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9_1203_목요일_06:00pm
갤러리 스케이프 기획展
참여작가_이은정_이자연_사타_윤지선
관람시간 / 화~금요일_10:00am∼07:00pm / 주말_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스케이프_GALLERY skape 서울 종로구 가회동 72-1번지 Tel. +82.2.747.4675 www.skape.co.kr
문지방으로서의 '경계적 신체(liminal body)' ● 신체를 통한 자아의 탐색은 동시대 미술에 있어서 주된 화두였으며, 현재까지도 다양한 매체로 탐구되고 있다. 작가들에게 인간의 몸은 작품의 무궁무진한 재료이자 영감의 원천으로 다뤄진다. 정신과 물질, 의식과 무의식, 외부 세계와 내부 세계 사이에서 신체는 이분법적인 구분을 가능케 하는 경계면이면서 동시에 이를 매개하는 통로로서 기능한다. 『Liminal Body』전은 이중성을 함의하는 신체의 경계에 주목하며 기획이 되었다. 전시 제목에 언급된 리미널(liminal)이란 용어는 이곳과 저곳의 사이에 경계면인 '문지방'을 뜻하는 말이다. 본 전시는 신체를 상의한 세계들 사이에서 접점을 가능케 하는 문지방으로 보며 다음의 네 작가를 소개하고자 한다. 완고한 신체의 물질적 경계를 다루는 이은정, 이자연, 사타, 윤지선의 작업에서는 경계로부터 변화무상하게 펼쳐지는 신체의 욕망을 살펴볼 수 있다.
몸-기관 없는 이종교배 ● 이은정은 작업에서 인간의 피부와 돼지의 피부를 서로 교접하여 몸의 생물학적인 경계를 해체한다. 작가는 자신의 신체와 돼지를 촬영한 사진을 오려 바느질로 꿰맨 다음 이를 이종교배시킨다. 인간이 터부시하는 돼지의 피부는 그의 작품에서 인간인지 동물인지의 경계가 애매한 모습이다. 돼지의 피부와 신체의 피부 사이의 유사함은 인간과 동물을 동일선상에서 보려는 작가의 태도에서 비롯한다. 이는 인간을 우위에 두고 동물을 하등한 존재로 다루는 폭력적이고도 비인격적인 면모에 대한 경계심이기도 하다. 이렇게 피부들로 구성된 몸에는 머리와 기관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교접된 피부가 그 자체의 형상을 통해 머리와 내장기관으로 둔갑하는 모습이다. 작가가 제작한 신종 개체들은 신체의 유기적 질서를 위반하며, 신체가 터부시해온 살로서의 감각을 일깨운다. 이러한 해체/재구축의 과정은 비유기적 형상으로 가변 가능한 신체의 하이브리드적 가능성과도 연결된다.
몸-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혼종 ● 이자연의 작업에서 신체의 등장은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경계에서부터 비롯한다. 신체는 개인의 은밀한 무의식이 펼쳐지는 꿈속에서 조차 변형, 전이된 형상으로 등장한다. 언어로 구사되지 않는 무의식적 풍경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몸을 동물화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드러난다. 그의 조각 작품에서 신체는 인간과 동물과의 경계가 애매하게 뒤섞인 모습이다. 근작 「불명(不明)」 연작에서 신체는 개, 고양이, 새 등 동물의 몸과 교묘하게 결합된 혼종의 형상을 지닌다. 인간의 머리를 가진 혼종의 동물은 완전하기 않기에 불안한 심상을 주며 내면의 사유에 접근케 한다. 하나의 머리를 두고 두 개의 얼굴과 두 개 몸을 지닌 동물은 이성적 사유로부터 분열된 자아의 이면과 이를 거스르려는 무의식적 욕망을 들여다보게 한다. 이러한 이자연의 작업은 신체에 잠재된 원초적 리비도를 발견해내며 사유하는 신체의 일면을 보여준다.
몸-세계로 향하는 문지방 ● 사타는 사진 작업에서 몸을 타자의 몸이나 사물 등과 결합시켜 실재와 환상의 경계를 흐트러뜨리는 초현실적 신체를 보여줘 왔다.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은 이미지를 조작하는 방식을 통해 변화무상한 모습으로 신체를 변용한다. 몸을 기이한 풍경으로 제안하던 그의 작품은 근작에서 공간 속에서의 모티브와 관계하며 환경과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작가는 무의식적 몽상이 교차하던 몸으로부터 한 발자국 나와 몸이 존재하는 세계로 직접 들어간다. 가공되지 않은 나체로 등장한 몸은 물, 지상 등 자연 환경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재배열한다. 이때 몸은 중력과 상관없이 기울어진 채 서있기도 하고 수면의 경계에서 초연히 머물기도 한다. 또한 발걸음을 크게 한걸음 허공의 공간으로 내딛기도 한다. 이러한 신체의 움직임은 기존의 질서, 법칙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것으로 공간의 차원을 가로지르는 것이다. 몸과 세계, 세계와 세계 사이를 건너는 몸은 문지방과 같은 역할을 하며 현실과 비현실이 교차하는 다층적 풍경을 제안한다.
몸-재조직된 얼굴풍경 ● 얼굴은 직립보행을 하는 인간에게 있어 시각적으로 가장 먼저 인지되는 부위로 개인의 정체성을 대표적으로 드러낸다. 시각, 청각, 후각 등 감각 기관이 집결되어 있는 얼굴은 외부 세계를 지각하는데 있어서도 우선적으로 기능한다. 윤지선의 작업은 몸의 부위 중 특히, 얼굴과 관련하여 다의적인 정체성을 보여준다. 작가는 자신의 얼굴을 사진 찍어 오려낸 다음 반복적인 재봉질을 통해 가변적인 얼굴 풍경을 제시한다. 바늘은 얼굴을 꿰뚫고 지나가나 형형색색의 실들이 그 자리를 메우게 되면서 얼굴에는 파괴와 생성의 과정이 동시적으로 일어난다. 얼굴에 문신과 같이 새겨지면서 겹겹이 쌓아 올려진 실들은 변신의 과정을 앞뒷면 모두에 고스란히 기록하게 된다. 새김의 고통과 가장의 유희가 공존하는 작가의 작품은 괴기스럽고도 우스꽝스런 양면성을 지닌다. 작가의 재봉틀에 감긴 실타래는 자아뿐만 아니라 타자로 뻗어나가는 무한한 핏줄로 볼 수 있다. 이렇듯 실들이 새로운 살로서 얽히고설키어 구성된 윤지선의 재봉 작업은 얼굴로부터 몸의 다양한 변주를 가능케 한다.
위에서 살펴본 네 작가는 신체로 자아를 탐색하는데 있어 각각의 매체적 특성을 이용한 표현의 확장된 영역을 보여 준다. 이들의 작품에서 신체는 완고한 유기적 구조를 탈피하는 것으로부터 변화의 기점을 맞이한다. 신체는 유기적 구조로부터 분절, 해체, 전이, 변종해나가는 과정을 통해 자아, 타자, 그리고 세계와 만난다. 인간과 동물, 생물과 무생물, 이성과 본능 사이의 경계에서 재조직된 몸은 명명될 수 없는 과정 중인 주체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고착적이고 고정화된 자아 이미지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몸을 재조직하려는 신체의 욕망으로 볼 수 있다. ■ 심소미
Vol.20091209h | Liminal Body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