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것이 다

인천대학교 미술학부 서양화과 졸업작품展   2009_1211 ▶ 2009_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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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9_1211_금요일_06:00pm

참여작가 김지혜_최희선_고정호_채종숙_박재균_김헌주 황경미_박기상_임슬기_노지희_이선희_박준규

관람시간 / 09:30am~08:00pm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소전시실, 중앙전시실 INCHEON CULTURE & ARTS CENTER 인천시 남동구 문화회관길 80 (구월동 1408번지) Tel. +82.32.770.8560 art.incheon.go.kr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네 바퀴 돌아 어느덧 졸업전시회를 선보일 시기가 되었습니다. 아직 여러 면에서 부족한 점이 많으리라 생각하지만, 그동안 고뇌하며 실험해왔던 많은 작품들을 한 자리에 모아 소통하는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보다 넓고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출발선에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으려는 저희를 위해 많은 격려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 인천대학교 미술학부 서양화전공 학생 일동

최희선_내면의 갈등 김지혜_형상화 / 잇다

내면의 갈등 (Dissension of The inside) 인간은 여러 가지 사회적인 요소들로 인해 내면의 갈등과 혼란을 느끼지만 현실에서 마음껏 표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나 역시 한 사람으로서 그동안 겪어왔던 내면의 여러 크고 작은 파동들의 억누름에 답답함을 느껴왔고 그것은 곧 자연스럽게 작업으로 이어졌다. 모두가 눈을 감은 채 앞을 보지 않고 자신과 내면의 싸움을 하고 있다. 인간들은 늘 고독한 사색의 공간이자 사회적 중압감으로 가득 찬 공간에 들어서 있다. 작품에서 보여 지는 모습은 현실 속에서 개인이 내적으로 고민하고 갈등을 느끼는 모습이다. (최희선) ● 形象化 (형상화) 사람들이 형상화에 집착하는 것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예술의 존재이유. (김지혜)

고정호_21세기 대한민국 가족사 父 / 21세기 대한민국 가족사 母 채종숙_Non-sens

시간, 공간, 대상 - 움직임 인과관계에 입각하여 대상을 해석할 때, 결과를 추궁하여 원인을 뒤쫓다보면 결국 더 이상 해석될 수 없는 작은 단위에 이르게 된다. 나는 그것을 '움직임'이라고 부른다. 어떤 사건·대상도 이 문제에 대해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실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최초의 시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변화를 이끌어내고, 그것은 대상의 상태변화가 끝날 때 까지 지속된다. 이러한 법칙은 지극히 사소한 변화에도 적용된다. 이에 대한 이해가 불충분할 때 느껴지는 막연함이 나로 하여금 세상을 해석하도록 만들었다. 나의 작업은 일반적인 대상, 대상과 마주한 시간과 공간, 관념의 이동, 감정의 작용 을 움직임의 언어로 해석한 것이다. (고정호) ● Non-sens 소통을 위한 언어와 문자. 문자와 언어를 통한 의미전달과 세계에의 참여. 하지만 그것은 소통의 갈망과 소통의 불구 성을 낳는다. 자의적이고 임의적인 약속체계 일 뿐인 문자. 그 자체가 언어에 의한 언어의 위반이다. 그것을 해체시켜 조형의 수단으로 화면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의미를 버리고 세상을 바라본다. 언어와 인간관계에 대한 사유..., 문자는 나를 순수한 추상의 세계로 안내한다. 소통과 받아들임. 그것은 어쩌면 쓰고 덮고, 다시 새겨 넣고 다시 지우기를 거듭하면서 의미를 비워내고, 언어를 지워 나가는 게 아닐까?..., 이러한 과정의 반복으로 나의 작업은 완성된다. 더 나아가서 언어를 통해서만이 존재하는 주체성, 그 주체성 바깥의 나. 한계지어지지 않는 생성. 사고할 수 없는 것들과 언표 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para-doxa는 경계를 허물어 non-sens의 원초적 힘을 나에게 부여한다. (채종숙)

박재균_프로젝트 룸-제3의 문 김헌주_흔적

프로젝트 룸/제3의 문 인간의 껍데기를 다룬 제1의 문과 자아를 찾아가는 제 2의 문, 존재의 문을 두드리는 제 3의 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번 전시의 테마는 제3의 문으로 존재의 문을 조심스레 열어본다. (박재균) ● 흔적 어떤 이들은 붉은 빛을 내는 촛불을 기억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흔적'을 기억한다. 자신을 태워 남긴 흔적. 그 속에는 촛불의 흔들림, 내 손짓 등 여러 요소와 시간의 흐름 등이 공존하고, 그것은 모든 것들의 집합체이자 결과물이다. 우리의 삶과 같이 활활 타오르는 촛불. 그리고 그 삶의 추억인 그을음. 그것은 단지 남겨진 추억의 흔적만이 아니다. 그 흔적은 추억이자, 다시 만들어지는 또 다른 추억의 시작이자 흔적인 것이다. 가스통 바슐라르는 촛불의 미학이란 책에서 촛불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저 혼자서 같은 불꽃으로 타면서 꿈꾸는 것은 인간 본래의 모습이며, 하나의 불꽃 속에 세계가 살아 있고, 생명을 가지고 있으며, 현자들을 사색하게 한다.'고 말한다. 나는 이러한 세계와 사색의 '흔적'을 캔버스에 담아, 또 다른 사색을 만들어 내려 한다. (김헌주)

황경미_무미건조 노지희_LD 1101-2 / LD 1101-1 / MC

무미건조;DRYNESS [無味乾燥] 재미나 멋이 없이 메마름. 정적인 형상들은 안정됨과 편안함의 이미지를 내포한 채 현실의 일상을 그대로 전달한다. 편안하고 안정되어 보이는 사물들은 사람들의 삶과 복잡한 공간에서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사용된 후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한 모습을 유지하면서 편안한 상태로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은 바쁜 삶 속에서 이제는 더 이상 필요 없어진 존재들일 뿐이다. 즉, 안정되어 보이는 사물들은 사실상 필요 없어 진 존재들로 지루함마저 느껴지는 무미건조한 형상들인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인간이 살아가는 법칙에도 적용된다. (황경미) ● NATURAL CIRCLE 자연속의 모든 것들은 시간에 따라 팽창하고 수축하고 소멸된다. 우리의 모든 생명들도 그 순간마다 여러 모습들을 남긴다. 그것이 어떤 모습이건 그 자체로 의미 있고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닐까? (노지희)

박기상_Children Of The Damned 임슬기_과정

Children Of The Damned 운명과 불평등 그리고 그 안에서 발생되는 고통과 죽음들. 나는 늘 이러한 것들에 관해 남들 보다 조금 더 깊고 신중하게 생각해 보곤 하였다. 이 세상은 강자가 있으면 약자가 있는 것 이고 그 중간에 강자나 약자가 될 가능성이 있거나 없는 존재들이 있으며, 행복이 있으면 불행은 빛 뒤에 그림자처럼 존재한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들이 강자로서 그리고 행복의 운명 안에서 태어나 살아 갈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러한 운명은 절대로 자신의 의지대로 선택할 수가 없다. 신은 그러한 절대적인 범위 안에서 모두가 행복할 수 있도록 세상을 그렇게 너그럽게 창조해 놓지 않았다. Children of the damned라는 제목은 본인이 사춘기시절 헤비메탈음악에 심취해 있을 때 들었던 어느 영국밴드의 노래이자 60년대 공포영화의 제목이기도 하다. Children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약자로써 선택 되어져 불행과 고통 속에서 살아가거나 죽어 갈 수 밖에 없는 생명들이다. 고래싸움에 새우등이 터진 다는 말이 있듯이 강자들이 일으킨 전쟁과 폭동, 또 그들의 지배에 의해 약자로써 선택되어진 이들은 생매장 되고 화염과 폭탄에 사라져갔다. (박기상) ● 과정 가려진 혹은 감춘 나. 그런 나를 찾아 간다. 내가 성숙해지는 과정, 내가 나를 찾아가는 과정, 내 안에 나를 들여다보는 과정, 그 모든 과정. (임슬기)

박준규_마천루 / 잔영 이선희_동물과 인간

인간과 도시 인간은 살아가면서 다양한 가치를 원하고 소망한다. 꼭 필요한 것에서부터 분에 넘치는 영광까지,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들을 추구하고 있는 이러한 행동들을 나는 욕망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리고 인간이기 때문에 누구나 욕망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인생의 대부분을 소진한다. 도시 속 마천루와 화려한 풍경으로 포장되면서... 하지만 그 뒤에는 우울한 욕망과 패배의 깊은 잔영을 드리운다.(박준규) ● 동물과 인간 「유기동물에 관한 슬픈 보고서」(고다마 사에 作, 책 공장 더불어)는 인간이 동물을 '사육'하고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동물을 보호하고 복지정책을 펴야 할 국제수준의 동물보호법을 제정하기까지 정서와 이해부족에서 오는 숱한 논란과 동물애호인의 자긍심과 행복감이 교차하는 과도기를 거쳤다. 우선 반려(伴侶)동물이라는 용어만 보더라도 나와 살고 있는 사람(부부)을 말할 때 쓰는 반려자의 반려란 표현과 같고, 복지(福祉)라는 단어도 보편적으로 인류의 행복을 추구하는 의미로 사용하는 용어인데 동물에 적용하고 있는 사실은 오늘의 심각한 현실을 말해준다. 따라서 동물이 인간을 위한 창조물이 아니기에 인간과 함께 행복하게 공존해야 하는 것은 자연의 섭리다. 때문에 사람과 같이 살아가는 동물을 반려동물이라 했고 또한 우리 곁을 떠날 때는 일정한 사체처리와 함께 장례식장 이용이 가능토록 제도화 하였으며, 이는 인간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의적인 규범을 준수하고 책임과 의무를 다 해야 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바라볼 때, 이윤극대화를 위해 동물에게 유해한 동물성 사료를 먹이고 동물의 기본적 권리까지 박탈하는 축산자본가들의 탐욕은, 아우슈비츠의 대학살을 자행했던 히틀러의 광기와 궤를 같이 한다. 비록 지력(知力)이 부족하고 말 못하는 생물이지만, 그들도 생물로서 누려야 할 자유와 권리를 만끽할 때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이선희)

Vol.20091212i | 보이는것이 다-인천대학교 미술학부 서양화과 졸업작품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