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다가

강수민展 / KANGSOOMIN / 姜秀敏 / photography   2009_1121 ▶ 2009_1219

강수민_설치드로잉_종이에 연필, 색연필_2006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강수민 블로그로 갑니다.

작가와의 대화_2009_1121_토요일_07:00pm

관람시간 / 24시간 관람가능

작은공간 이소 대구시 남구 대명3동 1891-3번지 B1 Tel. +82.10.2232.4674 cafe.naver.com/withiso

길을 가다가 ● 현실에서 우리는 수많은 것들과 엮여 있다. 가족, 친구, 학교, 직장, 사회, 국가, 과거, 미래... 자신을 형성해 온 바탕이자 자신의 일부분일지도 모르는 것들. 자신의 존재는 오롯이 스스로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 또한 삶의 가장 큰 목적 중 하나인 기쁨과 행복은 혼자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스스로가 부여하는 것이지만 그것에 대한 답은 자신의 주변을 빼놓고 얻을 수 없다. 하지만 지금에 있어서 우리가 던지고 있는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가 아니라 '나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라는 전혀 다른 질문이다. 그 곳에 '자신'과 '스스로'는 존재하지 않으며 시선의 주체를 누군가에게 빼앗겨 버린 듯 한, 타자만이 존재한다. 그 곳에서 자신과 주변은 갈라져있으며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은 자신의 일부가 아니라 외부로 밀려나 버린다.. 그것들은 기쁨과 행복이 아니라 피로와 굴레이며 우리는 점차 그것들에 의해 지쳐간다. 그리고 우리는 주변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일탈을 꿈꾼다.

강수민_대흥동_디지털 프린트_53×160cm_2009

작가는 일상적인 공간 혹은 일상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장소를 혼자 거닐며 주변과 사물을 소소하게 담아낸다. 작가가 담아낸 것들은 너무 소소한 나머지 작품 같지 않아 보인다. 작품 같지 않다는 것은 은유와 상징, 특별함으로 무장한 의욕적인 결과물이 아니며, 작가에 의해 선택된 사물과 장소들도 평범하거나 그다지 작품사진으로 담을만한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작가가 보여주는 것은 우리가 일상에서 저지르는 평범한 기록에 가깝다. 이러한 방식은 작가가 드러내고 집중시키고자 하는 것이 작품 자체라기보다 작품 뒤에 숨어있는, 기록의 파편들이 연결되면서 발견되는 여정과 마음의 태도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방식이 일상과 분리된 특별함이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평범한 행위와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일상의 담담한 이야기로써 우리와 동떨어지지 않고 유용하다.

강수민_와우산-0910_디지털 프린트_86×120cm_2009

몇 년 전부터 필자는 먼 곳으로의 여행을 꿈꿔 왔다. 아마도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로부터 기쁨과 행복만을 느낀 것은 아니였던 모양이다. 정말 한번쯤 벗어나고 싶었고 벗어나면 무엇을 깨닫게 될지 궁금했다. 결국 인도로의 여행을 떠났고 하지만 예정대로 돌아왔다. 여행이 끝난 후 그로인한 피로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는 사실에 기운이 빠졌고 또 한 번 벗어나고 싶다는 여행의 환상만이 남았다. ● 작가의 이야기는 크게 '여행'이라는 단어로 함축할 수 있지만 필자가 떠났던 여행과는 사뭇 다르다. 외딴곳으로의 벗어남이 있지만 일상과 그리 멀지 않은 공간이며,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공간체험이 있지만 그 속의 담겨진 이야기가 자신이 딛고 있는 현실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작가가 보여주는 여정은 일상과 여행의 경계에 위치한다. 필자의 경우 일상과 여행을 갈라놓고 현실을 벗어난 여행의 환상만을 쫓고 있다면, 작가의 여행은 그 둘을 이분화 하지 않고 둘이 가지는 극단을 잘 녹이고 있다. 즉 현실 속에 발을 딛고 있으면서 현실을 지긋이 바라볼 수 있는 적당한 거리를 확보하고 있다.

강수민_이대굴다리_젤라틴실버 프린트_48×64cm_2007

작가에 의해 기록된 장소들은 일상적인 공간이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곳, 오랜 시간의 흔적들이 남아있는 소외된 장소다. 이제는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버린, 그래서 쓸쓸하기도 하고, 음침하기도 하고, 신비하기도 하고, 비밀스럽기도 하다. 그 곳에 남아있는 흔적들은 마치 많은 사연과 이야기들이 담겨있는 듯하다. 흔적들은 누군가의 행위와 삶, 과거를 상상하게하고 장소의 역사를 더듬어 올라가게 한다. 이제는 먼 과거가 된 이야기들은 추측과 상상이 들어맞지 않더라도 너그러이 웃어줄 것만 같다. 숨겨진 과거에 의해 자신만의 비밀스런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시간을 거스르는 대화와 만남이 이루어진다. 자신에게 쏟아지던 주변의 피곤한 시선들을 뒤로 하고, 누군가의 과거를 뒤 따라 가면서 언젠가는 과거될 자신의 모습과 마주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을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이 만들어진다.

강수민_정동_디지털 프린트_47×84cm_2008
강수민_작은공간 이소_2009

목적을 가지지 않는 거닐음은 어떤 여유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거닐음의 장소가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장소라면 두려움과 함께 설레임을 갖게 되기 마련이다. 여유와 두려움, 설레임의 복합적인 심리 상태는 어떤 집중력과 감성을 생산하고, 그러한 집중력과 감성은 사소한 것에서도 큰 의미와 사유를 발견하게 한다. ● 누구나 일탈을 꿈꾸지만 일탈은 언젠가 다시 돌아온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영원한 일탈은 벗어남이 아니라 또 다른 굴레일 것이며, 벗어나고자 함은 벗어나지 못함에 의해서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할뿐이다. 작가는 현실과 일상을 감싸 안고 그 속에서의 여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서는 과거에 남겨 놓았던 이대 굴다리 주변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을 같은 공간 안에 펼치며 흔적이 가지는 비밀을 들려준다. 그리고 예전 굴다리에서 작가가 체험했던 공간을 재현하고 이 전시가 당신으로 하여금 소소한 여행이 되기를 권유한다. ■ 작은공간 이소

Vol.20091127d | 강수민展 / KANGSOOMIN / 姜秀敏 / photography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