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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9_1113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대안공간 반디_SPACE BANDEE 부산시 수영구 광안2동 169-44번지 Tel. +82.51.756.3313 www.spacebandee.com
'실체와 허상'의 죽음 ● 김덕영의 『두개의 세계』는 '실체와 허상'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이것은 그가 현재 갖고 있는 기본적인 작업 개념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작업 개념은 그의 이전 작업들, 나아가 앞으로의 작업과 연결되어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과거, 현재, 앞으로의 작업을 한 자리에 놓았기 때문에(물론 모두 이번 전시를 위해서 만들었지만) 작업들 간의 개념적인 연결은 있지만, 각 각의 작품들은 다른 층위에 놓여 있고, 이런 차이들로 인해 다르게 해석할 여지를 남겨 놓는다. 이러한 이유에서 전시장에 놓인 작품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기보다는 서로 충돌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실체와 허상'이라는 근본적인 질문은 서로 맞물려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김덕영이 문제로 삼고 있는 '실체와 허상'이라는 이 질문은 단순해 보이지만, 철학적인 질문이며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던져진 존재론적 질문처럼 보인다. 어쩌면 예술이라는 것 또한 이러한 질문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존재론적 질문은 대개 보편적인 '인간 존재'를 상정하기 때문에 '개별자'들의 차이는 드러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전시가 개별자의 '차이'를 드러내는 것은 아니며, 그는 다만 이러한 존재론적 질문을 던져 놓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가 '실체'와 '허상'을 대립구도로 보지 않고, 허상 뒤에 있다고 믿는 '실체'를 찾는 일에 몰두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는 이러한 경계를 모호하게 보이도록 설치를 구성했고, 작품들 또한 그가 던진 질문의 답이 되지는 않는다.
쌓여 있는 껍데기(인간)들은 투명 테이프와 스크래치된 필름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이것은 자아가 벗고 싶어 하는 외부의 막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그는 이 외부의 막들을 보여줄 뿐 내부에 있다고 믿는 '실체'에 대해서 언급하지는 않는다. 온전한 몸을 구성하고 있는 인물상들 또한 모두 껍데기를 덮어 쓰고 있을 뿐 그 내부에 있다고 믿는 '실체'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단지 껍데기들의 표면만이 드러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 껍데기 더미들은 자아가 벗고 싶어 하는 여러 개의 '표면들'이기보다는 오히려 '시체들', '죽음', '학살의 현장'을 연상시킨다. 또한 보편적인 '인간'의 죽음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보편적인 인간으로 묶일 수 없는 그리고 그럴 필요가 없는. 그의 존재론적 질문은 고정된 혹은 완성된 주체에 대해서는 반성적이며, 본질을 구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이 껍데기 더미는 매끄러운 표면을 포기하고 투명하지만 흐물거리는 피부이다. 이를 재현하기 위해 그가 이용한 재료는 껍데기를 손쉽게 만들어 낼 수 있는 테이프다. 이 테이프로 만들어진 껍데기 더미들은 공포스럽고 훼손된 신체를 보여주고 있지만, 그럼에도 인간 '실존'을 회복하기 위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인간주의(humanism)'를 넘어서고 있다. 왜냐하면 그가 사유하는 인간은 '인간'의 실체를 찾는 것과는 무관하며, 더군다나 '인간성'의 회복이라는 해묵은 관념도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조각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반복하지만 조금은 다른 전략을 취한다. 재료가 갖는 거칠거나 매끄러운 표면을 포기하면서 토대를 전복하는 방식으로 까뒤집기 하고, 자리를 바꾸고, 이면을 드러내는 것, 이는 물론 단순한 지적일 수도 있지만 그가 새로운 조형언어를 찾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인간 껍데기의 피부가 파도를 재현하고 있는 작품들에서도, 기본적인 접근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검정 테이프를 일일이 돌돌 말아서 붙인 거대한 파도 형상과 유리 테이프로 만들어진 거대한 파도(공기를 주입할 때, 생명체가 숨 쉬는 것과 같은 소리를 내며 그리고 점점 커지는 형태)형상은 다르게 재현되어 있다. 그가 일견 실체라고 했던 전자의 작품과 허상이라고 했던 후자 의 작품 모두가 실제로는 상상이며 구성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구분 대신, 결국 재현된 것이라면 실체와 허상의 구분은 모호해져 버리는 것이다. 따라서 실체와 허상을 규명할 수 있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가 마블링 작업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흰색과 검은색이 서로 대립하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결코 분리 할 수 없다는 사실은 대립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실체'와 '허상'이라는 개념 자체가 어쩌면 허구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만약 '허상' 이면에 '실체'가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결코 그 '실체'에 도달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명시하고 있을 뿐이다. ■ 신양희
Vol.20091121d | 김덕영展 / GIMDEOKYEUONG / 金德泳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