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에게 누구인가? What am I to You?

윤지선展 / YOONJISEON / 尹智嫙 / installation.mixed media   2009_1112 ▶ 2009_1127 / 일,월요일 휴관

윤지선_나는 너에게 누구인가? What am I to you? (앞)_사진에 재봉질_215×147cm_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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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9_1112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04:00pm~10:00pm / 일,월요일 휴관

대안공간 반지하_BANJIHA 대전시 서구 갈마1동 갈마공원7길 47(264-25번지) Tel. +82.10.6233.0272 cafe.naver.com/halfway

드륵 드르륵 드륵 ● 1시간이고 10시간이고 온전히 시간을 들여 박아대는 지루한 작업은 쉴 새 없이 위아래로 움직이는 바늘을 쳐다보며 박는 것 하나에만 집중하게 하는 일종의 명상과도 같을 때가 있다. 박다보면 애초에 내가 의도했던 것이 무엇인지도 잊기 일쑤다. 거의 우발적으로 박아대는 동안 시나브로 구름을 보며 양을 쫒고 양을 따라가다 보면 기차를 타게 되듯 한 가지 상황에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 혼자서 별별 구구절절한 주석을 달아 대는 것을 경험한다.

윤지선_나는 너에게 누구인가? What am I to you? (뒤)_사진에 재봉질_215×147cm_2009

실이 엉켜있거나 실밥이 아래로 줄줄 흘러 내려있는 것을 회화적이라고 이름을 붙이거나, 나도 모르게 그려진 실 그림 위에 언젠가 본 듯한 그림을 떠올려 보기도 하고, 붕대처럼 얼굴을 감싼 바느질 사이로 보이는 눈을 보며 별게 히잡 (hijab)인가? 사는 것 자체가 스스로 히잡을 덮어씌우고 종종거리는 것 아닌가 하는 불끈함을 느끼기도 한다. 더 나아가 보기 싫은 사람을 박는다든지, 유명한 사람을 박는 것을 상상 하기도 한다. -물론 내 얼굴이 아닌 다른 유명인이나 정치가들을 박아댄다면 지금과는 또 다른 양상이 벌어지겠지만, 나에게 누구를 박느냐가 그닥 중요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 노동, 작업의 미적 가치를 생각해 본다던지, 물성간의 상관관계와 필연성, 사회적 이슈와 미술, 예술 등등. 꼬리를 무는 생각들은 사진 위의 바느질 자국처럼 무질서하다. ● 다시 고백하건대 작업을 하면서 나도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모른다. 사진 위에 반복적으로 재봉질을 하고 의도하지 않은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의 반복 속에서 어느 때가 되면 '이정도면' 하는 결단이 내려진다. 이것이 완성이다. ● 사람은 상상력을 확장하기 보다는 제한된 습관의 영역 안에 자신을 두려고 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대상에 대한 편향된 생각은 우리가 만든 것들을 정확하게 보는 기회를 빼앗아 간다. 정확한 대상 읽기는 실패할진 모르겠으나, 스스로의 상태와 익숙한 것이 낯선 것으로 떡하니 버티고 있을 때 그것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자 하는가에 대한 스스로의 습관을 확인 할 수는 있다. 이것이 내가 집중하고 있는 부분이다. 내 작업을 보는 사람들은 저마다 다양한 경험을 한 것을 내게 얘기해 주곤 한다. 사진 위에 수없이 가해지는 바느질을 누군가는 자기 학대 같다고 했는데, 이것은 보는 그 자신이 사진이라는 우상에 집착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때론 무섭다거나 웃기다거나 회화적 이라고 하기도 한다.

윤지선_나는 너에게 누구인가? What am I to you?_사진에 재봉질_114×75cm_2009

윤지선의 작업은 그로테스크하지만 눈을 뗄 수 없는 뭔가를 전달한다. 그것은 이미지 위에 무수히 많은 실들과 재봉라인은 윤지선의 작업이 단순히 이미지의 차원을 넘어선 그녀의 삶의 이야기일 것이라는 단서를 실질적으로 전해준다. 얼굴을 합성하거나 위에 덧붙여진 많은 재료들은 사진 이미지를 객체화시켜 하나의 물체로 인식을 해 그 위에 작가의 생각을 담은 것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또 다른 감정을 자아내게 한다. 네 번째 '전환된 이미지'전 ■ 심재현

윤지선_나는 너에게 누구인가? What am I to you? (앞, 뒤)_사진에 재봉질_24.5×16.5cm_2009

윤지선은 자신의 신체일부를 매개로 사진의 영역과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면서 다차원적인 표현을 다룰 줄 아는 작가이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작품을 자신의 얼굴사진을 재봉틀로 각양각색의 흔적을 남기며 자신의 기억과 이미지를 은밀한 곳으로 숨겨놓는다. 그리고 은밀한 곳으로부터 타인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배밭에서 한밭을 만나다.Ⅱ展) ■ 김민기

윤지선_나는 너에게 누구인가? What am I to you? (앞, 뒤)_사진에 재봉질_34.8×29.5cm_2009

난 이런 경험을 일종의 관계 맺기로 해석한다. 내 경험이 이미지화 되면서 나와 관계를 맺고 그 관계는, 내 작업과 그것을 보는 사람과의 관계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며 끝없는 관계를 형성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편향된 시각이 무엇인지 스스로 확인 한 후 "너는 나에게 누구(무엇)이다." "나는 너에게 누구(무엇)인가?"란 물음에 답을 할 수 있길 바란다. (2009)

윤지선_나는 너에게 누구인가? What am I to you? (앞, 뒤)_사진에 재봉질_35.5×29.5cm_2009
윤지선_나는 너에게 누구인가? What am I to you? (앞, 뒤)_사진에 재봉질_35.3×30.9cm_2009

2006년 한의원에서 쓰는 침으로 사진 위에 구멍을 뚫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한참을 사진 위에 침을 놓고 있는데 '재봉틀로 뚫어볼까..'하는 잔꾀가 났다. 드르륵 박았더니 침구멍같이 깔끔한 구멍이 아닌 거칠고 봐줌 없는 구멍이 생겼다. 이것이 sew작업 시리즈의 시작이었다. 기계의 봐 주지 않는 움직임과 그것을 조정해보고자 애쓰는 내 모습에 흥미가 생겼다. 그러면서 그 결과물은 전통적인 수나 바느질의 구실에서 벗어난 새로운 바느질의 쓰임, 가능성이 보였다. 회화적인 바느질과 한 번의 작업으로 두 가지의 다른 이미지(양면회화-both sides painting-)가 생기는 것도 매력적 이었다. ■ 윤지선

In 2006, I was piercing a photograph using acupunctural needles. After hours of piercing, I got tired thought, "Should I just use a sewing machine instead?" I eventually used a sewing machine, but the holes became to be coarse and ungenerous. this was the beginning of my sewing series. I was interested in the machine's ungenerous movements and my efforts to adjust it. The result was a new potential use of sewing beyond traditional embroidery and tailoring. it was also attractive that a single work of painting with sewing creates two different images (both sides painting) ■ YOONJISEON

Vol.20091113g | 윤지선展 / YOONJISEON / 尹智嫙 / installation.mixed media

2025/01/01-03/30