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9_1119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갤러리 쌍리_GALLERY SSANG LEE 대전시 중구 대흥동 249-2번지 Tel. +82.42.253.8118
현실의 이면으로서의 동화적 풍경화 ● 노주용이 그려내는 풍경화는 인근의 야산에 올라가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인 것 같은, 혹은 이미 어디선가 본 일이 있는 것 같은 기시감에 의존하고 있다. 낯익은 풍경, 이라는 것이 그의 그림이 주는 첫 인상이지만 그럼에도 불편함을 느끼게 되는 것은 일차적으로 그 풍경에 덧씌워진 묘한 색채들 때문이다. 네거티브로 반전된 이미지인 것 같기도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고, 자연의 사물들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파스텔 색조로 뒤덮여 있지만 인공적인 느낌이 강한 것도 아니다. 어디서 많이 본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다가가서 어깨를 두드렸는데 모르는 얼굴이 돌아보는 것과 같이, 낯익은 풍경들이라고 생각하는 바로 다음 순간 낯설음이 다가오는 것이 첫 눈에 들어오는 그의 그림의 특징이다.
하지만 저 낯설음조차 낯설지 않은 것은, 노주용의 풍경화처럼 사람의 눈이 풍경을 지각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갑작스러운 환한 빛에 눈이 부셔 실눈으로 대상을 바라볼 때, 혹은 복잡한 생각에 사로잡혀 무엇을 보는지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어떤 광경을 인식하게 될 때 낯익은 광경은 낯설어진다. 새삼 내가 어느 곳에 와 있는가,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여태 보아 왔던 그 것들인가 하는 스치는 의구심에서 비롯된 낯설음은 어쩌면 복잡한 도시에서 복잡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가지는 특수한 경험인지도 모른다. 주어진 한정된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훈련되어 있는 현대인은 본능적으로 불필요한 정보를 버리는데, 어느 순간 필요 없는 정보들이 크게 다가올 때 쭈뼛하는 낯설음의 경험이 다가오는 것이다. 이미 눈에 익숙하게 본 듯한 풍경이지만 대단히 극적일 것도 없는 별 것 아닌 풍경이 갑자기 의문스러운 의미 덩어리로 다가오는 것, 그것으로부터 노주용의 풍경화 감상은 시작된다.
낯익고도 낯선 그의 풍경화 안에는 종종 낯익고도 낯선 동물들이 등장한다. 개 같기도 하고 사슴 같기도 한, 뭐라고 딱 집어 말하기에는 특징이 약한 어떤 동물들(노주용은 이 동물의 정체에 대해 "그냥 짐승"이라고 표현한다)이 숲을 거닐거나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관객을 바라보기도 한다. 숲속의 동물이라, 이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상징물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일정한 거리감을 두고 관객을 관찰하고 있는 이 양순한 동물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야릇한 감상에 젖게 된다. 이 동물들은 그의 풍경화를 동화적으로 만들어버린다. 작가의 감정이 지극히 이입되어 있고 그만큼 인격화된 동물들의 등장으로 인해, 만물과 대화할 수 있을 것 같던 어린 시절의 동화적 상상력이 촉발되는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숲은 동화의 배경이다. 헨젤과 그레텔이 계모에 의해 버려졌던 숲, 난장이들이 작은 집을 짓고 사는 숲, 나무들끼리 수런 수런 대화를 나누기도 하는 숲은 현실에서 존재하지만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신비하고도 공포스러운 곳이다. 숲은 비어있는 공간이지만 빽빽하게 들어차 있기도 하고, 밖에서는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 수도 없으며 그 안에 들어가면 나올 길을 찾기 어려운 장소로 종종 묘사되는 반면, 작은 동물들이 바스락거리면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따스한 공간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노주용이 만들어내는 숲의 광경들은 무서우면서도 친근한, 낯설지만 낯익은 동화적 숲에 가까워 보인다.
이러한 해석에 한층 더 무게를 실어주는 소재가, 그의 그림에 이따금 등장하는 의자이다. 작은 동물과 마찬가지로 의자도 대단히 쉬운 상징물이다. 빈 의자는 상실이나 죽음 등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그의 풍경에 등장하는 빈 의자는 오히려 관객에 대한 초대의 의미처럼 보인다. 현실에 존재하면서도 현실의 대척점에 있는 숲, 현재에 속하지만 과거의 기억을 담고 있는 장소로서의 숲, 낯선 두려움을 갖게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따스한 것들이 살아 숨쉬고 있는 숲, 그곳의 한 구석에 놓여있는 의자는 관객을 향해 있으며, 작가는 나무 뒤에 숨어서 관객과 눈을 마주친다. 그림을 보는 동안은 현실을 내려놓고 어린 시절의 기억 속 숲으로, 당신들의 내면의 숲으로 걸어 들어와 빈 의자에 잠시 앉으라는 듯이. ■ 이윤희
Vol.20091116f | 노주용展 / NOHJOOYONG / 盧周龍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