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9_1117_화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30pm
서울미술관_SEOUL ART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 43번지 대일빌딩 B1 Tel. +82.2.732.3314 www.sagallery.co.kr
속도감 있는 운필을 통한 전통화조화의 개성적 해석 ● 설초 안창수 개인전에 부쳐 한 인간의 삶이란 언제나 수많은 선택과 변화를 통해 그 향방을 바꿔가며 내용을 풍부하게 하기 마련이다. 그것은 때로는 의도한 바에 의해 변화하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전혀 예기치 못했던 우연을 통해 변화를 완성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떠한 우연도 그저 우연 자체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우연을 가장한 필연의 발현이라 함이 옳을 것이다. 근대 이후 작가로의 입문은 미술대학이라는 정규과정을 통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이다. 그러나 이는 단지 제도에 의한 하나의 과정일 뿐 필수적인 것이라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여전히 적잖은 이들이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작가로의 입문을 꾀하는 경우를 종종 발견할 수 있음은 바로 이를 증명하는 좋은 예일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작가로서의 입문을 도모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잠재되어있던 예술적인 기질이 특별한 조건하에서 자연스럽게 발현되어 본연의 모양을 회복하는 것이라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 안창수의 경우 역시 일반적인 경우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삶의 역정을 통해 작가로 입문하는 경우라 할 것이다. 그는 오랜 기간 동안 전문적인 금융인으로 활동하다 최근 몇 년 동안 본격적인 학습과 수련기를 거쳐 본격적인 작가로의 입문을 꾀하고 있다. 일견 극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금융인과 감성적인 작가 사이에는 적잖은 간극이 존재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들지만, 그는 이를 치열한 학습과 진지한 노력으로 자연스럽게 극복해내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는 전문 금융인으로서의 삶을 마감하고 작가로서의 길로 들어선 후 서예를 여가의 방편으로 삼아 지필묵을 접하게 되었다. 이는 서예가 지니고 있는 전통적인 덕목인 인격수양 및 정서함양 등 일반적인 이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그의 관심과 지향은 이내 발전하고 확대되어 본격적인 작가의 길을 모색하게 된다. 그는 서예를 통해 확인한 자신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예술에 대한 작은 불씨를 중국 항주에 있는 중국미술학원과 일본의 경도조형예술대학 등지에서의 수학을 통해 확인하고 되살린 것이다. 이번 전시는 그 과정과 성과를 밝힘과 동시에, 이를 통해 작가로서의 제 2의 삶을 여는 출발점이 되는 셈이다.
일단 작가로서 그가 보여주고 있는 작품세계는 전통적인 심미관과 조형관에 충실한 것이다. 지필묵으로 이루어진 고전적인 조형체계를 근간으로 화조화에 특장을 보이는 그의 작업은 근대 이후 중국에서 성행하였던 양식으로부터의 일정한 영향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그의 작업이 서예에서 비롯되어 중국 항주의 중국미술학원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과 관계가 있다 할 것이다. 주지하듯이 중국의 전통문화는 소주와 항주를 중심으로 한 절강, 오흥 지방에서 꽃을 피웠다. 특히 동양회화의 전통으로 자리 잡고 있는 남종 문인화는 바로 이 지역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근대 이후 북방의 북경이 정치중심으로 대두되고, 남쪽의 광주가 상업중심으로 부각되었지만, 전통에 관한한 상해 일대의 중국 중부 지역은 여전히 양보할 수 없는 자존심을 지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작가는 중국 전통문화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항주에서 수학함으로써 자연스럽게 그 영향에 훈도된 것이며, 이는 그가 속한 세대의 심미적 가치관과도 잘 부합되는 것이었을 것이라 여겨진다.
그의 작업에는 바로 전통적인 남종 문인화에서의 필묵취미와 더불어 근대 이후 중국화가 이루어 낸 새로운 성과들 역시 혼재되어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전통적인 남종화에서 벗어나 점차 조형성을 강조하며 서구적 방법을 절충한 새로운 양식이다. 수묵을 근본으로 하되 채색의 운용을 통한 현란한 변화와 대상에 대한 감각적인 표현을 더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변화하는 새로운 시대를 여하히 반영하며 호흡할 것인가에 대한 문화전통 중심지의 작가들이 지니고 있던 진지한 고민과 성찰의 결과로 얻어진 성과이며, 이는 전통적인 남종 문인화를 대체하는 새로운 표현으로 받아들여졌다. 작가의 작업 역시 이러한 시각과 이해가 잘 맞아 떨어져 전통적인 것을 기반으로 하되 감각적인 운필과 표현을 통해 현대성을 표현하고자 함이 역력하다. 그가 작업의 주류로 삼고 있는 화조화는 본래 특정한 의미를 지닌 장식화로서 존재하였으나, 작가는 이에 보다 조형적인 해석과 표현을 더하여 개별화하고자 한다. 농담의 변화가 풍부하고 색채의 화려함이 강조되어 나타나는 작업의 양태들은 전통적인 운필과 색채 운용 방법에 더하여 서구적인 조형방법까지도 차용하고 있다. 이는 그의 작업이 단순히 원칙과 규율을 답습하는 고루한 전통회화의 범주에 머물거나, 화조화가 지니고 있는 고전적인 규정에 제약되지 않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작가의 작업은 이제 비로소 출발점에 선 셈이다. 그럼으로 오늘의 작업이 그를 온전히 반영하고 있다거나, 그 성과가 괄목할만하다는 등의 평가는 시기상조일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작가는 작업에 대한 진지한 열정과 몰입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조형체계를 차근차근 수립해 나가고 있으며, 이는 장차 그의 작업을 지탱해 줄 견고한 기초가 될 것임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그중 흥미로운 것은 그의 화면에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는 빠른 운필에 의한 속도감 있는 표현이다. 대개 사물의 윤곽선을 규정하는 먹 선의 운용에 있어서 작가는 과감하고 결단력 있는 필치로 빠르게 대상을 개괄해 내고 있다. 이러한 독특한 운필의 방식은 그의 개성 특질이 반영된 것이겠지만, 그 표현되어진 양태가 전통적인 운필법의 무겁고 둔중하며 느린 것과는 달리 경쾌하고 날렵하여 일정한 속도감을 반영해 내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할 것이다. 비록 다른 이들보다 늦은 입문의 과정이지만 작업에 대한 진지한 몰입과 열정은 그의 작업이 보여줄 앞으로의 전개 과정이 결코 평이하고 난만하게 진행되지는 않을 것임을 분명히 밝혀주고 있다. 이제 그는 금융인으로서의 삶을 뒤로 하고 작가로서 자신 앞의 삶을 마주하고 있다. 이는 그간 그가 경험하였던 것과는 전혀 다른 삶의 양태일 것이다. 만약 오늘의 그가 보여주고 있는 작업에 대한 진지한 열의에 더하여 소재를 보다 다양하게 확대하고 보다 주관적이며 개성 있는 표현을 과감히 가미할 수 있다면, 그의 작업은 또 다른 이정에 놓이게 될 것이다. 작가의 분발과 다음 성과를 기대해 본다. ■ 김상철
Vol.20091117a | 설파(雪波) 안창수展 / AHNCHANGSOO / 花鳥畵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