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능화판-고판화, 현대디자인과 만나다展

한국고판화의 재발견-Ⓘ   2009_1114 ▶ 2009_1205

김상구

초대일시_2009_1114_토요일_03:00pm

강동석_강행복_김경화_김상구_김선미_김억_김영만_김제민_김중걸_김한영_김혜균_김효 남궁산_류연복_박영심_서상환_송숙남_서인경_안정민_안혜자_윤여걸_유재영_이윤엽_이은희 이하나_이효임_임영길_임영재_정길재_주성태_천진규_최종식_호해란_홍선웅_홍익종_홍진숙

관람시간 / 10:00am~06:00pm

김내현화랑_KIMNAEHYUN ART GALLERY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내유동 136-58번지 Tel. +82.31.963.3262 www.kimnaehyun.org

新 능화판-고판화, 현대디자인을 만나다 ● 1. 디지털 시대. 후기 산업사회라고도 하고 정보화 시대라고도 한다. 매스미디어가 디지털로 전환하면서 더 강력해진 정보/영상시스템은 우리들의 일상에 전지전능한 신처럼 작용하고 있다. '미디어가 메시지'라던 맥루한의 언급이 더욱 피부에 와 닿는다. 앞으로 그 권능은 더 강력해질 것이고, 거기에 비례해서 생활방식이나 패턴이 빠르게 변해감은 자명하다. 이로 인한 삶의 유형과 유행은 끊임없이 새로운 소통·소비구조를 생산하고, 일상과 문화 모두 그 장력에 반성할 틈도 없이 수동적으로 휘말게 될 것이다. 뿐인가, 디지털 문화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우리의 이성과 감성에도 그 파급력을 배가시키고 있다. 아니 지배해 가고 있다는 비유가 적절해 보인다. ● 앞의 언급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시각과 청각도 디지털 기기에 의해 생성된 소프트웨어들을 끊임없이 소비하게 되고 사유와 표현과 판단도 모두 거기에 비례하는 양식(Style)으로 전환하고 있다. 디지털 카메라와 캠코더의 일상화와 M.P3의 대용량은 숱한 영상의 변주와 음악을 펼쳐놓고, 이동전화와 와이브로 넷북은 숨 쉴 틈 없이 정보들을 퍼 나른다. 잠시라도 이런 첨단 기기들이 우리에게서 떨어져 있는 경우는 이제 드물다. 어느 한 순간 만이라도 이들이 인간에게서 유리될 때 문맹의 불안감과 고도에 유배된 듯한 고립감이 동시에 엄습한다. 그만큼 생활 구석구석까지 디지털미디어는 일상화 되고, 문화화 되고, 권력화 되어가고 있다. ● 지난 세기 아날로그시대 문자 패러다임도 이제 디지털 하이테크놀로지 영상으로 대체되었다. 문자를 통한 '인식적 사유'가 디지털 영상의 '감각적 인지(認知)'로 재편되면서 대상과 현상을 수용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예술에 있어서도 이런 변화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새로운 매체에 의한 표현·문법·어법·발성법이 구사되고, 이는 다시 다양한 방식과 제도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기존의 매체와 장르가 필요에 따라 이합집산을 하며 혼성적 특성을 더해 간다. 그 결과 지난 세기 가장 맹위를 떨치던 실험적 장르인 회화, 조각, 판화, 공예 등이 새로운 디지털문법과 혼성되고, 또 기존 장르에서 일탈해서 음악, 공연, 영화 등을 넘나들며 퓨전(Fusion), 크로스 오버(Cross Over)라는 새로운 조류를 활성화시켰다. ● 전통적인 예술관은 이런 급속도의 도전에 맞닥뜨리며 그 개념을 해체하기에 이르렀다. 과거 순수미술이 선도하던 시각적 문맥도 이제는 많은 자본과 장비와 인력과 기술을 소유한 영화나 광고회사 등과 같은 거대한 상업적 구조에 밀려 뒷걸음질 치고 있는 중이다.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상업적 영상이 오히려 순수미술의 영역에 원천적 소스(Source)로 작용하는 비율이 증가하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이는 시각미술의 재편에 미술내부의 변증적 논리 대신 대중문화의 영상이 원심력으로 작용하는 한 예다. - 최근 '한국적 팝아트'라는 이름하에 이미 미술사에서 소멸되어 버렸던 50년 전 미국의 팝아트를 미학적 검증이나 비판 없이 소생시키고 변종시킨 유치한 상업성의 근원에 이런 대중문화의 시각성을 이용하는 전략이 숨어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 포스트모더니즘의 주요 전략인 혼성모방은 이런 경우를 대변한다. 영화, C.F, 광고사진에 의한 이미지가 포토샵(Photoshop)프로그램에 의해 변형되어 그대로 타블로에 옮겨지는데, 이런 치졸한 '포토샵회화'가 등장한 게 현실이고 보면 과거 시각문화를 선도하던 미술이 이젠 정반대로 대중문화의 영상을 원형적 소스로 차용하는 것이라 하겠다. ● 예술이 일상문화를 반영하며 또 전위적으로 앞 시대의 개념과 형식을 전복함은 당연한 일이다. 늘 새로움을 꿈꾸며 기존의 체계를 극복해 온 것이 현대미술의 역사이기에 이런 점은 긍정적인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디지털 기호(記號)와 기호(嗜好)에 의한 부호적 시각성은 곧 작품에 있어서의 물질적 촉각성을 사살해 버렸다는 점이다. 가장 민감한 감각인 촉지성의 제거는 곧 미술에 대한 감각적 수용의 중요 기능을 거세한 것에 다름 아니다.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의한 '시뮬라크르(Simulacrum)'는 현실보다 더 정교한 가상을 제시했지만, 그러나 인간의 예민한 감각인 촉각을 대체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 일정한 한계가 있다고 하겠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도도하게 진행되고 있는 이런 디지털문맥은 이제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이 되었다. 미술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그 하부구조이자 물적 토대인 우리생활 구석구석이 디지털로 도배되고 있는 현실과, 그로 인한 사유구조와 감각체계의 변화는 적극적으로 이런 현실을 수용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다만 디지털 맥락을 수용하되 비판적 성찰을 통해 디지털에서 간과한 인간의 촉각과 지문을 어떻게 살아있는 문화로 제시할 것인가에 대한 시도는 꾸준히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기계가 아닌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표현영역은 결국 디지털보다 오래 갈 것은 자명한 것이고, 더불어 그 가치는 여전히 진행형임을 부정할 수 없기에 그렇다.

서상환
윤여걸

2. 이렇듯 빠른 현대미술의 흐름에 비해서는 비교적 느린 변화를 수반하며 진행되는 판화는 다소 어정쩡한 입장에 직면한 듯이 보인다. 프레스(Press)를 활용한 복제와 복수성이라는 판화매체의 장점으로 한 때 모더니즘의 선두에 선 매체로 평가받기도 했지만, 그런 기준에서 보면 이제는 복수성과 복제성 뿐 아니라 표현, 소통, 제도, 유통 모두에서 상대적으로 노화된 것처럼 보인다. 이는 디지털 영상의 중성적 모던함과 빠른 출력시스템의 속도감에 반비례하는 판화의 노동집약적 제작공정 때문에도 그렇지만, 어떻게 동시대적인 문맥과 개념을 확보하는가에 대한 이론적·실천적 단서가 점차 희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기존 판화미학이 동시대성을 상실함으로 그 수명이 다 되어가고 있는 중이라 하겠다. 시각 환경이 디지털로 바뀜으로 판화의 외연이 점점 좁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 하더라도, 판화매체가 갖는 전래적 장점을 기존의 순수미술Fine Art의 체계와 범주에서만 해결하려고 하면 답은 보이지 않게 된다. 결국 판화가 살아남기 위해서, 아니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그 동안 판화가 소외시켰던 판화의 저변을 돌아보는 반성적 통찰을 가져야 한다. ● 목판화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우리 것'이라는 관념으로 인해 미약한 작업논리로도 타 판종에 비해 비교적 우호적인 대접을 받았지만, 지금의 위기에서 피해갈 방법은 없다. 새로운 시각에서 그 정체성을 제고해보아야 하고 스스로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실천밖에는 방법이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파인아트에만 머무르고 있는 목판화의 스펙트럼을 넓혀야 한다. 작가들의 조형적 기호나 작업관에 따라서 지향해야 할 가치나 방식도 서로 다르겠지만, 순수미술인 회화로부터 공예미술·디자인의 영역까지 수렴하며 그 정체성의 범주를 시각문화 전반으로 확대해서 반성적 모색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우선 목판화가 갖는 전통적 속성의 연구와 그 장점의 현대적 수용은 절실해 보인다.

임영길
안정민

3. 문화는 동시대인들의 뛰어난 역량 때문에 발전하기도 하지만 그 자양분은 앞선 역사, 즉 전통의 바탕이 두터울 때 가능하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한국은 목판화에 있어서 세계 최고의 문화를 갖고 있다. 목판화를 거론하기 이전에 그 토대인 인쇄문화에 있어서도 세계제일의 기술과 미감의 전통이 있다. 세계최초무구정광대다라니경/705와 최고팔만대장경/1232의 목판인쇄술과, 세계최초의 목활판개국원종공신록권/1397, 세계최초의 금속활자직지심체요절/1377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뛰어난 인쇄문화다. 그러나 이런 인쇄기술 뿐 아니라 각종출판에 관계된 활자 및 삽화인 목판화의 미감은 더욱 뛰어난 수준과 격을 갖춘 것이었다. 우리 목판화의 전통이 단순히 인쇄술에 머물지 않고 시각문화로서도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려시대 각종 불경과 조선시대의 다양한 서책과 출판물에서 뛰어난 맛을 보인 목판화에서 더욱 두드러진 독자성은 서책의 표지에 사용되던 능화판(菱花板)에서도 보인다. 표지장정(裝幀)과 디자인을 위한 문양인 이 능화판은 세련된 조형양식 뿐 아니라 고졸하고 운치 있는 '품격'으로 인해 더욱 우리 전통시각문화에 대한 깊은 맛을 반증하는 판화/공예미술이라 하겠다. 특히 동양의 한·중·일 삼국 모두 뛰어난 제지술, 인쇄술, 서책 장정의 전통을 갖고 있으나 이 능화판은 오직 우리나라의 서책에서만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세계 유일의 전통이라 하겠다. 단순히 읽는 책의 범주를 넘어서서 책을 존중하고, 책에서 감성적인 미감을 발현한 격조 높은 문화의 정수라 하겠다. ● 본래 능화판은 능화문양(菱花紋樣)을 책표지의 장정에 사용하기 위해서 판각한 것이었다. 이채로운 점은 책표지 능화문은 기존의 목판인쇄와는 달리 탁본의 형식을 취한 점이다. 따라서 좌우가 바뀌는 경우가 없이 판면의 문양이 그대로 종이 표면에 나타난다. 일종의 돋을새김의 엠보싱가공을 한 것이었다. 그 결과 먹으로 인쇄하지 않은 채 두터워진 저부조의 문양이 남게 되었다. 거기에 약간의 밀납을 배이게 한 표지는 질기고도 아름다운 장식적 품격을 갖추게 되었다. ● 이런 장인들의 지문(指紋)과 노동집약적인 육체성, 장정기술에 의해 튼실하게 만들어진 서책들은 수 백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남아 과거와의 대화를 유도하는 감성적 맛을 풍기고 있다. 책을 제작하고 학문을 숭상하던 동북아 3국 중에서도 유독 우리나라만 이 능화판이 발달한 것은 독서문화를 숭상하는 사대부들의 학문에 대한 관념적 태도로 인해서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능화판은 책을 오래 보존하기 위한 장정의 기술일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품격 있는 선비문화의 반영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 전통이란 그런 것이다. 우리가 전통에서 배우고 이어받아야 할 것은 그 기술이나 양식적인 측면만은 아니다. 즉 능화판 자체가 아니라 당시 능화판이 어떻게 사람들의 일상에서 기능을 하였던 가에 대한 관계의 인문학적 접근과, 그 사회적 존재방식으로서의 미적 기능에 대한 가치의 문제다. 물론 전통 능화판이 갖는 디자인과 조형의 맛이야 미술내부로 수렴하면 되겠지만, 당시 선비문화의 핵심인 성리학 이념의 물적 조건이자 현시물인 '책'의 감성적 표지(標識)인 능화판을 통해서 시각예술과 공예와 학문과 출판기술의 종합적이고 구조적인 문화를 볼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 허버트리드는 그릇(도자기)이 그 나라의 문화를 총체적으로 반영한다고 피력한 바 있다. 이는 각 나라마다의 도자기가 가진 조형적 특성을 넘어서서 한 나라의 음식과 식습관, 나아가 민족성까지도 그릇에 반영된다는 종합적인 통찰에 대한 의미다. 그릇을 보면 거기에 담기는 음식과 요리방법을 알 수 있고, 또 그 요리에 사용되는 가축이나 농작물을 유추할 수 있고, 이는 다시 그런 도자기의 원료와 요리재료들이 풍부할 수 있는 토양, 풍토, 기후 등을 알 수 있기에 그렇다. 그러니까 식탁위의 도자기야 말로 이런 물질적 토대와 함께, 최종적인 조형적 특성으로 인해서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국민성과 미적·문화적 수준까지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을 이른다. ● 이런 도자기의 예와 마찬가지로 책을 통해서 우리는 책을 아름답게 만들고 튼실하게 장정하는 산업적 제작기술 뿐 아니라, 우리 조상들의 책을 아끼고 사랑하는 태도와 자세, 학문적인 수준과 심성까지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능화판은 출판사업의 측면과 함께 공예미술의 측면, 그리고 디자인 미감의 문제를 아우르고, 더불어 조상들의 학문과 문화에 대한 뛰어난 전통적 수준까지 통섭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그게 우리가 전통 능화판에서 배울 수 있는 귀중한 가치다. 남겨진 유산인 책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남겨진 유물을 통해서 당시의 조상들과 대화하고 호흡하며 그 고아한 품격을 느끼는 것이다. 문양이라는 시각 기호를 넘어서서 선비들의 순수한 학문에의 존중이라는 정신적인 영역을 확인할 수 있기에 능화판이 단순한 유물의 가치를 넘어서는 것이라 하겠다. ● 한편 능화판은 출판산업으로서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한복을 만드는 옷감의 장식을 위한 문양에도 사용되었고, 여타 다양한 생활물품의 심미적인 디자인으로도 사용되었다. 사대부들만 향유한 것이 아니라 일반 서민들까지도 생활에서 널리 소비하고 소구했던 시각물인 셈이다. 그러나 이런 뛰어난 전통도 그동안 현대화의 물결에 밀려 현재는 완전히 잊혀졌다. 아니 소멸에 가까운 상태라는 표현이 옳을 거 같다. 책의 장정이나 디자인, 그리고 제본방식 등이 완전히 양장본으로 대체된 현실에서 한장본의 노끈제책에 어울리던 표지 능화문이 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적어도 이를 현대적으로 변용하고 해석하는 작업이 최소한으로나마 존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동안 이를 간과해 온 것이다.

홍선웅
김억
홍익종

4. 문화란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발흥하고 필요가 없어지면 스스로 고사(枯死)하는 자연스러운 삶의 양식이자 양태다. 세상만물 모든 현상의 이치가 마찬가지다. 사람이 생노병사하듯이 미술의 여러 운동과 이즘들도 발흥했다가 소멸했다. 판화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동시대에 맞지 않거나 뒤쳐져 쓸모없으면 스스로 소멸하는 게 당연하다. 그렇지만 그 때가 과연 지금인가에 대해서는 냉철한 인식과 통찰이 필요하다. 그리고 살아남을 수 있는 가능성과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그게 생명현상이다. 인류의 생명현상이고 판화가의 생명현상이자 판화라는 매체의 생명현상이기도 하다. 살아남으려는 의지와 살아 남기위한 방법을 위해서 더 절실한 것은 결국 동시대성을 담보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와 기능과 조형과 개념의 창출이다. 당연히 다양한 시도와 도전이 필요하다. 과거를 되짚어 보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거칠고 조야하더라도 끊임없는 시도를 통해 스스로 질긴 생명력을 가져야 한다. ● 이런 바탕에서 『 新 능화판 -고판화, 현대디자인과 만나다』展은 전통적인 능화판을 바탕으로 현대적인 목판화의 조형과 기능의 가능성을 찾고자 기획되었다. 그동안 잊혀지고 묻혀졌던 소중한 우리 시각문화 유산인 능화판의 원형을 바탕으로 현대적으로 새롭게 해석하는 작업으로 새로운 실용성과 미감을 찾으려는 것이다. ● 물론 본 전시는 전통 능화판의 재연이나 재현에 기준을 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재연은 당대성과 현대성을 중시하는 작가들이 할 몫이 아니다. 기존의 서각(書刻)을 하는 전통공예가들이 이미 그런 재연과 재현은 충분히 했을 터, 목판화가들은 이 전통적 능화판의 현대적 번안과 응용을 위한 데이터베이스의 작업을 시도한 것이다. 확대하자면 파인아티스트인 목판화가들이 창조적으로 제작한 능화문을 활용한 이미지와 콘텐츠를 소스로 하여 디자인 분야에서 이를 활용하기 바라는 것이다. 능화판이 목판인쇄술과 같은 맥락에 있는지는 여러 가지로 고찰해 보아야 할 문제지만 적어도 출판이라는 지식산업구조에서의 역할이 공통적이었음은 분명하다고 하겠다. ● 그동안 디자인분야에서 능화판의 문양만을 디지털로 편화한 시도는 있었으나, 순수미술 목판화가들의 감수성에 의한 재해석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시각디자인의 디지털 편화는 목판 특유의 질감과 한지의 맛을 완전히 소거해 버림으로 고졸한 운치를 놓쳤음에 비해, 본 기획은 철저하게 전통 목판화의 미감과 한지의 맛, 목판화의 질감 등의 회화적 맛을 우선하려 한다. 이는 곧 눈으로만 보는 디자인이 아니라 만지고, 느끼고, 호흡할 수 있는 휴먼 터치(Human Touch)를 바탕으로 한 것이며, 목판화가들에 의한 실험과 개성으로 기존의 디자인패턴과는 다른 현대성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 전통적 시각미술의 문맥이 점점 더 좁아지는 디지털 시대에 역설적으로 노동과 휴먼터치에 의한 수공적 육체성이 목판화만큼 두드러지는 장르가 드물기에, 이런 목판화의 특성은 분명 장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것을 바탕으로 많은 변주·실험·다양한 이종교배가 필요함은 자명하다. 이와 같은 인식에서 출발한 본 전시의 도전적 시도는 작품으로서 뿐 아니라 우리들 일상에서 디자인화 되어 사용할 수 있는 도안이나 문양의 형상과 질감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고, 그 기능도 책의 장정, 패키지 포장지, 다양한 이미지의 베이스, 간판… 등으로 확산 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인 부분이라 여겨진다. 또한 순수미술/디자인/공예를 아우르면서 동시에 전통문화/현대미술, 예술/일상, 작가/장인, 순수미술/문화산업의 이분법을 넘어설 수 있는 연계를 구조적으로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각문화의 새로운 가능성과 역할모델의 구축을 위한 시도라고 자평해 본다. ■ 김진하

Vol.20091114a | 한국고판화의 재발견-Ⓘ 新 능화판-고판화, 현대디자인과 만나다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