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9_1126_목요일_05:00pm
2009-2010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아티스트 릴레이 프로젝트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CHEOUNGJU ART STUDIO 충북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 2098번지 제2전시장 Tel. +82.43.200.6135~7 www.cjartstudio.com
박지호의 조각, 내가 누구인지를 생각하는 나는 누구인가 ● 박지호의 작품은 줄곧 자신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언덕 위에 쓰러질 듯 얹혀져 있는, 코끼리가 코로 들어올리고 기린이 등에 짊어지고 있는 집의 형태는 작가가 속한 관계의 형상이다. 숨을 곳 없이 마른 가지에 달라붙어 있는 카멜레온도 역시 작가가 감정이입한 대상물이라 볼 수 있으며, 죽 잡아 늘려진 얼굴의 모습, 자동차의 모습도 자신을 향해 있다. 모든 작가의 작품이 자신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기는 하겠지만, 박지호의 경우 자신의 삶과 더욱 밀착되어 있는 솔직함을 보이는데, 이는 최근의 경우, 그리고 특히 최근의 젊은 작가의 경우 의외로 흔히 보이는 모습은 아니라서 흥미롭다.
최근의 세태를 탄식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작품 보는 이의 입장에서 재미가 덜한 것은 사실이다. 대학이나 대학원 졸업전에서부터, 혹은 청년작가들의 작품을 대상으로 하는 페어전에서 자신의 작품이 팔리는 경험으로부터 출발한 젊은 작가들의 작품은, 신기하게도 특유의 냄새가 있다. 일반적으로 '이것이다'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미술 시장과 친근한, 미술 시장을 겨냥한, 미술 시장에서 눈여겨보는 작품들의 경향이라고 하는 것이 존재한다. 박지호와 같은 작품의 경우에는 그런 류의 특유한 냄새가 덜한 편인데, 그것은 그가 지속적으로 일종의 '자화상'을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시장과 미술이 관계를 맺지 말아야 한다거나 예술을 위한 예술을 주장하고픈 것이 아니다. 작가가 캔버스 앞에 설 때, 혹은 어떤 재료를 손에 들고 있을 때, 관객이나 컬렉터의 입장이 되어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했을 때 결과적으로 도출될 수 있는 재미없음에 대해, 또한 그 반면의 재미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이다) ● 그의 자화상들, 특히 동물에 스스로의 자아를 이입한 작품들은 쉽게 읽힌다. 코끼리와 기린의 공통점은? 그들은 동물의 세계에서 약자가 아니지만, 다른 동물을 먹이로 삼지 않고 풀, 열매 등을 먹는 초식동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박지호는 그 동물들의 신체에 집을 짐지운다. 혼자라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도 갈 수 있는 이 길을 무겁게 짐지고 주춤거리며 가야 하는 이유는, 내가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코끼리는 코에 얹은 집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기린은 등에 진 집을 이고 가기 위해 뛰어갈 수도 없다. 또한 집이라는 것은, 집이 상징하는 인간사의 모든 것들은, 알다시피 버리기도 어려운 것이다.
카멜레온을 소재로 한 작품들도 이러한 맥락에서 크게 멀지 않다. 보호색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카멜레온은 쉬운 상징물이다. 나뭇잎 색으로 위장한(실제 나뭇잎을 갈아서 형태를 만든) 카멜레온들이 앙상한 나뭇가지에 붙어 나뭇잎인 척을 하고 있지만, 그렇게 해서 가려지기에는 그 위장술이나 그를 둘러싼 환경이 완벽한 도움을 주지 않는다. 카멜레온은 환경에 따라 자신을 바꾸는 특성으로 인해 기회주의자의 상징으로 사용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박지호의 카멜레온은 살려고 발버둥침에도 불구하고 취약성을 감추지 못하는 존재이다. ● 이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마치 잘 빠져드는 드라마를 감상하는 것과도 같은 느낌이다. 작가 스스로가 자신이 선택한 동물의 특성에 감정이입하듯이, 관객도 그만큼의 마음을 투여하게 된다. 집이라는 게 그렇지, 산다는 것도 그렇지, 세상이 다 그렇지 하면서 끄덕거리게 된다. 이렇게 쉽게 공감을 살 수 있는 특성은 그의 작품이 가진 큰 장점이다. 게다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작가 자신의 삶에 맞닿아 있을 때 공감은 배가 되어 고스란히 보는 이에게 전해진다. 그러나 동시에 그의 작품이 가진 장점, 쉽게 읽히고 쉽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지점이 가진 한계가 존재한다. 그의 작품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너무 단정한 나머지 그 이상의 것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웃는 것 같기도 하고 슬픈 것 같기도 한 다빈치의 모나리자, 초라한 촌부이면서 성스러운 기운을 느끼게 되는 렘브란트의 어머니의 초상, 유머와 선언을 동시에 행하는 피카소와 같은 대단한 예들을 들지 않더라도, 영화 속 인물의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과도 같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마음에 남는 이미지, 그것에 보는 이들은 그것을 곱씹게 된다. 박지호가 만들어내는 작품들에는, 한번의 변형을 거친 은유가 존재하지만 그것은 질겅질겅 씹고 또 씹어보고 싶은 의욕을 불러 일으키기에는 조금 역부족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런 그가 형태를 늘리고 비틀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어떤 징후일지 궁금하다. 집을 짊어지고 걷던 그가, 숨을 곳 없는 카멜레온처럼 당황하던 그가, 대상을 조금 더 유연하기 주무르기 시작했다. 애초에는 자화상으로 만들까도 생각했다는 얼굴은 옆으로 길게 늘여져 늘린 부분에는 채색이 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텔레비전의 화면조정시간에 보이는 색채처럼 보였으면 하는 의도도 숨어 있다. 분열하는 형태, 분열하는 색채로 그가 말하고 싶어하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관념의 혼란이 아닐까 한다. ● '그는 사기꾼이야', '그녀는 멋쟁이야', '저 사람은 장남이야', '그 아이는 깡패야'하고 규정하는 밖으로부터 씌워지는 관념은 실제의 그 인물과 관계된 것이기도 하지만, 그러한 관념이 씌워지는 순간 스스로를 그렇게 틀지우고 인식하게 하는 힘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 '그', '그 자동차'를 수식하는 말들과 의미들을 배제하고 그 자체를 주물러 비틀어보는 박지호의 현재 작품들은 그 자신이 머물러 왔던 한정적인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 취하는 방법론인 것처럼 보이는데, 동시에 그것은 임시방편인 것처럼, 어쩐지 과정적인 단계인 듯이 보인다. 대상을 딱 떨어지는 사물로 만들어내는 편인 그가 선호하는 작품들은 의외로 거칠고 표현적인 작품들인데, 그러한 거칠음에 대한 선호감이나 욕구가 사물의 비틀림으로 드러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닌게 아니라, 매끈한 형태의 표면에 매끈하게 칠해지는 색채는 어딘지 답답함을 불러일으킨다. 가출하고 싶은 모범생, 문이 열려 있지만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새장 속의 새와 같은 이 느낌이 아마도 현재 그의 작품들을 과정적인 것으로 보이게 하는 것 같다. 현재 그는 문을 노려보고 있기에, 아마도 조만간 발을 떼고 문밖을 나설 것이다. 나는 문밖으로 나서게 될 그의 작품, 아직 생겨나지도 않은 미래의 작품, 이번 전시의 다음 전시에 출품하게 될 작품에 대한 기대와 호감으로 현재의 작품을 바라본다. ■ 이윤희
Vol.20091129c | 박지호展 / BHACJIHO / 朴志鎬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