. ● 손종성은 2007년부터 줄곧 거북의 형상에 이끌렸다. 길상(吉祥)의 동물인 거북은 우리 전통에서 익숙한 존재이다. 그러나 거북이가 지닌 다양한 설화적 이미지의 편견을 탈피하고 싶다는 작가에게 거북은 단지 시간과 존재론적 정체성을 위한 '사유의 매개체'일 뿐이다. 작가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와 「모모」에 각각 등장하는 토끼와 거북이를 그 사유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어느 날 갑자기 이상한 나라에 빠진 엘리스에게 토끼는 엘리스가 나아갈 방향을 정하게 하는 안내자이다. 모모에 등장하는 거북이도 마찬가지다. 소설 속에서 꼬마 주인공 모모는 시간을 안내하는 거북의 도움으로 시간을 훔치는 회색 신사들을 물리치게 되고, 사람들은 다시 예전처럼 행복한 시간을 갖게 된다. 시간을 즐길 줄 아는 예전의 느린 삶으로...
작가에게 있어 거북은 이와 같은 '시간의 안내자'이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시간에 의해 호출되고 연대해야하는 진정한 자신의 존재와 직면하도록 유도한다'고 밝히고 있다. "한 시간은 한없이 계속되는 영겁과 같을 수도 있고, 한 순간의 찰나와 같을 수도 있다.... 시간은 삶이며, 삶은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것이니까" (미하엘 엔데 「모모」 중에서). 이처럼 손종성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시간은 모두의 마음에 담겨진 각자의 상대적인 시간, 곧 삶 그 자체이다. (중략)
시간은 선형적이거나 원환적 경험으로 나타날 수 있다. 연대기적 측정 기준이 되는 공식화된 시간은 역사적 시간이다. 한번가면 돌아오지 않는 직선적 시간이다. 지나간 시간은 기다려 주지도 다시 오지도 않는다. 그러나 천체의 움직임이나 계절의 순환을 보여주는 코스믹한 시간은 원으로 표현되는 순환적인 시간이다. 동양 사상에서도 천간지기(天干地氣) 60갑자를 순환주기로 한 원적인 시간관, 더 나아가 자연의 운행을 순환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체계적이고 우주적 사상을 따르면 삶은 끊임없이 원을 그리며 돈다.
손종성 작품에서 나타나는 구체의 형태는 이러한 순환적 시간에 대한 조형적 표현이다. 지속적인 움직임, 영원성, 완전성을 상징하는 기하학적 형태 구를 집적시켜서 작가는 자신만의 조형성을 창조하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구체를 한 단위로 해서 무한하게 확장될 수 있는 반복적인 구조이다. 이 시점에서 작가는 한 부분을 무한히 반복해서 증식해나가는 프랙탈 구조를 거론하고 있는데 그것은 내용적인 측면에서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으로 연결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차이를 상정하고 있는 반복을 거듭해 역동적으로 새로운 존재적 생성의 운동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작가는 자기 증식성과 무한한 변주를 통해서 시간이라는 속성을 풀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 또한 작품에서 반복되고 있는 구체는 저마다 다른 표면을 가지고 있다. 차이를 머금고 있는 반복이다. 구체 위에 빼곡하게 들어선 거북의 형상은 조형적으로 드러남과 감추어짐을 함께 포획하고 있으며 그것은 도식적이면서 동시에 회화적인 표면이다. 단순한 반복이 되지 않기 위해 그 표현을 달리한 구체의 표면은 매일 같은 시간을 되풀이해서 살고 있지만 한 순간도 결코 같은 시간이지 않은 각자의 삶의 시간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시간과 존재에 대한 역설적 탐구과정'이 작업의 주제라고 말하는 작가는 그의 작품 속 거북이의 시간은 '내적인 묵상으로 만나야하는 사유'라고 역설하고 있다. ● "시공간 속에서 부단히 환기되는 사실은 인간이 시간적인 존재 곧, 시간적인 제약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점이다.... '시간의 안내자'는 객관적 형상이며 이는 곧 객관적, 객체적 자이이며, 사유의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사유는 시간을 풀어헤치고 해석해서 도달해야하는 목표도 풀어야할 수학문제도 아니다. 시간에 순응하고 받아들이면 비로소 다가오는 지혜의 한 측면이다. 시간은 사유의 한가운데 있다. 시간을 인식할 때가 아니라 인식되도록 스스로를 풀어놓거나 내려놓을 때 존재는 다가온다" (작가노트 중에서) 이렇듯 느릿 느릿 한발 한발 띄어놓는 거북이의 형상과 반복적인 구체의 조형성은 작가에게 시간과 존재론적인 질문을 담은 '사유의 틀'로서 존재한다.
손종성의 작품 앞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순환하는 시간의 괘적을 따라 길을 떠난다. 그 시간은 차오르면 다시 꺼져가는 달의 운명처럼 영원히 처음으로 되돌아오는 시간, 시작도 끝도 없는 시간, 미래가 과거로 변해야만 있을 수 있는 현재이다. 수많은 거북이들은 모여들었다 흩어졌다 하면서 저마다의 시간으로 관객을 안내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나도 느려서 오히려 모든 것이 거꾸로 흐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거북이의 안내를 따라 순환의 궤적 속으로 한발 한발 따라 들어가면서 존재론적인 성찰의 시간, 지금 이 시간을 살고 있는 '나'의 모습을 새롭게 만나도록 안내하고 있는 것이다. ● 작업과정도 노동집약적인 느린 노작의 과정을 거쳐야한다. 하나의 구에는 150여개의 거북이가 치밀하게 모여들어야 완성이 되고 그러한 구가 총 80여개나 모여 하나의 전시를 구성한다. 이런 작가에게 거북은 플라톤의 말처럼 '자신을 잃고 광기에 빠져들게 되는 그 첫 구절의 영감'이 되었고, 예술은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길찾기'의 일환이라고 말하는 작가에게 처음부터 줄곧 그의 길을 안내하는 동반자이지 않을까? ■ 임연
Vol.20091213g | 손종성展 / SOHNJONGSEONG / 孫鍾成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