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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김진혜 갤러리_Kim.jinhye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 149번지 Tel. +82.2.725.6751 www.kimjinhyegallery.com
객체화되거나 중첩된 일상, 그 이질적이거나 혹은 교합적인 것들-작가 문영원 근작에 관한 소론 ● 1. 예술의 목적성을 전소시켜 남는 무의미성을 강조한 ready-made, 기술적 구조공간에 기능적인 여러 조건들을 추상적인 모형으로 전개한 Vladimir Tatlin의 Coner-Counter Relief, 논리적인 판단이나 수학적 이론으론 규정할 수 없으나 생경한 세계에 대한 묘한 감정을 유발하는 Maurits Cornelis Esher의 착시 도안들, 그리고 기타 media를 응용한 작품이나 테크놀로지가 결합된 science sculpture 등은 예술가에게 숙주처럼 고착되어온 고정성을 탈피토록 하는 현실적 의문이며 미술, 나아가 표현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보다 본질적인 질문의 대입과 동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와 같은 틀을 인지하고 있는 오늘날의 많은 작가들은 표현의 매개로 기성품이든 자연물이든, 고체든 액체든 관계없이 작품의 매제로 수용하고 있으며 물질적인 것은 물론이고 냄새나 소리, 빛과 같은 비물질적인 요소와 그것을 지각하게 하는 감성까지도 표현대상으로 삼고 있다. 결과물 역시 확연한 가시적인 것이거나 실체의 구현에서 한발 떨어진 행위와 관념을 지향하는 등 폭넓은 상태로 전개되곤 한다. 물론 이러한 현상이 반드시 미학적 철학적 개념들을 숙지한 채 발현되고 있다고 보긴 어려우나, 문명구조의 진보와 사회의 변화에 발맞춰 예술 역시 여러 면에서 다원화된 세계로 나아가며 창작되고 있음을 일정 부분 감지토록 함은 부정하기 힘들다. 그런 차원에서 볼 때 시대적 흐름을 수용하고 자신만의 언어를 구조(構造)하기 위해 스스로의 시각과 관념을 최대한 열어 놓고 있는 작가 문영원의 작업은 흥미로운 측면이 있다
2. 문영원의 작품들은 다분히 실험적일 뿐만 아니라 적어도 '삼차원의 공간 속에 형태와 색, 양감을 지닌 구체적인 물질로서 강하고 견고한 입체적 구성체'로 국한되지는 않는다. 그보단 재료나 질료를 통해 화자의 서술을 논리적, 수리(數理)적으로 이완, 단축시키거나 지속적으로 확장시킴으로써 자신만의 조형세계를 만들고자 노력해왔다는 게 맞다. 물론 논리와 수리엔 하나의 주제가 이입되어 있는데, 그것은 간단히 말해 일상과 그 일상을 살고 있는 '우리'이다. ● 작가는 지각여부와 관계없이 늘 존재해온 일상성, 자신이 체감한 인간들과 생활 속 관념들을 포착, 다시각화 하여 미적여운을 흘리거나 분열된 형상들을 간헐적으로 선보임으로써 깊은 곳에 숨겨진 이면성에 대해 고찰할 수 있도록 유도해 왔다. 그의 표피적인 주제인 (기 언급한)일상과 자문형식을 갖는 인간생활 속 관념들을 소화하려는 것 자체로 의미부여는 충분히 이뤄지나, 도시와 인간의 삶, 나와 타인의 관계성에 놓인 이질적이거나 혹은 교합적인 것들로 점차 분화되면서 작품의 가치는 가중된다. 실제로 작가는 직접적으로 대상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한다. 그는 자신의 이러한 예술적 태도를 바로 '일상과 반복'으로 표현한다.
오늘날 선보이는 그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맥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일예로 실리콘과 와이어를 이용한 과거 설치작업 「흐름」 및 「City」는 문명의 상징인 자동차를 연이어 늘어뜨리고 하나의 줄에 의존케 하는 단순한 방식으로 복잡하지만 획일적인 도시생태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의 감상이란 다소 유머러스하며 소프트한 게 사실이다. 허나 위태위태한 줄에 의지해 지나는 자동차들의 행렬에서 현실을 버겁게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읽는 것은 그리 어려운 게 아니기에 「흐름」, 「City」 등의 작업을 통해 어떤 단상의 전달보단 작가의 시각이 어떻게, 무엇으로 표상 될 수 있는지를 알리는 조타로 해석하는 게 더욱 바람직하다. ● 이보다 앞선 2006년도 작품 「샐러리 맨」은 보기만 해도 벅차고 힘든 현실이 즉시적으로 다가온다는 점에서 「흐름」에 상응하거나 훨씬 노골적인 양상을 띤다. 한 누드의 남자가 넥타이만 맨 채 발목엔 그물(그리드(grid) 모양을 하고 있는 이것은 건물을 나타낸다) 같은 것에 묶여 있고, 그 남자는 앞으로 나아가려는, 또는 벗어나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그물은 쉽사리 끊어질 것 같지 않아 「샐러리 맨」을 접하는 관람객들은 안타까운 마음만 더하게 된다. 하지만 단지 이러한 감상을 전달하려는 것이 이 작품의 포인트는 아니다. 「샐러리 맨」을 비롯한 여타 작품인 「족쇄」, 그리고 「경쟁」 등에서 중요한 것은 나약한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초상을 대변한다는 점이다. 쳇바퀴 돌 듯 하는 사회에서 목적성을 상실한 채 무의미한 삶을 살아가고, 때론 자각하여 이탈하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원하던 원하지 않던 자아를 억누르면서까지 무거운 것들을 짊어지고 살아야하는 대다수 사람들의 자화상이라 해도 그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의 또 다른 작품 2006년 작 「회색도시」와 2007년도 설치물인 「공간의 재구성(2007년 작)」에선 이전 작품들에 비해 비교적 시각을 넓힌 경우에 해당한다. 이 작품들은 도시인의 삶을 옥죄는 도시풍경, 즉 이 도시와 그 도시를 움직이는 사회나 구조에 대해 한층 실제적으로 재현한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대한 유리에 중첩된(작가의 주된 표현경향인 반복성이 내용을 건설하는 틀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인물과 건물, 각종 표식마저 복잡한 드로잉으로 표현된 그의 회색도시는 냉랭하다 못해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우리가 일반적으로 느끼는 그런 도시의 이미지다) 유리는 가시성을 제한하지 않지만 실제론 보이지 않는 관념의 벽을 연상케 하며 혼잡한 드로잉은 도시의 부분이자 일종의 심리적 카오스를 대변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단면들이 하나의 작품에 총체적으로 새겨져 있는 셈이다. 「회색도시」에 비해 다소 구성적이긴 하지만 「공간의 재구성」 또한 같은 여운을 전달하는 건 분명하다. 작가는 이들 작품에서도 특유의 '나와 우리', 현대사회 속에서, 물질문명을 축으로 흘러가는 세상에서 정지되고 이어지는 모든 현실적 단편들, 나의 이야기인 듯하지만 결국 우리의 이야기이고 우리의 이야기인 듯하면서도 나에 대한 서술을 이어간다. 더불어 존재성과 탈존재라는 철학적인 개념들을 은연 중 반복적으로 심어 놓는다. 결국 「공간의 재구성」을 비롯한 여러 작품들은 진실은 온데간데없이 눈에 보이는 대로, 외면적 판단대로 허상과 실체에 대한 가치 분별에 관한 작가의 고민을 희화화해 무덤덤하게 담아 들이면서 현대인들의 일상을 차갑고 정적으로, 그러나 매우 솔직하게 지층화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유사한 구성을 갖춘 작품들은 「IF」연작들을 포함해 「ING」연작들, 그리고 「일상, 반복 그리고 일상(2008년 작)」으로 연이어지며 이는 현재까지 그의 작업을 잇는 공통의 화두로써 자리 잡고 있다.
3. 다만 근작들은 자아에 대한 연구가 보다 밀도 있게 투영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그러한 특성을 잘 드러내는 작품을 꼽는다면 2007년 「My way」와 「Life」, 2009년 근작인 「일상, 그리고 허무」라는 제목의 작품이다. 우선 실과 스컬피(sculpey)로 만들어진 인물이 등장하는 「My way」와 「Life」는 일상의 반복성에서 자아 찾기의 힘겨움을 되레 '우리'로 포박한 작품이랄 수 있다. 층층이 쌓인 원형의 실은 굴레요 속박이며, 일종의 도돌이표와 같이 순환되는 현실을 의미한다. 그 중심에 들어선 인간은 작가 자신이기도 하거니와 우리이고, 내적으론 각개의 이상향과 공공의 갈망을 내재한 아이콘이기도 하다. 신작 「일상, 그리고 허무」 역시 같은 등선에서 풀이할 수 있는 작품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그동안 일관되게 유지해 왔던 일상성의 반복에서 오는 여러 여감을 허무로까지 발전시킨다. 동일한 모양의 비닐설치작품인 이것은 각각의 개별성을 통해 '관계의 같음과 다름'을 언급한다. 하나하나는 객체이지만 결합되어지면 새로운 구조를 띠는 연출방식에 비춰 그것은 현대사회의 모습과 판박이가 아니라 하기 힘들다. 「사람이 갇히는 사회」작품 속 인체를 떠올린다면 그 느낌은 더욱 디테일하게 다가온다.
이상과 같이 작금 문영원의 작품들은 단순한 시각적 감상 외, 인간들의 삶을 포괄하는 개념을 담보로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다면적인 모습을 피사체로 포착하고 그 위에 심상을 얹히며 그 와중에 부유하는 리얼리티를 환기시키는 것에 더욱 무게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무게를 가볍지 않게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나의 존재성과 우리, 사회와 개인, 평온과 혼란, 현실과 이상, 현재와 미래, 특출한 것과 보편적인 것 등과 같은 조형언어의 재구성이며 비닐, 목재, 유리, 철, 아크릴을 포함한 각종 오브제를 통한 적극적인 구현으로 귀착된다. 그리고 그 구현의 적절성은 이번 전시를 기점으로 증폭되되, 차기로 순서를 돌린다.
한편 그의 설치작품에서 엿볼 수 있는 텍스트들, 즉 작가 자신의 삶 주변의 풍경들을 떠올리게 하는 상징성들과 그 풍경과 관련된 개인사를 기억토록 유도하는 희화성, 서정성을 통해 대상이 재해석되는 문영원 작업의 내적인 부분 외, 눈길이 가는 것은 조각이 지닌 '정적인 상태로서의 한계성의 극복과 그로인한 개념의 확산'을 수년 간 지속적으로 추구해 왔음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모르긴 해도 이런 과정에서 그가 얻으려고 했던 것은 실험적인 작품들이 일반적으로 지니는 메시지를 더욱 확장하고 매스나 볼륨 등에 국한되어 피동적 상태를 유지하는 조각에 대한 근본적인 탈피를 염두에 두거나, 감각적이고 일시적인 이미지들을 버리고 일정한 공간구조를 느끼게 하는 실체적인 작업에 주력하고 있음이 아닌가 싶다. ■ 홍경한
Vol.20091118i | 문영원展 / MOONYOUNGWON / 文永原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