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민展 / CHOISOONMIN / 崔淳珉 / mixed media   2009_1118 ▶ 2009_1124

최순민_Gift_혼합재료_1126×165cm_2009

초대일시_2009_1118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30am~06:30pm / 토요일_11:00am~07:00pm / 일요일_12:00pm~06:30pm

갤러리 그림손_GALLERY GRIMSON 서울 종로구 경운동 64-17번지 Tel. +82.2.733.1045 www.grimson.co.kr

아버지의 집 ● 최순민이 작업의 라이트모티브로 삼아온 것은 집이다. 2005년 이후에는 수차례의 개인전과 단체전을 통해 집의 이미지만을 집중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집만큼 든든하고 마음 놓이는 곳이 어디 있겠는가. 세파에 시달리다가도 집을 생각하면 피곤이 싹 가시고 얼굴이 환해진다. 꿈이 있고 편안함을 주며 언제든지 돌아가고 싶은 예쁘고 아담한 집이 그의 작품에서 풍기는 이미지들이다. ● 이전에도 집을 그려온 사람들이 있었다. 일제때 활동한 김종찬의 「토담집」(1939)은 쓰러져가는 흙으로 된 집을 보여준다. 말이 집이지 실상은 초라한 움막에 가깝다. 장욱진의「마을」(1956)에도 집이 등장한다. 두 채의 집이 그려져 있는데 창문을 통해 한 사람씩 얼굴을 내밀고 있다. 큰 덩치의 인물이 한 사람 살기에도 버겁게 느껴진다. 향토적인 화풍을 선보인 박수근도 집을 자주 그린 편이다. 시골의 기와집과 초가집을 가리지 않고 그렸는데 논밭이 딸려 있거나 뜰안에 장독과 닭이 어슬렁거리는 농촌 분위기를 잘 살려냈다. 작가마다 집을 대하는 시각이 다르며 화풍에 따라 특색있게 조형화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최순민의 집은 어떤 모양일까? 위의 화가들에 비해 외양상 화려한 편이다. 종래의 화가들에 비해 서술이 배제되어 있으며 선과 면으로 간략히 요약되어 있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이미지가 집이라고 인지할 수 있는 것은 단지 모양이 집모양과 유사한 오각형이며 타이틀에 집이란 이름을 부쳤기 때문이다. 잡지와 같은 콜라주와 한지나 인조보석과 같은 오브제의 도입 등 조형모색에 보다 적극성을 띠는 것도 특기할만하다.

최순민_My father's house_혼합재료_53×65cm_2009

집 가운데서도 작가가 형용한 이미지는「아버지의 집」이다. 편안하고 들어가서 쉬고 싶은 마음이 들게끔 그렸다. 흥겨운 노랫가락이 흘러나오는 잔칫집 분위기마저 풍긴다. 작가는 스트라이프, 별, 도트와 같은 여러 장식과 칼라플한 색지 및 프린트물을 이용해 집을 장식한다. 애당초 집의 모양을 묘사하는데 신경을 쓰기보다 집의 이미지, 즉 집이란 어떤 곳인가를 더 강조하려고 애쓴 모습이 엿보인다. 어떤 것은 궁궐 같은 곳도 있다. 세모의 지붕과 듬직한 돌기둥, 그리고 본채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인다. 별이 빛나는 하늘에 세워진 웅장한 도성(都城)같은 곳도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평범한 집이 아니라 일찍이 어거스틴이 '빛과 광채로 충만한 집'이라고 부른 천상의 집이요 행복의 곳간 같은 곳임을 알 수 있다.

최순민_My father's house_혼합재료_165×126cm_2009

필자는 그의 그림을 보면서 깊은 휴식과 평온감이 엄습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시대를 초월하여 많은 사람들이 애송하는 시편 23편에 펼쳐진 이미지와 비슷하다. 여호와는 우리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심으로써 우리에게 만족을 주시고 고요에 잠기게 하신다. 단순히 집을 제시하였을 뿐이지만 작가는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에 서 있을 때처럼 만족감과 푸근함을 전달한다. 부모의 팔에 안전하게 안겨 흔들의자를 타고 있는 아기의 모습이 연상된다. 이런 연상 작용은 천상의 맛보기, 영원한 기쁨의 맛보기를 느끼게 하려는 취지에서 길어 올려 진 것이다. ● 사실 갈 곳을 찾지 못해 거리를 방황하는 생명이 얼마나 많은가? 영혼이 거할 처소를 찾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최순민의 집은 이런 생명에 어떤 단서를 제공한다. 그의 집은 각종 보석으로 치장되어 있다. 광휘로 번뜩이고 기쁨이 넘쳐나는 곳이다. 생명의 물이 마르지 않고 언제나 넘쳐나는 저수지 같은 곳이다. 작가는 화면에서 다른 것은 보여주지 않는다. 단지 집의 이미지만을 제공한다. 주위 공간도 집의 이미지가 부각되도록 보조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단순한 배경으로 그치지 않는다. 바탕은 따듯하면서도 포근하다. 질료감을 주려고 바탕에 하드보드를 깔고 다시 한지를 서너번 입히고 그 위에 다시 혼합재료를 칠하거나 돌가루를 뿌려서 견고한 바탕의 느낌을 살려냈다. 재료의 고유한 맛을 살려내면서 평면을 잘 가다듬어 내밀성을 잘 간직하도록 했다. 드라마에서 주연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조연의 역할이듯이 그의 그림도 배경의 충실함을 통해 주제의식이 부각되도록 했다. 화면 바닥에는 드문드문 네모꼴이 드러나는데 그것은 집의 주춧돌을 상징하는 듯하다. 주춧돌이 개인의 겸손한 신앙을 상징한다면, 집은 창조주의 은혜 및 영화로움을 상징한다.

최순민_Gift_혼합재료_100×100cm_2009

사실 우리가 창조주의 영화로움을 사실적으로 전달하기는 어렵다. 기껏 색과 리듬감 등으로 그 상태를 표현할 수 있을 뿐이다. 실제적 상태를 시각언어로 바꾸는 제약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작가가 사용하는 조형언어에 귀기울여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순민의 작업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그의 작품이 '천상의 집'을 형용하고 있다는 것이며, 그 집은 '충만한 기쁨'과 '영원한 즐거움'(시 16:11)이 넘쳐나고 있다는 것이다. 달라스 윌라드의 표현을 빌면, 하나님은 "우주에서 가장 즐거운 분이시다. 그 분의 풍성한 사랑과 관대함은 그 분의 무한한 기쁨과 깊이 이어져 있다." 우리가 가끔 경험하는 선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하나님은 끊임없이 경험하시기에 우리에게 기쁨과 사랑을 나누어주신다.

최순민_Gift_혼합재료_100×100cm_2009

바로 여기에 최순민의 작품을 이해하는 열쇠가 있다. 최순민의 집이 신비롭고 영화로운 것은 실제로는 집 주인의 풍성한 사랑과 관대함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풍성한 사랑과 관대함이 무한대의 너비와 깊이와 풍부함으로 채워져 있기에 아무리 써도 바닥을 드러내지 않는다. 작가는 자신의 마음의 은밀한 곳에 세워진 집을 보여준다. 그 안에 숨겨진 영원한 기쁨의 보고를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창조주의 집에 들어간다는 것은 이전에는 한번도 경험할 수 없었던 것을 경험하는 순간이자 모든 피조물이 고대하는 '영원한 행복'과 '끝없는 안식'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을 뜻한다. 어찌 감히 그 나라의 영광을 말로서 형언할 수 있으랴. "그때 내 영혼, 아침에 깨어나 잠들지 않는 기쁨으로 영원히 신생(新生)하리라"(조지 맥도널드) 서성록

최순민_Yellow Ribbon_혼합재료_146×112cm_2009
최순민_My father's house_혼합재료_각 160×130cm_2009

늦은 밤, 대형건물의 환한 불빛을 보면서 현대식 고층 빌딩들이 스스로 갇히기를 열망하는 현대인의 화려한 감옥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현대인의 삶은 치열한 경쟁으로 고통의 흔적들로 가득하다. 옛날에도 오늘처럼 삶의 고단함은 같았나 보다. 우리나라의 상여(喪輿) 문화에서 보듯 우리 조상들은 죽음으로만 삶의 고단함을 비로소 내려놓을 수 있다고 여겼다. ● '왜 죽음을 쉼으로 여겼을까?' '죽음 이후에는 어떤 세상이 있을까?' 그리고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의 계속되는 질문 앞에 마침내 '거대한 우주 속에 있는 너무나 미약한 '나'를 발견 하였다. ● 생명체에 대한 경이로움과 창조에 대한 호기심이 나의 작업을 이끌어 온 힘이다. 그리고 마음의 창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세상이 있음을 보았다. ● 욕망을 내려 놓고 마음의 창을 조금만 열면 보지 못하던 많은 것들을 볼 수있다. 가족을 위해 오늘도 자신의 능력 이상으로 일을 하고 지하철의 손잡이를 간신히 잡고 있는 '아버지'라는 이름에서 그리고 잠을 설친 듯 헝클어진 머리, 피곤한 모습으로 젖먹이 아이를 등에 업고 있는 '어머니'라는 이름에서 가슴 저리게도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 일상 속에서 숨겨진 영혼의 아름다움을 마음의 창을 통해 바라보고 싶다. ● 성경의 누가복음 15장에서 탕자를 반갑게 맞이하는 풍족한 아버지의 집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 해 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그 상상의 통로에서 아버지의 집으로 가는 자유로운 여행을 하고 있다. 한꺼번에 그 집들이 내 생각 속으로 밀려 올 때면 주변에 보이는 어느 곳이든 메모를 해둔다. 집들은 때론 누워 있거나 거꾸로 있기도 하고 상품 진열대의 상품처럼 가지런히 정렬한 모습이기도 하다. 화려한 색채와 금속 조각이나 보석들로 치장을 하기도 한다. 집들을 꾸밀 때면 마치 어렸을 때 인형놀이를 하는 듯 한 기분이 든다. ● 다양한 모습으로 집을 완성하다 보면 어느새 나는 6살 어린 아이가 되어 있다. 집을 그리는 순간에 나는 두 손에 과자를 움켜 쥔 어린아이가 느끼는 그런 행복감을 느낀다. ■ 최순민

Vol.20091118f | 최순민展 / CHOISOONMIN / 崔淳珉 / mixed media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