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의 시선은 어디에나 있다

김진展 / KIMJIN / 金眞 / painting   2009_1126 ▶ 2009_1215

김진_거인의 시선은 어디에나 있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50×150cm_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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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9_1128_토요일_06:00pm

작가와의 대화_2009_1209_수요일_07:00pm

관람시간 / 01:00pm~08:00pm

그문화_SPACE OF ART, ETC. 서울 마포구 서교동 400-22번지 2층 Tel. +82.2.3142.1429 www.artetc.org

거인의 시선은 어디에나 있다 ●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만큼 어려운 게 있을까? 보편적 진리의 존재를 인정할 때 과학이 우리에게 준 객관적 시선은 세상을 바라보는 가장 적절한 눈이 된다. 그리고 보편적 진리를 신의 영역이라 간주하면, 그 영역이 그림자를 내비치는 공간은 바로 우리의 현실이 된다. 아이작 뉴턴은 거인의 어깨 위에서 바라보았기에 넓은 시야를 획득할 수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물론 그가 상정한 거인이란 철학을 위시한 근대 학문을 일컫는 것이었지만, 그의 그 비유적 표현은 그 자체로 아직까지 유효하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보편적 진리라는 거인의 어깨에 올라가 객관적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가장 포괄적이고 정직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작가 김진의 세상을 향한 시선도 이처럼 객관적이다.

김진_거인의 시선은 어디에나 있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50×150cm_2009

고로 자본주의와 그 안에 침잠해 있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김진의 이번 작업에는 긍정적인 평가도 부정적인 평가도 없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 객관적인 시선이야 말로 세상과 나에 대한 반성을 열게 하는 힘이 되어준다는 것이다. ● 김진은 솔직하고 강인한 여류 작가다. 그녀의 손끝에서 비롯되어 붓을 타고 퍼져 나오는 에너지는 매우 강하고 또렷하여, 작품에 담긴 내용 역시 매우 분명하고 강렬해졌다. 여태껏 인간 내면의 파괴 욕구와 무의식적으로 행해지는 잔인한 폭력 등에 주목해온 그녀는 이번 전시를 통해 자본주의를 새롭게 해석하고 평가하려 한다. 김진은 이번 전시에서 종교화의 형식을 빌려와 완성한 풍속화를 보여준다. 그녀가 전시틀로 사용하는 형식은 이콘화에서 비롯된 삼면화(triptych)로, 이는 프란시스 베이컨이 내면의 어두움을 드러내는 데 사용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형식이 김진에게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보이고자 하는 시공간적 장으로 변모한다. 그리고 그 세계는 다름 아닌 자본주의의 새로운 속성을 무의식적으로 수용하는 우리의 지금 이 세계가 된다. 고로 그 내용은 우리들의 통감각을 이끌어낼 수 있는 가장 동시대적인 이야기인 것이다.

김진_거인의 시선은 어디에나 있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50×150cm_2009

김진의 신작들이 지니는 또 다른 특징은 얼굴 없는 건장한 신사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 와인 잔, 덫, 쇠사슬 등 갖가지 메타포를 정면으로 드러내면서, 건강과 부를 모두 지닌 건장한 모습으로 사내의 육체를 표현했지만, 정작 이들에게는 눈빛과 표정이 없다. 얼굴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 은폐된 얼굴이 작품을 바라보는 바로 우리 뒤에 머무르고 있다고 말한다. 즉 거인의 시선은 도처에 있으며, 아무리 발버둥 쳐도 우리는 그 시각 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거대한 자본주의 속에서 헤어날 수 없는 우리의 운명과도 닮아있다. 즉 쓸쓸한 마음 달래려 넘기는 한 모금의 소주와 허전한 가슴을 채우려 깊게 마시는 담배 연기조차 자본으로 인해 허락된 유희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아무리 그것을 부정하고 적대시한다고 해도, 자본은 우리를 놓아주지 않는다.

김진_거인의 시선은 어디에나 있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50×150cm_2009

어디에나 존재하는 거인의 거대한 시선으로 우리를 주시할 뿐. ● 여기서 우리는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세상을 응시하는 작가의 시선 역시 우리를 응시하는 자본주의의 시선과 비슷하다는 사실이다. 즉 그녀와 자본주의 사이에 서로를 응시하고 관찰하는 모종의 과정들이 진행되어온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녀의 작품에서 김진의 에너지는 자본주의의 힘을 눌렀다. 응시의 과정이 세상과 자신에 대한 반성으로까지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반성은 오랜 시간 갈고 닦아 얻게 된 객관적 시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를 바라볼 수 있는 객관적 시선을 획득하면, 그것들의 참모습을 바라볼 수 있게 되며, 그 안에서 반성이라는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된다. 고로 우리는 김진이 시간과 공을 들여 획득한 그 객관적 시선과 그 결과물로 화폭에 마음껏 펼치는 반성의 과정들을 목도할 수 있게 되었다. 세상의 그 무엇도 온전한 부정과 비판의 대상으로 존재하는 것은 없기에 김진의 이번 작업들은 새로운 감흥을 일으킨다. ■ 김지혜

Vol.20091125h | 김진展 / KIMJIN / 金眞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