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미술공간현 2009 기획전시 작가공모展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주말_11:00am~06:00pm
미술공간현 ARTSPACE HYUN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6번지 창조빌딩 B1 Tel. +82.2.732.5556 www.artspace-hyun.co.kr
하영희-김치를 그리다! ● 김치다! 식탁에서 매일 같이 접하는 김치가 그림 속에 있다. 오로지 김치만이 화면 정중앙에 고독하게, 의연하게 자리하고 있다. 밥상에서 내려다 본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내가 이 김치를 대면하고 있다는 느낌, 김치와 독대하고 있는 심정이다. 거의 매일 접하는 반찬인데도 이렇게 색다르고 반갑고 멋지다니. 김치란 존재가 마치 실존적인 것처럼 다가오는 것이다. 김치를 정말 잘 그렸다. 물론 극사실적인 그림들이 횡행하는 요즈음 이 정도 솜씨는 흔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나로서는 테크닉도 그렇지만 그 김치를 그렸다는 사실이 중요해보였다. 피처럼 고인 붉은 색의 국물 묘사가 절묘하다는 생각이다. 마치 김치가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듯도 하고 서서히 피에 적셔져 가는 그런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처절하게 죽어가는 김치, 혹은 온갖 양념과 고춧가루물에 의해 산화되어가는 과정이 보이는 장면은 자뭇 엄숙하고 비장하기까지 하다. 무엇보다도 수채화로 그려진 그 지겨울 정도로 많은 그림들이 한결같이 보여주는 상투적인 소재에서 벗어나 있는 작가의 시선과 마음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왔다. 수채화를 그리는 작가들은 왜 그렇게 한정된 소재만을 똑같은 기법으로, 획일적으로 그리고 있을까? 지겨울텐데 말이다. 그것은 그림의 문제가 아니라 습관의 문제다.
우연한 기회에 접한 하영희의 김치 그림을 작가의 방/작업실에서 다시, 새롭게 보았다. 벽에 종이를 붙여놓고 꼼꼼히 김치만을 그리고 있다. 작가는 미술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개인적인 취미생활로 그림그리기를 즐겨해왔다고 한다. 그림을 배울 길을 찾다가 입시학원에도 나가보고 일러스트레이션 학원에 가보기도 하고 수채화강습도 배웠지만 늘상 같은 소재에 지겨워진 작가는 문득 그럴듯하게 수채화로 그려지는 상투적인 풍경이나 정물, 누드를 그리느니 밥상을 그리는 것이 더 솔직한 작업이 되겠다는 생각에 어머니가 해주신 반찬을 몇 가지 그리다가 김치를 그리게 되었다고 한다. 사실 음식이란 목숨을 이어가는 데 있어 불가피한 것이지만 동시에 탐욕과 충족될 수 없는 욕망의 대상이기도 하다. 과도한 섭취와 맛있는 것에 대한 목숨을 건 탐사, 너무 많은 먹을거리가 도열해 있는 풍경은 좀 과하다는 생각, 추접스럽다는 생각도 들게 해준다. 그런데 작가에게 이 김치는 그런 음식과는 조금 다르다. 김치는 언제나 어느 곳에나 있지만 포만이나 욕망과는 다른 음식이다. 한국인에게 김치란 음식은 단순한 먹을거리에 머물지 않는다.
고향과 어머니의 손맛, 도란도란 둘러앉은 가족들의 초상이 오버랩되기도 하고 아련한 향수와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기도 하다.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나 빼놓지 않고 먹는 음식이고 한시도 우리 곁에서 떠날 수 없는 그런 음식이다. 특히나 이 작가에게 김치는 어머니란 존재와 함께 부감되는 음식이자 다른 어떤 것보다 아름답기까지 한 것이다. 특히 빨간 고춧가루 물기가 스며들어 있는 모습이 좋았다고 한다. 하얀 배추에 빨간 고춧물이 스며들고 익으면서 색채가 변화하는 모습이 무척 매력적이었던 것이다. 작가에게는 붉은 색 물기를 가득 머금고 있는 김치의 '화려한' 모습이 다른 어떤 음식보다 더 그림의 소재가 되기에 충분해 보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 김치가 더없이 아름답다고 느낀 것이다. 아울러 김치하면 떠오르는 숙성, 융합, 토속이라는 단어 역시 작가 자신이 담고 싶어 했던 이미지와 일치하기에 그렇다.
더구나 김치는 토속적이고 세계적이기까지 한 소재다. 이런 몇 가지 이유에서 작가는 김치를 특별히 선택해 그리게 되었다. ● 작가는 오로지 김치만을 그린다. 여러 종류의 김치를 다양하게 그렸다. 마치 김치 관련 책자의 사진이나 삽화를 보는 듯 하다. 김치의 종류가 그만큼 다양함을 알았다. 녹색과 붉은 색을 주조로 이루어진 그림은 일종의 풍경화같기도 하다. 그것은 김치를 사실적으로 그린 그림이지만 한편으로는 김치를 산이나 숲, 여러 종류의 식물성들이 혼재한 하나의 세계로 다루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림들은 한결같이 위에서 내려다 본 구도로 그렸다. 부감의 시선에 의해 김치들은 항아리뚜껑이나 다양한 접시에 담겨져 있다. 위에서 비치는 조명에 의해 접시 밑부분에 약간의 그림자를 거느리고 있다. 바탕은 종이 질감 그대로 비워두었다. 시원한 여백 속에 김치만이 환하게 빛난다. 약간은 앞쪽에서 내려다 본 그 구도는 비교적 전일적인 시선으로 김치를 온전히 들여다보게 한다. 김치라는 대상 속으로 육박해 들어가거나 전면적으로 김치와 조우하는 것이다.
시각뿐만 아니라 미각을 건드린다. 동시에 김치의 맛, 물기가 많고 기름지지 않은 시원한 맛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담백한 수채화가 선택되었고 아르쉬 황목에 그렸다. 김치의 맑고 시원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 투명도가 강한 수채화 물감을 사용하고 이른바 동양화적인 느낌이 우러나도록 그렸다. 작가는 김치라는 소재를 과장된 표현에 의존하기 보다는 김치 고유의 멋 뿐만 아니라 맛과 냄새까지도 담고 싶다고 말한다. 앞으로는 정형화된 지금의 구성에서 벗어나 김치 자체를 자유롭고 흥미있게 다루어도 무방해보인다. 작가가 자의적으로 해체하고 적극 개입해서 김치에서 느끼고 만난 여러 상황성을 극적으로 연출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현재 그림에서 엿보이는 다소 경직된 일러스트레이션의 내음이 지워졌으면 하는 것이다.
한국 김치는 채소와 소금이라는 재료와 함께 고추라는 변수가 가미돼 화학반응을 일으킴으로써 독창적인 식품이 되었다. 발효돼 우러나는 김치의 맛깔스러운 삭은 맛은 세상 어떤 식품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생각해보면 그 삭은 맛이야말로 가장 한국적인 맛이다. 질리지도 않고 여전히 찾게 되는 오묘한 맛이 그것이다. 바로 그 맛에 중독되었기에 매끼마다 김치가 없으면 살기 어렵다. 김치가 시어 문드러지는 산패 직전에 나는 맛이 바로 그 맛난 맛인데, 고추의 주성분인 캡사이신이 산패를 막고 맛난 맛을 유지해주는 작용을 한단다. 김치는 각종 양념을 버무려서 발효 요인을 첨가한 후 용기에 넣는 것, 곧 담그는 행위다. 이때 양념의 질과 양, 버무리는 솜씨에 따라 맛깔이 달라지는 오묘함, 곧 담금의 마술이야말로 김치를 김치로 가능하게 한다. 그 안에는 음양의 법칙이 숨쉬고 있다. 그리고 김치는 칼을 쓰지 않고 통째로 담그는 것이 원칙이다. 먹을 때도 손으로 찢어서 입에 넣어 먹는다. 그게 김치를 제대로 먹는 일이다. 여기에는 김치의 발효란 것이 우리 조상들에게 신명이 좌우하는 신비스러운 과정이기에 그 과정에 쇠가 닿은 것이 있으면 신명이 노하거나 싫어해 음식이 제대로 안된다는 신앙도 깔려있다고 한다. 한국 문화는 그렇게 자연적일수록 가치가 발휘된다. 그래서 김치는 가급적 원형을 파괴 하지 않고 먹는다는 음식철학을 보여준다. 자연스러움과 자연과 일치되는 삶의 지혜와 우리 전통문화의 정신이 김치에도 고스란히 묻어있다. 작가는 그 사실을 알았을까? 여하튼 하영희가 그린 김치는 정말 한국 김치 그대로다. 먹음직스럽게 그려진 김치가 입안에 침을 고이게 하는가 하면 김치란 것이 한국인의 삶에서 무엇이었을까를 새삼 생각하게 해주는 그런 그림이다. 보면 볼수록 정말 잘 그린 매력적인 김치그림이다. ■ 박영택
회사생활에 지친 나를 위로해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리는 나도 보는 사람도 편안함이나 정겨움을 느낄 수 있는 소재를 그리고 싶었다. 처음에는 회사 동료들을 소재로 풍속도나 빌딩숲을 그려볼까 싶기도 했지만 회사생활도 스트레스의 연속인데 내 그림에서까지 그런 장면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결정적 이유는 회사 동료들에게 카메라를 대면 업무나 회의 중임에도 불구하고 도망을 다니거나 손으로 V자를 그리는 포즈를 취한다는 게 문제였다. 그래서 시골이나 바닷가, 한옥마을 등을 소재로 풍경화를 그려봤는데 평생 도시에서만 살아온 내가 작품만을 위해서 아무 감흥도 없는 시골풍경을 그린다는 것이 고상해 보이려고 그림을 그리는 것 같고 포장만 화려한 물건을 내놓는 기분이었다. ● 자료사진을 찍기 위해 바닷가를 여행하던 중 먹었던 회와 소주를 보고 파도치는 절벽이나 그리고 있느니 밥상을 그리는 것이 더 나다운 작업이 되겠다 싶어 한식을 소재로 그리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해주신 반찬을 몇 가지 그리다가 김치를 그리게 되었는데 붉은색 물기를 가득 머금고 있는 화려한 모습이 다른 음식보다 더 그림의 소재가 되기에 충분해보였다. 또 김치하면 떠오르는 숙성, 융합, 토속이라는 단어가 내가 담고 싶어 했던 이미지와도 일치했다. 김치는 서구화된 도시생활에서도 절대 빠질 수 없는 토속적인 것이고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것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작품이 김치라는 단일소재이다. 구도도 우리가 평소에 밥상을 내려다 볼 때와 같이 위에서 아래로 수직에 가깝게 내려다보는 시점이다. 부감법은 그림에 집중력을 높이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다. 그림을 그리는 나의 집중력도 필요했고 감상하는 사람의 시선도 의식했다. 또한 여백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서양화인 수채화를 그리고 있지만 동양화의 감성을 담고 싶었다. ● 물기가 많고 기름지지 않은 시원한 맛을 표현하기위해서는 차갑고 매끈한 아크릴이나 번들번들한 유화보다는 담백한 수채화가 어울린다는 생각에 수채물감으로 아르쉬 황목에 그리고 있다. 이것 또한 전통적으로 수용성 물감을 사용해오던 동양의 감성을 담기 위함이다. 한지의 보들보들한 느낌이 좋아서 장지에 동양화 물감을 사용해 볼까도 했지만 김치의 맑고 시원한 느낌을 살리기에는 동양화 물감보다 투명도가 강한 수채화 물감만한 것이 없었다. 작품의 제작과정은 특별한 것이 없다. 특이한 기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남들과 구별되는 붓질이나 물감도 없다. 소재 자체가 특이하므로 과장하기보다는 절제되고 집중된 표현을 하고 싶다. ■ 하영희
Vol.20091122h | 하영희展 / HAYOUNGHEE / 河英姬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